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선은 고래 잡는 배, 누가 탔나 하면요. 이슈마엘처럼 고래도 잡아보고 3년간 식과 주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작살을 잘 다루며 한 때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족이었던 퀴케그, 먹고 살기 힘든 잡다한 사람들, 흰고래를 잡아 복수하고 말겠다는 에이해브, 등등이예요.
뭐 꽤나 존경받는 것과도 거리가 멀고 고상하게 여겨질 수도 없는 피범벅과 난장판이 연상되는 직업인 셈이예요. 고래 기름통을 가득 채워 와서 팔게 되면 자신의 지위대로 지분을 받는 직업이었나 봐요. 예를 들면 주인공 이슈마엘은 300번 배당이예요. 그건 배가 이윤을 남겼을 때 1/300 만큼만 가질 수 있다는 말이예요. 이익금을 생각하면 피쿼드(포경선의 이름)에 오른 이유는 돈이 아닌 거 같아요. 피쿼드에 투자한 대주주들의 생각은 다르지만 말이예요.
그렇다면 이슈마엘에게 포경선은 어떤 의미일까요. 음~~ 굳이 비교하자면 남보다 화려하지도 귀족적이지도 우월하지도 돈이 많지도 않는 삶인건 확실해요. 더 많은 다른 부정적인 비교들도 있겠지만 이쯤만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 나가자마자 한 달 안에 큰 폭풍을 만나 죽을 위험도 엄청나게 높은 삶이기도 해요. 살아올지 죽어올지, 알지 못 할뿐더러 선장처럼 고래를 잡다가 외다리가 될 수 있는 큰 사고들이 도처에 널려있기도 하고 호되게 몸을 혹사해야 하는 고된 길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포경선을 하버드며 예일 대학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는 거예요.
세계 최고의 지성들만 갈 수 있는 하버드와 예일대. 감히 자신의 삶의 현장을 하버드라고 예일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손 좀 들어볼래요? 전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삶을 사랑하는 어조로 내가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은 일류야!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삼류인데 일류의 현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껴안기 고난도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신은 우리의 각 삶을 어떤 이유로든 다른 처지에 놓이게 하셨지만 우리가 이를 하버드나 예일대로 대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기도를 통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서려는 분들도 많겠지요.
이슈마엘처럼 이익 배당금이 아니라 포경선이라는 공간, 3년이라는 항해의 시간 자체를 소중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사랑할 준비가 되었냐고 내게 되물어요. 이 문장은.
전 혹시 제 삶을 빨간 줄을 빡빡 그어서 고쳐야 할 원고더미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어요. 제가 고치지 못 할 부분은 전문가가 나서서 고쳐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문장은 제게 선전포고쯤 큰 소리로 말하고 있어요. 넌 지금 이순간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창조하는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지금 이곳, 이 시간의 너는 하버드 생이고 예일대 생이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