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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Apr 19. 2023

그날 침묵을 들었다

엄마의 인내

평범한 사물들의 인내심


그것은 일종의 사랑이다. 그렇지 않은가?

찻잔이 차를 담고 있는 일

의자가 튼튼하고 견고하게 서 있는 일

바닥이 신발 바닥을

혹은 발가락을 받아들이는 일

발바닥이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아는 일

.....

계단의 사랑스러운 반복

그리고 창문보다 너그러운 것이 어디 있는가?

                                                                - 팻 슈나이더


'암'

미국인들 5명 중의 한명이 암이라는데, 그럼 곧 우리 나라도?

그럼 그렇지. 남성은 네 명 중 한명이 암, 여성은 다섯 명 중 한명이 암이란다.

그래도...

엄마의 건강검진 통보란에 '제자리암'이라고 써 있었다. 분명 ... 암이라고.


동생 부부 덕에 엄마는 시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빠르게 날짜를 잡았다. 설날 연휴 기간 전이라 기억이 또렷이 난다. 코로나 기간이기도 해서 가족 한명만이 간호인 자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제자리 암이라 위의 절반에 해당하는 부위의 피부 조직을 떼어내면 된다고 했다. 그래도 떼어낼 면적이 너무 크고 떼어내서 조직을 검사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얀 환자복을 입은 엄마와 나. 대기실에는 우리 말고도 인생의 고비를 넘어가야 할 다른 환자들이 겁을 먹고 무표정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50초반으로 보이는 어떤 여성, 나이도 있지만 아름다움이 아직 육체에 머물러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건강검진을 하다 무엇이 발견됐는지 환자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다. 간호사가 가족에게 전화를 거는데 자꾸 통화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전광판에 엄마 이름이 떴다. 피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엄마는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셨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다. 매번 건강검진을 빼 놓지 않고 받을 뿐더러 위내시경은 매년 꼬박꼬박 챙겨서 하던 엄마가 반년도 안 되서 위에 암이 생긴 건 나 때문이었다.  


내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면서 엄마는 나보다 더한 고통에 잠겼다. 고통이 몸에 표식을 새길 정도로 엄마는 몸부림을 치시고 영혼부림도 치셨겠지. 달달달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간신히 입 안에 넣으며 버티려고 애쓰셨겠지. 딸의 인생 봉오리가 피기 시작해야 하는데 봉오리인 채로 줄기 채 끊어지게 생겼으니 그시절 기나긴 밤은 대신 엄마 몸에 암을 피어나게 했다. 혼자서 내내 기다리며 눈물만 내내 쏟았다. 다른 환자들은 시술이 끝나고 나오는데 엄마만 나오지 못 하고 있었다. 대기실에 나 혼자 남았다.


환자복도 입지 못 한 채 들어갔던 여성도 시술실에서 나왔다. 장정한 아들은 피씨방에서 죽치고 있다 이제야 엄마를 찾아왔다. 30이 거의 다 되가는 나이인데도 애송이처럼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엄마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간호사가 아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설명을 했다. 드디어 엄마도 시술이 끝났다. 보호자인 나는 의사 선생님 앞으로 불려가 컴퓨터 화면상에 보이는 엄마 몸 속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부위가 커서 오래 걸렸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알아보지 못 했다. 웅크린 엄마의 뒷모습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엄마와 증세가 같아 엄마보다 먼저 들어간 아주머니의 신음 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엄마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꾹 닫고 있었다.

"엄마."

고개를 돌린 엄마가 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았다.

"울지마. 엄마 괜찮아."

환자가 보호자에게 위로를 한다.

또 괜찮댄다. 맨날 괜찮다고 한다.

옆의 아줌마는 고통을 뿜어내는데 엄마는 이 순간에도 고통을 안으로 삼키고 괜찮다고만 한다. 시술을 받고 나면 몸에 오한이 와서 죽을만큼 떨린다는데 엄마는 준비해간 찜질 온돌을 가슴에 품고 잠이 드셨다. 신음 소리 한번 새지 않았다.


조용히 잠드신 엄마의 인내심.

인내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침묵한다.

나는 그날 엄마의 침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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