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하지 않는 인간

파괴되었습니까? 패배했습니까?

by 낭생희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문장인데 필사로 적으며 곰곰이 생각을 정리했다. 이렇게나 내가 생각을 대충 하며 책을 읽었던가 하며 꾹꾹 눌러썼다.


오늘의 필사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이 말은 승리의 순간에 나온 문장이 아니다. 거의 모든 것을 잃은 뒤에 나온 말이다.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를 불운한 노인이라 여긴다. 85일째, 그는 혼자 먼바다로 나가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다. 사흘 밤낮을 버틴 끝에 마침내 그것을 잡아낸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 상어 떼가 몰려온다. 그는 끝까지 싸우지만 청새치는 거의 다 뜯겨 나간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 옆에 매달린 것은 거대한 뼈뿐이다. 결과만 보면 완전한 실패다. 노인은 상처투성이고,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때 그는 중얼거린다.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이 문장이 오래 남는 이유는, 이 말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겼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잘될 거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두 단어를 분리한다. 파괴와 패배.

파괴는 외부에서 일어난다. 몸이 망가지고, 결과를 잃고, 애써 잡은 것이 사라지는 일.

패배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스스로를 끝났다고 규정하는 순간, 다시는 나아가지 않겠다고 결론 내리는 태도. 산티아고는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는 패배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잃고 돌아왔지만, 소년은 여전히 그를 존경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이기자”는 말이 아니다.

망가졌고, 잃었고, 부서졌을지언정 나는 나로 남아 있다는 존엄의 선언처럼 읽혔다.


파괴는 결과이고,

패배는 결론이다.

결과는 빼앗길 수 있지만,

결론은 스스로 내린다.


그렇다면 파괴는 재건의 시작이 아닐까.

이글을 읽는 당신의 일부는 파괴 되었나, 패배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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