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앞으로 내가 살 나날은 나사로가 부활한 뒤 살았던 나날만큼이나 즐거울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이나 몇 주를 항해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나날들은 완전히 덤으로 얻은 나날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살아남은 셈이다. 나의 죽음과 매장은 내 가슴속에 깊이 간직되었다.
고래를 잡으려고 본선에서 보트를 띄워 고래를 뒤쫓아 따라갔으나 암초에 부딪혀 보트는 박살이 나고 죽을 뻔한 선원들은 본선의 선원들에게 구출되요. 이때 주인공 이스마엘도 깊은 바다에서 노숙할 뻔하다 구출되고 나서 유언장을 쓰지요. 어설프게 유언장을 쓰면서 한 차례의 죽음을 넘기고 기분 전환을 해 버려요.
사람들은 돈을 내고 일부러 죽음의 체험을 하기도 하지요. 관속에 들어가 보기, 유언장 써보기 등등의 프로그램이 한때 유행하기도 했어요. 진짜 죽음 같은 사건을 겪고 삶이 변하기를 바래서 일거예요. 일상 생활 속에서는 그만그만한 마음만 먹어지고 왈칵 틀어지지가 않아요. 아무리 새 마음을 가져보려고 해도, 밑도 끝도 없이 땅 속을 파내려간다고 석유나 금은보화를 찾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처럼, 진짜 원하는 마음을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죽음과도 같은 사건이 찾아왔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문장을 쓰기도 해요. 삶의 반전이 일어났던 건 정말 마음이 죽어버린 사건을 겪었기 때문이예요. 이럴 때는 펄떡대며 살아있으면 안 되요. 그냥 콱 죽어야 해요. 온전히 죽어야 해요. 그래야 나사로의 부활을 맞이할 수가 있어요.
자의식 덩어리. 마음이 죽기 전까지는 몰랐죠. 전 지옥에 빠져 있다는 걸 알았지요. 지옥은 죽어서 가는 불구덩이가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지옥에서 빠져나가야 하잖아요. 어떻게? 부지런히 걸어가는 것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야 입구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지옥문이 어떻게 열렸는지는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한밤의 아이들’이란 책을 읽고 난 후 내 마음의 각도가 달라졌다는 거예요. 참 신기한 일이예요. 제가 벗어 놓은 나의 정신적인 허물까지 보였어요. 책을 한 권 읽었을 뿐인데! 니체라면 '마음 안에 1000개의 눈이 있는데 마침내 한 개의 눈을 뜨셨구료' 라고 할까요.
어떤 계기로 나의 두 번째 눈을 뜨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난 전과는 달라요. 신념털이라고 할까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벗고 있었다는데 이제야 그 이유가 알아졌어요. 둘은 옷만 벗은 게 아니었어요. 분별과 판단을 벗어버린 상태였던 거예요. 그래서 그곳이 에덴동산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에덴동산에 두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니라 벗은 두 사람이 있어서 그곳이 에덴동산이었던 거죠.
이제는 마음을 무겁게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럼 마음이 무너지고 마니까요. 바람이 불어오면 마음에 있는 걸 날려 보내요. 그럼 또 다른 바람이 무언가를 가지고 마음에 들어오겠죠. 자연스럽게 보내고 받아들이면서 내 마음을 들어볼 거예요. 나가는 손님, 들어오는 손님 정도는 알아야 하니까 말이죠. 이제야 신이 빚은 인간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살 맛이 나죠!
이슈마엘처럼 죽음의 사건을 유언장으로 써 넘기며 마음에 간직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야 나사로의 부활을 수시로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죽는 거에 너무 겁내지 말고 자주자주 죽고 자주자주 살아나면 훨씬 보드랍고 촉촉한 생기가 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