먼 북소리 / 무라카미 하루키

일신우일신

by 오아시스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하루키의 유럽 여행기"

표지의 문구를 읽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군요. 그 유명한 하루키. 하루키의 책은 20대때 '상실의 시대', 30대에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을 뿐이예요. 40대가 훌쩍 넘어 다시 하루키의 책을 읽을 기회가 왔군요. 나도 이탈리아를 다녀왔으니 하루키씨는 이탈리아를 뭐라고 썼을 지 한 번 들여다보고 싶잖아요? 딱 이정도의 수준과 기대감이라고 할까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눈이 펑펑 쏟아져서 어디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날 하루키의 글을 따라 색다른 여행을 떠나보리라 마음 먹었답니다.


'먼 북소리'는 1986년부터 89년까지 3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지내며 쓴 에세이 또는 여행기로 분류되는 책이예요. 하루키가 40대라고 생각하면 안 되요. 이 일은 벌써 32년전쯤 일어난 이야기예요. 그때 하루키가 40세라고 했으니 벌써 70세가 훌쩍 넘었겠군요. 그런데 나에게 하루키는 웬지 청춘을 품고 있는 청년같은 이미지로 다가와요. 왜일까요? 청바지에 흰 티를 바쳐 입었을 것 같고요. 군살도 하나도 없겠지요? 일본 사람이라 늙어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접하지 않아서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여전히 재즈와 클래식, 노래를 들으며 어디서든 자신만의 리듬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하루를 잘 누리며 지내고 있을 것만 같은 하루키잖아요. 인생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려줘도 될 것만 같은 하루키라는 사람의 스토리. 그에게 3년과 유럽 생활은 어떤 시공간이었는지 느낀만큼만 풀어볼게요.


3년간의 여정을 읽고 있노라면 저렇게까지 하면서 여행을 다녀야 하나, 무엇 때문에 그런지 의문부터 들어요. 유럽에서 체류하며 글을 썼다고 하면 '정말, 베스트셀러 작가는 남다르군. 스케일이 달라. 글을 쓰기 위해 어디 전망 좋은 비싼 월세를 얻었겠지. 호화롭게 글 쓰니 부러울 따름이야. 저리 쓰면 잘 써질 거야.' 이런 생각들이 먼저 들지만 천만의 말씀이예요. 유럽에 있는 동안 '상실의 시대'를 썼기 때문에 세계적인 작가로 팔자 좋게 떠난 여행이 아니었어요.


글을 쓰기 위해 한가한 곳을 찾다보니 계절이 좋은 휴양지는 마다하고 한물간 관광지에서 월세를 얻어 추위에 떨고 폭풍이 몰아치면 집안에 들이친 비를 퍼 내야 했고 세탁기가 없어서 손빨래를 하며 지내기도 했고 지하방이라 햇빛을 보지 못하기도 하면서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여행이 아니라 전전하며 지내는 하루키의 일상과 마주치게 되요. 필사적인 전전이예요. 왜 그랬을지. 하루키가 말하는 3년이라는 시간에 '?'을 붙일 수 밖에 없어요. 여행기라는 이름으로 책은 포장되어 있지만 제가 보기에 '먼 북소리'는 하루키가 존재의 확장을 위해 필사적으로 거쳐야만 했던 영혼의 분투기라고 하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자신을 밀고나가야만 했던 3년이라는 시간, 온몸으로 통과해 내서 출구로 빠져나가야만 했던 하루키의 분투기, 분투기가 맞네요. 그 시점으로만 본다면요.


언제나 그렇다. 언제나 같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라고 계속 생각한다. 적어도 그 소설을 무사히 끝마칠 때까지는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 이 소설을 완성하지 않은 채 도중에 죽게 되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하다. 어쩌면 이것은 문학사에 남을 훌륭한 작품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나 자신이다. 좀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소설을 완성시키지 않으면 내 인생은 정확하게는 이미 내 인생이 아닌 것이다.


