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왼손필사는 뇌를 즐겁게 한다고 해서 홀린 듯이 구매. 얼기설기 적어지는 글씨가 가끔 인생도 얼기설기 살고 싶은 나와 닮아 마음에 들었다. 내 왼손은 이런 글씨를 쓰는구나-
오늘의 필사
누군가 남들과 발맞추지 못한다면, 그건 그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듣는 소리에 따라 걸어가게 두어라. 박자가 어떻든,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발을 맞출 필요는 없다’는 말로 이해했다. 그 해석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는 않았다. 물론, 타인의 삶의 속도에 개입하거나 누군가를 내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는 뜻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한 관계나 이미 들어와 있는 상황 안에서만큼은 서로 발을 맞추려는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 의지는 상대를 바꾸겠다는 마음이라기보다 상대를 존중하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지금 어떤 속도로 걷고 있는지, 어디쯤에서 숨이 가쁜지를 한 번 더 살피는 일이다. 관계에서의 발 맞춤은 항상 한쪽만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맞추고 있을 때, 누군가는 나에게 맞추고 있다. 우리는 늘 동시에 맞추고, 맞춤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균형은 자주 어긋난다.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함께한다는게 어렵다고 느껴질 때는, 누가 더 많이 맞추고 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거나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는 마음 아직 남아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는 때 인지도 모른다. 과한 질문이 계속되면 결국 남는 건 '굳이'라는 냉소주의가 남는다. 떄로는 우리가 다른 북소리를 듣고 있더라도 같은 관계 안에 머물기로 선택했다면, 가끔은 발을 맞추려 애써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