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으로 사는 법/ 틱낫한

읽는 명상

by 오아시스

스님의 글은 읽으면서 몸과 마음이 명상을 향해 깊이 달려가는 느낌이 들어요. 난 아주 정적인데 내 존재는 아주 동적인 움직임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요. 그래서인지 문장을 읽어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를 의식하며 깨어있게 되요. 무얼 하지만 전혀 고단하지 않고 편안한 느낌, 스님의 글은 이런 매력이 있어요.


1. 괴로움은 괴로움이 아닌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당신이 구름이라고 가정해 보십시오. 당신은 이것을 명상을 위한 예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주 미세한 얼음이나 물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몹시 가벼워서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공중을 떠다닐 수 있습니다. 수백만 톤의 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구름장들이 그렇게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미세한 얼음 결정체들 사이에 상호작용이나 충돌이 있습니다. 일부 결정체들은 하나로 뭉쳐 커다란 얼음 조각을 이루어 아래로 떨어지면서 커다란 물방울이 되는데 이것이 바로 비입니다. 하지만 물방울이 반쯤 내려오다 뜨거운 공기 덩어리라도 만나면 증발해서 다시 위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당신은 내려왔다 올라가고, 다시 내려왔다 올라가기를 반복합니다. 구름 속에서 끊임없이 윤회, 환생, 재생이 일어나는 거지요. 구름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비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구름은 매 순간 새로운 삶을 삽니다.
우리는 바로 탄생과 죽음을 겪고 있습니다. 재생도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 순간 다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안다면 우리의 재생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끊임없이 무언가가 들어오고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숨을 들이쉬고 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느낌을 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숨을 내쉬고 대소변을 보며 기존의 생각과 감정을 내보냅니다. 이렇게 공기와 물, 우주 전체가 우리를 통과하면서 우리를 새롭게 만드는 동안 우리는 다른 것들을 우주로 돌려보냅니다.

나라는 존재가 아주 새롭게 느껴지지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어딜 가겠느냐고 하지만 구름처럼 변화무쌍한 존재가 바로 나라고 하네요. 똑같은 구름을 보셨나요? 그럼 똑같은 '나'는 존재할까요? 똑같은 당신은 존재할까요?

스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 내 마음과 의식을 들여다보게 되요. 몸이 좀 피곤하다고 방바닥에 퍼질러 뒹굴대면서 하루를 뭉게고 싶은 불경한 마음이 뜨끔하고 정신을 차리지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내 보내야 할지 몸과 마음이 저절로 신중해 진답니다. 한 순간, 먼지 한 줌, 쌀 한 톨, 꽃 한 송이, 생각 한 덩어리, 감정 한 웅큼. 말 한 마디. 소중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온통 소중한 것들 뿐이지요. 삶은 소중한 것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심지어 숨쉬는 이 한 호흡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가족상봉, 기적 중의 기적이래요. 들숨과 함께 살아있음을 축복하지요. 이런 경이로운 숨쉬기를 하고 있을까요?


2. 괴로움을 일으키는 네 가지 잘못된 소비를 하고 있지요. 고통을 바꾸기 위한 자양분으로는 음식, 감각, 바른 욕구, 집단 의식을 잘 알아야 해요.

첫번째 자양분인 음식을 설명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사막을 건너던 젊은 가족 이야기를 예로 드셨습니다. 그 가족이 사막을 반쯤 건넜을 때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수없이 고민하고 논쟁을 벌인 끝에 부모는 어린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먹기로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한 다음 부처님께서 스님들에게 물었습니다.
"나의 도반들이여, 과연 그 부부는 아들의 살을 맛있게 먹었겠느냐?"
스님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부처님.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자기 아들의 살을 맛있게 먹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는 우리 안의 자비를 지킬 수 있는 방식으로 먹어야 하느니라. 그러지 않으면 자기 자식의 살을 먹는 것과 같아질 것이니라."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스턴트를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과 꼭 함께 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예화로군요. 저도 어렸을 때는 햄처럼 맛있는 음식이 없고 햄버거를 날마다 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품어봐서 아이들의 식성을 나무랄 수만은 없지만 먹는 음식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말해주고 싶어요. 오늘도 불닭이나 매운맛 떡볶이만을 찾고 치킨에 음료수, 과자, 햄버거 입맛에 열광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땅에서 자라난 채소, 야채, 과일을 먹일 지 참 고민이 되네요. 매운맛, 단짠단짠맛은 우리를 공장식 사람으로 개조하려는 대기업의 음모가 아닌지, 살짝 의심도 해 봐요. 공장식 음식, 공장식 사람, 공장식 교육, 공장식 일자리, 공장식 인생, 공장을 만드는 소수의 음모가들. 그들의 목표는?