자신을 죽음까지 밀고나가면서까지 하루키는 소설쓰기를 해요. 그래서인지 하루키 자신은 기도도 많이 한다고 고백을 해요. "원컨대, 저를 조금만 더 살려 주십시오. 저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라고 말이죠.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또 그리스로, 이탈리아로, 오스트리아로의 헤매임. 하루키는 이 시간 동안 '상실의 시대'를 쓰고 '댄스 댄스 댄스'를 집필하고 번역을 부지런히 많이도 해 내요. 그의 이력은 이 시점을 계기로 큰 전환점을 맞는 거 같아요. 그러니 하루키에게는 이 시간이 전쟁, 죽음의 이미지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자신이 원하는 대로의 인생을 살아내고 말겠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인생은 절대로 살지 않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기를 통과해 빠져나가야만 한다라는 몸부림의 기록으로 내내 읽혔어요.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인생은 의외로 아주 단순해요. 글쓰기, 독서, 여행, 음악, 달리기, 아내뿐이예요. 다섯 가지 키워드가 전부예요. 다섯가지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싸워서 쟁취할 수 밖에요. 하루키는 직감적으로 알아봤을 거예요. '내 인생에 변화의 타이밍이 왔구나! 새로운 시공간의 세계로 가기 위해 좀 더 힘을 내야 하는 기로에 서 있구나.' 하고 말이죠. 그리고 바로 공격 모드로 전환했을 거예요. 자기를 뜻하는 행위, '글쓰기로 나를 만들어가리라' 하고 말이죠.

여행기 속의 장소는 사실 가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들지 않아요. 가고 싶도록 현혹시키지 않았어요. 자신이 마주친 사람을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고 딱 본 걸 그대로 성실하게도 묘사해 놓지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 장소에 나도 서 있는 것 같아요. 하루키랑 달리기도 하고 카페에 가서 술도 한 잔 마시고 맛있는 생선을 굽기도 하고 마주치는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고 험악한 날씨를 경험한 것만 같아서 책을 덮고 난 뒤 아련한 느낌만 남을 뿐이예요. 자신의 성격만큼이나 성실하고 촘촘한 묘사로 사진만큼 선명하게 보여주거든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해 가고 싶은 마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살고 말겠다는 뚝심. 고급진 이동경로가 아니라 난 그만 인생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 감동을 받고 말았어요. 이토록 강렬하게 생을 갈망하다니! 툭하면 꺼지고 마는 불꽃이 아니라 계속해서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며 불꽃을 태우는 그의 생에 대한 갈망이 부럽기도 하고 기어코 이르고야 만 고수의 경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하루키처럼 단순하고 깊게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기도 하지 뭐예요. 그리스에서 로마로, 오스트리아로 옮기는 공간적인 여행이 아니라 존재가 비약해야 할 때 어떤 여행을 해 내야 하는지, 전전하듯 불편을 무릅쓰고서라도 끊임없이 내가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어떤 여행을 치뤄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여행기가 맞았네요.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여행기라 아니라 죽음을 걸고 자신의 생을 확보하려는 내면의 여행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까요.


누구에게나 존재가 비약해야 할 시기는 오고 말아요. 나도 그 시기 앞에 서 있어요. 순전히 내 직감이지요. 요즘의 난 여행을 잘 해내고 싶은 긴장감, 설레임으로 많이 떨리고 있어요. 패키지 여행이 아니란걸 되뇌이죠. 처음으로 혼자서 하게 될 안으로의 여행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시절 인연처럼 생각지 않았던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중국의 우임금이 좌우명으로 삼았다는 "일신우일신"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자). 다른 존재로 날마다 새 하루를 시작하기. 그러기 위해서는 홀로 떠나서 새로운 세상에 다다라야 하는 존재로의 여행이 있어야 한다고 제게 이야기하기 위해 하루키씨가 30년이란 시간을 건너 왔을 지도 모르겠어요.


하루키가 들었던 먼 북소리. 먼 북소리가 요즘 내게도 들려요. 들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