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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Aug 16. 2023

카운터 일상


얼큰하게 취한 중년 남성 두 분이 카운터로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었다. 난 하던 일을 멈추고 종종걸음으로 카운터에 가서 포스기 모니터와 손님들이 앉았던 테이블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어디 보자... 소주가... 하나에... 둘에... 석삼... 너구리... 맥주는 한놈... 두식이..."


술병의 숫자가 맞는지를 체크했고 두 중년 남성은 금세 카운터 앞에 도착했다.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올라 있는 같았다.


"야! 카드 치아라. 카드 뺏들기 전에 치아라 했다이."


"뭔 소리야! 오늘은 내가 낸다고 했잖아. 내가 낸다니까 내가!"


"에헤이 거참 손 부끄럽게 하네. 내가 낸다고 내가!"


"아냐 아냐. 이걸로. 사장님 이 카드 받으세요!"


"에헤이, 사장님 이거 받으세요. 이거. 이 자슥 카드는 절대 받으면 안 됩니데이. 이 자슥이 사실은 코로납니다. 코로나!"


"! 코로나 끝난 지가 언젠데 코로나 타령이야. 고집부릴걸 좀 부려라. 내가 낸다고 했잖아! 사장님 뭐 하세요. 빨리 제 카드 안 받으시고!"


"에헤이, 사장님 이걸로!"


"야, 내가 낸다!"


"어허! 내가 낸대도!"


난 입만 마네킹처럼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 분이 그렇게 원하신다면 그냥 두 분 다 계산하셔도 됩니다!"


실랑이 삼매경이던 두 중년에게 내가 말했다. 그러자 둘은 실랑이를 멈추고 고개를 휙 돌려 날 보더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표정으로 눈을 깜빡깜빡거렸다.


"뭐라고? 두 분 다... 계산...? 아아아아아 하하하! 에헤이 그건 아니지.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 하하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요."


"뭐야? 사장님이 방금 뭐라고  거야?"


"니는 이제 귀도 먹었나. 아니 우리 둘이 서로 계산한다고 계속 그러니까 고마 둘 다 계산해도 된다잖아. 니 카드 내 카드 두 개 다.  사오정 같은 놈아!"


"뭐? 아아아아아 그 말이었어? 야 사장님 장사수완이 보통이 아니시네. 금방 부자 되시겠어. 완전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으시네. 하하하!"


두 중년이 어이없다는 듯이 보면서 웃었다.


"아니, 하도 서로 계산하겠다고 그러시니까  다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이 뭘까 싶어서요. 하하하. 세상천지 누구 하나 술 한잔 사주겠다는 사람도 없는 두 분 보니까 내가 너무 부러워서 안 그럽니까. 참 보기 좋으시네요.  맞다! 그러면 되겠네. 공평하게 제가 눈 딱 감고 두 분 카드로 카드 뽑기 하면 되겠네요. 카드 뽑기!"


"오! 그거 좋은 방법이네!"


"그래 그래. 사장님이 뽑으면 누가 됐든 이제 딴소리하기 없기로 하면 되겠네."


"콜! 콜! 싸장님이 가만 보니까 완전히 판관 포청천이네! 판관 포청천! , 니 카드 얼른 일로 줘 봐라."


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더듬더듬 서서히 카드 쪽으로 손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연식은 못 속인다고 중년 남자 중에 한 명은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나 나왔을 법한 드럼 입소리를 내며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자, 우리 싸장님은 과연 누구의 카드를 뽑을 것인가! 자, 기대하시고! 두구두구두구두구두구!"


을 놀리듯이 엄지와 중지로 실컷 저울질을 했다. 우리 셋은 마치 구슬을 쥐고 홀짝 내기를 하는 코흘리개 초딩들 같았다. 난 그만 놀리기로 하고 엄지에 걸린 카드를 휙 뽑아 들었다.


"짠!"


난 눈을 뜨고 둘의 표정을 살폈다.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걸린 듯했다.


"아이고! 이거 내가 걸렸네! 사장님이 이야 거기서 또 기가 막히게 내걸 뽑아뿌노! 사장님 인상 좋게 봤는데 이거 다시 생각해 봐야겠는데. 에이 참말로."


"야! 왜 그래? 갑자기 계산하기 싫어졌어? 반응이 왜 이래?"


"아니, 계산은 내가 해도 되는데 아니, 이거 영 기분이 뭐가 진 거처럼 기분이  찝찝한데? 우리 새로 한판만 다시 할까?"


"야! 야! 야! 뭐래? 분명히 딴소리하기 없댔지. 내가 이겼네. 이히! 하하하!"


"근데 사장님 뽑기 전에 살짝 실눈 뜬 거 아닙니까? VAR VAR 이거는 VAR 다시 돌려봐겠는데?"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양손 검지로 허공에 사각형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말했다.


"야, 사나이 무슨 한 입으로 두 말이냐!"


난 순간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사겠다고 실랑이었사람들이 순식간에 서로 안 사겠다고 실랑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카드 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요새는 끊으면 바로 다이렉트로 폰에 다 다입니까. 영수증은 됐습니데이 그라고 덕분에 잘 묵고 갑니데이."


"야, 영수증 확인해 . 사장님이 두 번 끊었을지도 모르잖아!"


", 맞네! 사장님 설마 두 번 끊은 거는 아니지요?"


"!  번 끊을라다가 참았습니다."


"하하하! 오늘 사장님 덕분기분 좋게 웃고 간다. 또 올게요. 봉이 김선달 사장님! 하하하!"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야! 이차는 네가 내라 인마! 우리 어디 가꼬!"


"그럼 이차도 카드 뽑기 콜?"


"오! 그래. 이번에는 내가 기필코 이긴다. 가자!"


중년 남자 둘은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둘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느라 바빠서 본 지도 오래된 고향 친구들이 떠올랐다.


다들 잘 살고 있으려나. 

다들 보고 싶네.


나도 눈도 부딪히고 소주잔도 부딪히면 참 좋겠구먼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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