자극적인 음식을 몸의 자양분으로 삼는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은 자극이 난무한 세상 안에서 살아내기 위해 얼마나 자극적으로 발버둥을 치게 될까, 기도하는 마음이 절로 드네요. "순한 땅에서 키워낸 순한 음식을 먹고 서정적인 존재로 자라나세요. 부디." 하고 말이죠.


3. 모든 견해를 초월하는 정견이예요. 성냥에 불꽃이 일면 성냥을 태워버리듯이 통찰이 생기면 그것의 견해도 없어질 거예요.

내 눈은 나의 것이면서 내 조상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조상들이 나와 함께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조상들은 수많은 세대에 걸쳐 열심히 일하면서 걱정과 스트레스, 분노와 두려움의 순간을 무수히 겪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고요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앉아 그 위대한 연대감을 누릴 기회를 단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또 가만히 앉아 자신의 호흡을 따르거나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해 본 적도 없고 주변의 멋진 환경을 접해 본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처럼 멈출 경우 우리의 모든 조상들도 약속이나 한듯이 동시에 멈춥니다. 그분들이 우리 몸 안에,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멈출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멈출 수 있다면 그분들 모두를 위해 멈춥니다. 그러면 그분들도 우리와 함께 멈춥니다.

이 구절을 읽고 한번도 풍족해 본 적이 없는 부모님의 인생을 생각해 보았어요. 내 몸의 세포들이 부모님과 이어져 있다면 내가 고통을 멈추고 휴식을 누리기로 결단하고, 좁은 소견을 멈추고 넓게 바라보기를 결단하며, 두려움에 조바심을 내고 달려가는 대신 느릿하게 걸으며 충만함을 느끼기로 결단해 보기로. 내 세포들의 느낌이 부모님들께 전달될 수 있을까요? 세대차이로, 생각의 차이로 말하기 싫었던 순간들까지도 화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밀려 와요. 읽으면서 제가 명상을 했군요.

1,2년이라도 돌아가시기 전에 몸도 마음도 의식도 풍족하게 누리며 살도록 해 드리고 싶다는 소망도 차 올라요. 오늘은 내가 먼저 해 보려고 해요. 내가 먼저 알게 되었으니까요. 옥수수 씨앗이 자라서 수많은 옥수수 알갱이들이 되고 가지가 되고 이파리가 되는 것처럼 부모님이면서 나이기도 한, 부모님과는 다른 존재인 나이지만 나만일 수 없고 부모님과 이어져 있으니 제가 먼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아서 부모님께 알려드릴게요. 우리가 연대해야 할 관계라는 걸 깊이 받아들이게 되는군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도움들을 받게 되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결정, 태도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기도하고 크기도 한 꿈도 가져봐요.

내가 하는 생각에는 내 서명이 들어있다고 해요. 그 생각들은 우리가 사라져도 남게 되지요. 서명이 담긴 생각이라, 정말 좋은 생각을 하고 싶지 않으세요?

우리는 모두 창조주의 씨앗들일거예요. 어쩌면 거대한 옥수수 한 자루에 담긴 옥수수 알맹이 하나일 수도 있죠. 색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지만 씨앗은 하나였던 옥수수 세상 같은 우리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거예요. 무엇이든 함부로 하지 않겠다고 대신 깊이 생각해서 사랑으로 보듬는 지구인이 되어보겠다고 서명을 써서 생각을 날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