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결국 살아남는 최후의 1인은?
'다 죽으면 무슨 재미로 살지'라는 생각으로 필사했다.
오늘의 필사
누군가와 다툼이 생길 것 같으면 그 순간, 반드시 떠올려 보세요. 당신도, 상대방도 이윽고 죽어서 이곳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결국엔 당신도 사라진다. 나도 사라진다. 그렇다면, 아무려면 어떤가.'
- 코이케 류노스케, 초역 부처의 말
정말 아무려면 어떨까?
어차피 너도 나도 죽어서 여기서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아무려면 어떤가'의 태도로 상황을 맞이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분명 달라지는 건 있다. 이겨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자존심이 덜 날을 세운다. 지금 이 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지, 이 관계를 망가뜨릴 만큼의 문제인지, 10년 뒤에도 기억할 일 일지. 이 질문들이 끼어들면 싸움은 대개 작아진다. 목소리는 낮아지고 감정은 한 발 물러선다.
"곧 상대도, 나도, 이 문제도 사라진다." 이 생각은 분명 나를 잠깐 어른처럼 만든다. 이어지는 생각은 '어차피 다 사라질 건데 굳이 이해받으려고 애쓸 필요가 있나. 굳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논쟁할 필요가 있나'였다. 그러다 보면 싸움은 줄어들지 몰라도 관계의 온도도 함께 식는다. 초연해진 게 아니라 조금씩 철수하고 있는 거니까. 이런 건 평온이라기보다 허무주의에 가깝지 않나?
그래, 어차피 모두가 사라질 거라면 지금 내 삶에서 남아 있을 사람은 누가 있을까. 같은 시기를 통과했을 뿐인 사람, 같은 공간을 공유했을 뿐인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옅어진다. 그건 배신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다. 그 시기에 필요했던 연결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멀어졌는데도 내 선택 기준에 영향을 주고, 내가 힘들 때 두둥실 떠올라 힘이 되고,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에 스며있는 사람도 있다. 이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곁에 없더라도 내 삶 안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한다. 결국 타인도 남을 수 있을까? 타인이 남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어차피 모두 사라진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타인보다 '나'일 확률이 높다. 우리는 결국 선택의 총합으로 남으니까. 나의 태도, 내가 감당했던 감정, 내가 지켰던 선은 나한테 축적되니까.
지금부터 중요한 건 "어차피 사라진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위해 쓸지, 성숙하기 위해 쓸지 혹은 이미 습관적으로 선택한 방식은 무엇이었는지 들여다보는 게 아닐까.
읽는이의 삶에는 어떤 사람들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지, 그리고 남아있는 나는 어떤 존재로 미완성되어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