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O.Z. 리반엘리

한때는 나도 사람이었다!

by 오아시스
이븐 할둔이 옳았어. 나는 생각했다. "지리학이 곧 운명이다." 라는 그의 말은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나날이 번성하는 평화로운 인생을 사는 동안, 여기 사는 우리의 운명은 하레세에 의해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먹는 내내 피를 흘리고, 피가 흐르는 한 계속 먹으면서 자기 자신의 피에 익사당하는 저 낙타들의 신세와 같았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도시가 있어요. 시리아의 내전으로 터키까지 피난을 온 야지디 소녀 멜렉나즈. 난민촌에 가서 봉사를 하다가 소녀를 사랑하게 되는 무슬림 의대생 후세인, 둘의 비극적인 사랑을 취재하게 되는 후세인의 초등학교 동창생인 저널리스트 아브라힘. 이 세사람은 국적도 종교도 달라요. 소녀는 시리아인이고 종교는 야지디예요. 후세인은 터키인이고 무슬림. 주인공 아브라힘은 터키에서 자라다 서양 교육을 받으러 그 도시를 떠나 무교로 살고 있지요. 지금은 21세기, 디지털 세계의 시민으로 최첨단의 문명을 누리는 인물은 아브라힘 뿐이예요. 멜렉나즈와 후세인은 신화와 전설이 뼈속까지 가득한 공간에서 살고 있어요. 신화적으로 전설적으로 온갖 금기를 달고서, 제한을 달고서, 온갖 편견을 달고서, 치우쳐진 상태 그대로.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야지디는 상추와 푸른색을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해요. 신성한 것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거죠. 무슬림은 야지디보다 뒤늦게 생긴 종교인데, 무려 천년이나, 무슬림의 이단이라고 자기들끼리 결론을 내버렸죠. 이단자를 처벌해야 된다는 거죠. 무슬림을 거쳐 무교가 된 이도 있어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도 되는 권리는 어디로부터 부여된 건지, 읽는 내내 마음이 힘들어 책을 몇 번씩 내려놓아야 했어요. 책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교도 여자는 자궁이 찢어지도록 강간을 당해야 무슬림이 된다면서 8살 먹은 아이부터 시작하는 모든 여자를 함부로 다뤄요. 어린 남자 아이들은 여자들처럼 성적 노리개가 되든지 총알받이로 길러지고 어른 남자는 그 자리에서 단숨에 칼베임으로 목이 날아가요. 이건 천년전쯤 역사책에 등장하는 종교전쟁의 이야기가 아니예요. 지금 이 시대, 21세기.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예요. 아무 생각없이 치킨에 맥주에 불닭에 먹방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누군가에게는 저런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종교는 우리가 꿈꾸는 신과 최대한 가깝게 닮은 모습으로 변이되려고 믿는 게 아닌가요? 그래서 결국에는 오직 날개 무게로만 날아가는 새처럼 되야 하는 게 아닐까요? 천근만근인 마음의 무게를 탈탈 털어버리고 성숙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순간을 충만하게 살다가 죽음 저편의 세상으로 날아가고 싶어서 믿는 게 아닐까요?


내 종교는 기독교. 내가 꿈꾸는 창조주는 그분. 이 책을 읽으니 내 종교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했던 과거의 일들이 얼마나 폭력이었는지를 알고 꽉 쥐었던 주먹이 스르르 풀어졌어요. 감히 누가 내가 믿는다는 알량한 이유 하나로 종교를 다른 사람에게 비난하고 강요하고 억압하고 빼앗을 수 있을까요? 왜 그들은 신의 너그러운 천사의 화신이 되지 않고 신의 대리자인 전투자가 되려고만 할까요? 신은 사랑도 전투가 다 갖고 있겠죠. 전투는 신이 알아서 하게 하시고 인간인 우리는 사랑편에만 서면 안 되나요? 왜 그들은 자신의 사악함을 신의 이름을 가져와 마음대로 휘두르고 찌르고 죽이기까지 서슴없이 할까요? 신이 설마 그걸 사명이라고 인간에게 주시겠어요? 이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불안. 미래의 걱정, 근심 따위의 먹고 살 문제의 불안이 아니예요. 인간적인,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의 불안이예요. 주인공 아브라힘은 소위 잘나가는 저널리스트, 누구나 부러워할 미인과 결혼했고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1년도 안 돼 이혼을 하고 젊은 여자 아이들과 즐기기도 하며 가볍게 살고 있어요. 그래서 친구 후세인이 한 사람에게 가졌던 열정은 자신이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알아채지요. 죽음이 뻔히 보이는데 그 길로 곧장 걸어가는 후세인. 이단자와 결혼을 한다고 무슬림에게 총격을 받고 미국에 가서는 이슬람주의자를 혐오하는 어설픈 히틀러 숭배자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에게 결국 살해를 당하는 후세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멜렉나즈)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불안을 견디며 나아가는 후세인.


피에 중독되어 있는, 핏살로 세워진 시간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 피의 족속들은 여전히 칼을 들고 있어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도 그들은 활개를 치며 살아가고 있어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도시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모순처럼 느껴져요. 시간 여행이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잖아요. 인간에게 무거운 금기와 규칙들, 이념과 잘못된 신념들을 잔뜩 달게 해서 결코 날아오르지 못 하게 하는 곳, 죽기 직전까지 신화와 전설의 히잡을 쓰고 자신다움은 가려야 하는 곳,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쳐 쓰러져 죽게 되는 곳, 거대한 중력장이 작용하는 곳으로의 시간 여행이 되겠네요. 잔인한 중력의 발명자들, 존엄을 짓밟는 야만적인 남성들, 썩은 정치인들이 3박의 현란한 리듬을 두드려대며 폭주하는 동안 인간의 피를 짜내는 시간 속으로 말이죠.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야만 했던 후세인도 네르기스도 모두 유언처럼 "한때는 나도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남겨요. 한때는 사람이었지만 생각이 살짝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보다 못한 끔찍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두 사람. 과연 이렇게 죽은 이들이 두 사람 뿐일까 생각해 봐요. 시대마다 켜켜이 쌓아있는 시체들을 떠올려 봐요. 조금 다를 뿐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모든 사람들을요.


이 책을 덮으며 살아있는 나는 그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잠시 동안은 내 마음을 불안에 흔들리도록 놔 두어야 할 거 같아요. 흔들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