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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Dec 12. 2022

아마겟돈 타임

시간은 휘발되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아마겟돈이란 선과 악의 세력이 싸울 최후의 전쟁터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럼 아마겟돈 타임이란? 1980년 뉴욕, 유대인 가정에서 12살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폴’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폴의 내면에서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폴의 ‘선의 세상’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사람은 폴의 외할버지다. 외할아버지는 “과거를 잊지 말라”는 대사를 신념으로 갖고 사신다. 그럴만도 하다. 잠깐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 보자.


외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원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셨다. 그런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술취한 군인들이 장난삼아 부모님을 칼로 찍어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쳐야 했다. 폴란드, 체코, 아일랜드 등등의 유럽 나라들을 전전하다 미국에 정착하게 된다. 미국에 와서 (폴의)외할아버지가 자라는 동안에도 서러웠다. 유대인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어디서든 사회 안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 했다. 면접에서도 번번이 떨어지는 일을 당해야 했지만 어찌했든 차별하는 세상과 싸우고 노력해서 지금은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계신다.


폴의 ‘악의 세상’을 키우는 곳은? 바로 학교다. 폴은 처음에는 공립학교에 다닌다. 누구나 다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는 곳, 그곳에서 흑인 친구 ‘죠니’와 단짝이 된다. 죠니는 낙제생이고 선생님은 그의 존재를 경멸한다. 죠니는 선생님과 사람들과 세상으로부터 당하고 사는데 이골이 났지만 함께 사는 할머니에게 다정하고 친구인 폴에게도 더 없이 유쾌한 친구다. 둘은 맘껏 웃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정체 모를 담배를 피우다 학교 화장실에서 걸리고 만다. 그 담배는 대마초였다. 그 일로 폴은 외할아버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사립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사립 학교는 뭐든지 삐까뻔쩍하다. 건축도 컴퓨터 자재들도 교복도 학비도... 백인들만 우글대는 사립학교의 후원자는 트럼프 집안이다. 백인들만이 위대한 나라, 미국을 이끌 리더가 될 아이들이라 외치며 연설하는 그곳은 공화당을 지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흑인이 친구라는 말을 꺼내기라도 하면 이상한 얘 취급을 받는 분위기다. 또 트럼프의 누나로 보이는 여성 검사가 남자들 사이에서 리더로 우뚝 설 여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한다. 이 누나는 트럼프 대선 때 친누나임에도 트럼프의 비리를 폭로하며 반대했던 그 캐릭터같아 흥미로웠다.


폴은 시시때때로 말한다.

 “전 예술가가 될 거예요.”
부모님은 펄펄 뛴다. 예술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니 전문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직 외할아버지만이 “네가 원하면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아무도 막을 수 없어.”라고 폴의 꿈을 지지해 준다.

폴은 또 묻는다.

“사람들은 죠니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멀리 하라고 하고 부당하게 대해요.”

외할아버지는 말한다.

 “넌 행동해야 해. 말해야 한다고 알겠니?”


외할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알게 되서인지 세상의 속성을 알아버린 기분이 든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번에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다음에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음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다음에는 이민자라는 이유로, 다음에는 출신지가 다르다는 이유로, 다음에는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다음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음에는 학벌이 낮다는 이유로,  … 다음에는, 다음에는 끝도 없이 이어질 판이다. 세상은 차별을 버린 적이 한번도 없는 듯 하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폴과 죠니는 자신들의 꿈을 찾아 플로리다로 떠나기로 하고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립학교 컴퓨터를 몰래 훔쳐서 팔려고 하다 걸리게 된다. 둘다 경찰에 잡혀 가지만 폴은 풀리고 죠니는 경찰서에 남는다. 폴이 이 모든 일을 계획했지만 죠니가 그 모든 불법적인 행동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했다. 세상이 잔인하도록 본성을 드러냈다. 끔찍하도록 부당하고 차별적이었다.

 

혼자 풀려나서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아 눈물을 흘리는 폴 앞에 (얼마전 뼈암으로 진단받고 수술을 받고 깨어나지 못 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환영처럼 나타나신다.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아 폴에게 이야기를 나눈다.

"불평등한 세상과 싸우는 일은 어렵지만 넌 부당함에 눈을 감지 않고 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해."


폴은 자라서 자신의 꿈대로 예술가가 되었다. 바로 자전적인 영화를 찍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자라는 내내 외할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담아 둔 게 분명하다. 외할아버지를 위한 추모 영화로도 읽힌다. 외할아버지 캐릭터가 너무도 친근해 내게도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 해 줄 것만 같은 착각이 든다. 어떤 기자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소중한 존재와 아름다운 순간이 어떻게 존재했다 사라졌는지.”


외할아버지 한 분만으로도 폴의 세상은 완전하게 지지받고 있었다. 정말 딱 한 명이라도 괜찮나보다. 돌아가셔도 지금 곁에 없어도 그분과 함께 했던, 나누었던 시간과 이야기들이 폴에게는 두고두고 꺼내 먹을 수 있는 기억 영양제였다.


시간은 휘발된다.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은 휘발되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이야기가 없다면 시간은 아무 소용이 없다. 휘발되고 말테니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테니까. 외할아버지의 시간은 폴에게도 이야기를 남겼다. 폴은 나에게까지 그 시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 시간들은 어떤 이야기를 자아내고 있는지 문득, 돌이켜 보게 되었다. 난 내 시간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창조해 내고 싶어하는 걸까. 시간으로 좋은 이야기를 짓고 싶다. 시간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짓고 싶다.

"내 이야기는 밥 먹고 볼일 보고 씻고 일 좀 하다 피곤하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자다가 끝났어. 남들이 서성이는 곳에 가서 나도 서성였지만 별 볼일 없었지." 꺄~~ 금싸라기같은 시간으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다.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그런 소망이 생긴다. 시간으로 나스러운 근사한 이야기를 짓고 싶다는 소망, 그럴려면 시간을 다루는 좋은 인간 되어야 할 게다. 알겠니,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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