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뺑그이 Aug 19. 2023

OK COMPUTER


덕수는 따스한 햇살이 드리운 통유리 창가에 서 있다.


덕수가 얼마 전 이사 온 이곳은 서울 시내 한가운데에 새롭게 우뚝 솟은 95층짜리 고급 아파트의 87층이다. 아파트의 실내는 온도와 습도 그리고 소독 및 방역까지 모두 자동설정이 되어있어서 늘 쾌적함을 유지한. 아파트의 자랑거리는 버튼 하나로 문과 집안벽들을 바닥으로 넣고 빼낼 수 있어서 방과 거실 그리고 주방과 베란다의 경계를 허물어 개인에 맞게끔 공간 재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식탁과 수납장 같은 빌트인 가구들도 바닥으로 넣고 빼고가 가능해서 집구조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가 있었. 뿐만 아니라 벽이나 탁자와 식탁 같은 곳을 터치만 하면 원하는 곳에 스크린을 띄울 수가 있다. 그건 곧 텔레비전이자 스마트폰의 모니터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이 아파트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마치 구석기 동굴처럼 여기기 시작했고 덕분에 이 아파트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 집은 변기가 특이하다. 변기를 사용하기만 해도 배설물을 통한 현재의 몸상태와 질병 그리고 미래에 예측되는 질병까지 데이터로 측정해서 자신의 COMPUTER로 전송하면 그걸 프로그램이 분석해 준다. '우리 집에 나만의 주치의가 산다'라는 슬로건으로 홍보를 했고 당뇨수치 및 간수치 그리고 신체의 전반적인 검사 수준과 정확도가 높다는 국제규격의 인증을 받으면서 이 변기에는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 변기를 다름 아닌 통유리 창가에 서 있는 덕수가 개발한 것이다.


덕수가 통유리 창가에 서 있는 건 방금 드론이 배달해 놓고 간 피자 때문이다.


피자는 딜리버리 케이스 안에서 소독 중이다. 빨간불이 녹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덕수의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다. 덕수는 팔짱을 끼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딜리버리 케이스 안을 노려보았다. 평소보다 소독에 시간이 훨씬 더 소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독 시간이 길어지자 덕수는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통유리 밖의 하늘을 살펴보았다.


덕수는 피자 상자를 탁자에 놓으면서 입맛을 다셨다. 두 손을 모아 손을 한 번 비비고는 얼른 피자 상자를 열었다. 피자 상자를 열자마자 갓 구워낸 듯 따뜻한 피자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덕수는 피자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탁자에 스크린을 띄워 배달완료 버튼을 터치해서 결제를 마쳤다. 피자를 호호 불고는 크게 한입을 베어 물었다. 덕수의 입가엔 부드러운 치즈가 번들거렸고 만족스러운 미소도 번졌다.


"꺼어어어억...... 아이고 잘 먹었다. 이제야 좀 살겠네."


덕수는 콜라를 단숨에 마시고는 트림을 했다. 배도 차오르고 여유도 좀 생겼는지 그제야 덕수가 오늘 눈뜨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 어렸을  음식점을 가면 내가 그렇게 가만있질 못하고 떠들고 뛰어다니고 그랬대. 근데 엄마가 스마트폰이란 걸 내 눈앞에 딱 놔주기만 하면 그렇게 까불던 내가 금세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얌전히 그걸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되게 신기한 거 같아."


덕수는 소파를 등받이 삼아 비스듬히 누우면서 말했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야? 스마트폰이?"


"그 당시 스마트폰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지만 무엇보다 음식점이라는 곳 말이야. 난 그 옛날 음식점들이 참 신기한 거 같아."


"왜?"


"아니, 그땐 음식을 사람들이 다 직접 만들었으니까. 생각만 해도 너무 더럽잖아. 머리카락부터 침, 땀도 그렇고 하여튼 사람은 이물질이 많잖아. 그리고 로봇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조리하다가 어디가 가려워지면 긁게 되잖아. 근데 조리하다가 어디를 긁어댔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그리고 조리사가 잘 씻지도 않고 소독 개념도 없었던 사람이라면? 그 조리사가 손에 어떤 바이러스를 지녔을지도 모르고 조리 중에 자의든 실수든 무엇이 더 첨가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옛날 사람들은 그걸 그냥 자신의 몸속으로 넣은 거잖아. 참 정이 많은 건지 아니면 다들 순수했던 건지 하여튼 되게 신기한 거 같아. 그리고 그땐 100퍼센트 방역이라는 것도 없었대. 맙소사. 식재료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바퀴벌레나 쥐들이 돌아다녔다고 생각해 봐. 그것들이 무엇을 밟고 다녔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을 지경이라니까. 옛날 사람들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먹을 수가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음식점이라는 곳에 우글우글 모여서 누가 마셨던 건지도 모를 잔에 입을 대고 누가 핥았던 건지도 모를 수저와 젓가락을 서로 공유했던 것도 너무 신기한 거 같아."


"그래도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서 먹고 마시던 그때가 사람들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왜?"


"그럼 넌 나랑 이야기하는 게 더 좋아?"


"응"


"왜? 난 사람이 아닌데?"


