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치(Searching, 2018)
모큐멘터리(mocumentary 또는 fake-documenatry)의 형식을 띠고 있는 영화는 보통 실험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정해진 공간에서 촬영감독이 촬영하고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블레어 윗치(Blair Witch, 1999)와 같은 영화는 그중에서도 단연 이 장르의 영화를 대중적으로 만든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이후로 헐리웃에서는 공포영화를 제작할 때 모큐멘터리 장르가 각광받았고 이후 파라노말 액티비티(Paranomal Activity, 2007), 클로버필드(Cloverfield, 2008) 등 여러 영화가 제작되었고 이는 시리즈물로 정착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최근 곤지암(2018)을 통하여 이런 시도가 흥행으로 이어졌고 관객과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유사한 형식의 반복은 참신한 것이 더이상 새롭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또?'라는 반응을 일으켰다. 그정도로 유사한 형식의 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모큐멘터리 장르의 영화는 으레 유사한 연출방식을 고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다소 뻔하다고 회자되기도 한다.
한편 최근에는 영화 친구삭제(2014) 에서 영상통화기능이 있는 스카이프를 이용하여 모니터라는 영역으로 화면을 한정시키는 시도가 있었다. 모큐멘터리의 형식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등장인물이 외부에서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집에서 웹캠으로 찍고 통화하는 영상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고 볼 수 있었다. 또한 영화의 화면을 모니터로만 한정시킴으로써 제한된 화면을 통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려는 노력이 참신했다. 오늘날 영상통화라는 기술의 발전을 모큐멘터리 장르에 녹임으로써 또다른 모큐멘터리의 시도를 이뤘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영화 서치(2018)은 사 년전 개봉한 친구삭제와 여러모로 유사하다. 영상통화의 방식을 화면에 담는다거나 주인공이 바라보는 모니터로 그 영역을 한정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확실히 이 영화는 친구삭제가 갖고 있는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스카이프에 상응하는 페이스타임뿐 아니라 과거에 캠코더로 촬영했던 영상, 크롬을 통한 구글검색, sns 등의 컨텐츠로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컴퓨터 화면에 뜨고 우리가 평소에 모니터를 통해 보는 모든 화면을 동원함으로써 형식의 제한을 컨텐츠의 다양성으로 넓혔던 것이다. 또한 화면의 일부를 확대하고 축소시킴으로써 긴장감을 조였다 풀었다 하였고 딸의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위한 노력의 흐름을 담아냄으로써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친구삭제를 통해 시도되었지만 매우 한정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새로운 형식을 서치를 통해서 여러 기능을 담아냄으로써 재미와 신선함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화면 자체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은 13일만에 마쳤지만 이후 편집은 1년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촬영 자체도 주인공의 시선처리까지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에 영화를 위해서 화면에 펼쳐질 모든 창의 경로를 짜두어야 할 정도로 신경을 섬세하게 써야 했다. 편집은 화면의 세부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편집작업이 필요했고 가장 노력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편집담당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영상:
https://twitter.com/SearchingMovie/status/1034888634422288384)
아버지인 데이빗은 하룻밤 사이에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우선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여 딸의 흔적을 찾아간다. 하지만 친구한 명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데이빗은 어렵사리 구한 친구에게 연락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딸을 평소에 잘 알고 있지 못했다는 현실 뿐이었다. 페북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어렵게 알아낸 이후 200여명의 친구들과 연락을 하면서 얻는 단서들을 통해서 딸이 평소 혼자였으며 인터넷을 통한 개인방송을 즐겨했음을 알게 되었다. 딸이 자주가는 곳을 알아낸 데이빗은 그 곳에서 딸이 타던 자동차가 연못아래에 수장되었고 그녀의 혈흔이 묻어있었으며 매주 피아노레슨비로 주었던 돈이 다발로 있음을 발견하였다. 딸이 납치되었음을 확신하고 수사를 진행하던 중 성폭행 및 살인의 전과가 있는 자의 범죄자백 영상을 찾게 되어 사건이 마무리 되는 것 같았다. 이제 놓아주려고 하던 중 담당 형사의 수상한 점을 발견한 데이빗은 사건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 전과범이 진범이 아님을 발견하게 되고, 딸의 생사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모니터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서도 뉴스, sns영상, 과거 기록영상, 페이스타임, 아이메시지 등을 통하여 사건의 흐름을 이해시킬 뿐 아니라 스릴러의 긴장감과 극의 전개의 치밀함까지 잡았던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집중을 놓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오늘 내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와 기술들이 적절히 배치되고 활용됨으로써 내가 딸을 잃고 내 랩탑을 이용하여 딸에 관한 실마리를 푸는 입장으로 이입하여 영화를 관람하게 되면서 영화는 일종의 체험이 될 수 있었다. 이는 새로운 방식의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영화의 흥행도 보장됨을 의미한다.
영화사에서의 가치와 장르적 재미를 모두 잡은 이 영화를 통해 앞으로 많이 유사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을까 예측해본다. 물론 이들 중에는 평작도 평작 이하의 작품들도 존재하겠지만 이와 같은 시도들의 끝에는 또다른 참신함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가 기술을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은 분명 꽤 기대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시도들의 끝에는 또다른 참신함이 있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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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인 존조의 등장은 나를 비롯한 한국인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데 성공했다. 헐리웃 스릴러 장르에서 아시아인이 단독으로 주연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는데 이를 두고 왜 아시아인을 캐스팅했냐는 질문이 오갔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감독이 특별히 아시아인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감독을 맡은 아니쉬 차칸티는 인도계 미국인이었고 각본을 함께 담당했던 세브 오헤니언은 아르메니아 미국인으로서 이들은 인종의 다양성과 모든 이들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하는 작품을 찍었던 이력이 있다. 각본을 준비하면서도 동양인이 등장하는 영화에 인종적인 요소를 필수적으로 포함시키는 헐리웃의 전례를 따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단지 한인가족을 중심으로 구상한 것이라고 설명 하였다. 인종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더이상 왜 동양인이냐는 질문은 필요없게 되는 것이다. 없던 차별을 만드는 질문은 있을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지양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아시아인을 주연으로 캐스팅했냐는 질문이 오갔다고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감독이 특별히 아시아인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