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 넘음]은 같은가
문장을 고르지 않았다. 이미 정해져 있던 문장을 오늘의 몫처럼 받아 적었다. 의미를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았고,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도 판단하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는 속도만큼 생각이 따라왔고, 몇 번은 멈췄다.
오늘의 필사
언제나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를 평생 소중이 간직하라. 많은 사람들이 자꾸 선을 넘는 이유는 선이 어디인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선을 넘지 않는 건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서, 수고를 들이는 대신 그냥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언제나 선을 넘지 않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소중한 사람이다.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노트 발췌
오늘은 선을 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문장이었다. 문장을 꽤 오래 쪼개서 옮겨 적었다. 이 문장은 예의나 다정함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내게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는 문장이었다.
모든 선 넘음은 같은가.
사람들은 대체로 선이 어디인지 알고 있다. 어디까지가 묻지 말아야 할 영역인지, 어디서부터는 멈춰야 하는 행동인지도 안다. 그래서 선을 넘는 이유는 대부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선을 넘는 편이 자기에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필사를 하다 보니 선을 넘는 행동이 모두 같은 얼굴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선 넘음은 하는 쪽이 손해를 볼 걸 알면서도, 상황이 왜곡된 채 굳어지지 않도록 불편함을 감수하며 선택되는 것이고, 또 다른 선 넘음은 그저 자기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자기 위치를 확인하고, 타인의 삶을 재료처럼 다루기 위해서.
결과보다 중요한 건 그 선을 넘게 만든 의도다. 선을 넘는다는 건 언제나 무례한 일이 아니라, 그 선을 넘으며
누구를 보호하려 했는지, 누구를 소비하려 했는지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선을 지키는 사람만큼이나 선을 넘을 때조차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기만족보단 상대의 존엄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
말은 쉽게 퍼지고, 이야기는 쉽게 가공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대상이 되고, 누군가는 도구가 된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넘는 선은 대개 관계를 망가뜨린다.
오늘의 필사는 선을 넘지 말자는 다짐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선을 넘을 것인가를 나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에 가까웠다.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은 귀하지만, 선을 넘더라도 끝내 나를 지키는 쪽으로 오는 사람 역시 쉽게 흘려보내선 안 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