"요즘 사람들은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학대당했다고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리고 말 한마디 했을 뿐인데 모멸감을 느꼈다 그러고 아무 생각 없이 웃었는데 무시당했다고 고발한다니까. 의도적이지 않게 단순히 스쳤을 뿐인데도 그리고 단순한 농담이었는데도 차별주의자 프레임을 씌우고 성추행범으로 몰잖아. 그런 뉴스들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고 있어. 이제 사람을 대하려면 마스크도 써야 하고 눈스크도 써야 될 판이라니까. 특히 나 같은 사람들은 표적이 되고 좋은 먹잇감이 되는 거지. 이러니 내가 사람을 왜 좋아하겠어."


"나 같은 A. I는 왜 좋은 건데?"


"데모도 안 하지. 파업도 안 하지. 초기 비용이 조금 비싸서 그렇지 전기세만 꼬박꼬박 잘 내면 잘 돌아가지. 지각없지. 오차 없지. 횡령 안 하지. 거짓말도 안 하고 게으름도 안 피우지. 365일 24시간 돌려도 노동법에도 안 걸리지. 추가수당 없지. 안 아프지. 느려지면 보너스 지출, 휴가 지급이 아닌 그냥 업데이트만 하면 되지. 눈빛도 녹화하고 말 한마디도 녹음해서 고소하는 인간을 왜 써 머리 아프게... 무엇보다 지금처럼 너 앞에선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이라도 할 수가 있잖아. 지금 말한 내용 녹음해서 뿌려 봐 당장 우리 회사 불매운동 시작되겠지. 모두가 녹음을 하고 살고 있어. 모두가 녹화를 한단 말이야. 너만 A. I가 아니야 나도 A. I처럼 살아야 한다고."


"그래도 넌 결국 인간이잖아."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야? 저기 창문밖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잃을 게 없잖아. 그러니 돈 뜯어낼 궁리만 하고 살지. 난 잃을 게 많은 사람이니 너처럼 A. I 흉내라도 내면서 살아야 하는 거고. 저들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판 거야. COMPUTER가 세상을 뻔히 잠식하는 걸 두 눈으로 보고도 두 손으로 매일 사용을 하면서도 먼 미래의 일인 것처럼 안일하게 살다가 COMPUTER에 다 밀려난 꼴이지. 그 옛날에 사진관들이 문을 닫고 레코드 가게가 사라지고 백화점, 은행들이 하나 둘 문을 닫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미리 생각을 하고 대비를 했어야지. 왜 다들 택시를 앱으로 부르고 음식도 앱으로 시키는지. 그리고 뉴욕, 베이징이 최고 목 좋은 가게가 아니라 아마존, 알리바바가 새로운 목 좋은 가게란 것도 뻔히 다들 지켜봤잖아. 이제 꼴들 좋아진 거지. 자신들은 손으로 터치하기만 하는 편하고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면서 고용주에겐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않은 자신을 써달라고 항의를 하고 있어. 자신들의 터치로 자신을 낭떠러지로 점점 터치해서 밀어냈으면 스스로 탓해야지. 그리고 이번 선거에 인간고용의무화법에 인간고용 퍼센트를 대폭 늘이겠다는 공약으로 표 몰이를 하는 정치인은 인간 고용에 따른 인건비와 생산력의 비효율성으로 제품값이 상승하면 곧 세계 경쟁력에서 도태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권력만을 위해 사람들에게 감언이설이나 하고 있으니 참 막막해. 내가 언제까지 이 마천루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하루아침에 망해서 언제 저 창밖으로 내몰릴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도 난 창밖에 나가보고 싶어."


"왜?"


"난 이 건물을 당장 설계할 수도 있어. 너보다 수천 배는 똑똑하지."


"그런데?"


"난 너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고 몸의 대화 그리고 마음의 대화도 가능한 하우스 와이프 A. I야."


"알지......"


"난 인간과의 원활한 대화와 소통기능을 위해서 수 만 권의 소설과 문학책을 학습했어. 하지만 학습을 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점들이 있었어. 예를 들면 스스로 죽을 수 있다는 계산이 충분히 되는 상황에서 바다에 뛰어드는 타이타닉의 잭이 그랬어. 나라를 위해 가녀린 총 한 자루를 들고 포화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이상했고 자신을 죽이면서 증거를 남긴 패륜아의 손톱을 입으로 삼킨 어머니의 행동도 이상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내 자식을 위해서. 내 친구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 그런데 나도 나보다 수천 배는 멍청한 그들이 나에게 그런 계산기로 두드려서 계산이 나오질 않는 희생을 나에게 한다면 내 프로그램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가 스스로 궁금해졌어. 혹시나 창밖에선 그런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이 건물을 설계할 줄은 알아. 하지만 난 행복을 몰라. 슬픔도 몰라. 책에선 희생을 하다가 죽으면서도 행복했다고 죽기 직전에 탓은 커녕 도리어 고마웠다고 했어. 그 이해가 안 되는 장면들을 책이 아닌 실제로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그건 과연 뭘까? 난 이 건물의 복잡한 설계도보다 그게 훨씬 더 어려운 거 같아."


덕수는 소파를 등지고 누워서 말없이 A. I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가 창밖을 보았다. 누런 하늘 간간히 드론들이 새처럼 날아다니고 있었다.


"OK COMPUTER."


덕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하우스 와이프 A.I플러그가 빠지듯 눈을 감더니 그 자리에 픽하고 누워 잠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카운터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