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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01. 2023

ENTP 대통령을 만난 ENTP 알바생

2000년 4월 화명동.

1999년 밤 11시 30분.


"진짜로 지구에 종말이 오면 어쩌지? 난 여자랑 잠도 못   봤다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종말 타령하던 모쏠 친구의 걱정은 개뿔이었다. 길을 걸어도 밀레니엄. TV를 틀어도 밀레니엄. 밀레니엄 특가. 밀레니엄 특집. 밀레니엄 베이비. 밀레니엄 버그. 지나가던 개조차도 멍레니엄이라고 짓을 정도로 귀가 따가워 죽겠는 대망의 밀레니엄 시대가 당도했다.


2000년 새천년의 시작.


그때 난 국가의 부름이 담긴 입영통지서를 받고 매우 낙담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술로 달래며 지냈다. 술값 마련은 '제주쌈밥'이라는 고깃집에서 알바로 충당했다. 친구들은 월급날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하이에나처럼 고깃집 앞을 서성였다. 그땐 내 돈이 네 돈이고 네 돈이 내 돈인 경제무개념의 시절이었다. 고깃집 주방 뒷문으로 도망치려 해 봤자, 이미 앞뒤로 친구들은 진을 치고 있었다. 난 친구들에 뒷덜미를 잡혀 덕천로터리로 끌려갔다. 우린 소리소리라는 주점에 자주 갔다. 싸서. 그리고 2차는 주로 백두대간에 가서 1700cc 피쳐에 제일 싼 촉촉 오징어를 뜯었다. 월급날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소주, 캔맥주를 품 안에 몰래 숨기고 노래방까지 갔다. 여자들끼리 온 방문을 열고 '우리 타임 많이 남았는데 방 합칠래요?' 일명 까대기라고 칭했던 헌팅 술래를 가위바위보로 뽑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해장은 2500원짜리 장우동까지 아주 풀코스로 뜯겼다. 하지만 크게 화가 나진 않았다. 어차피 나도 친구 알바한 월급 뜯어먹으면 됐으니까.


제주쌈밥 사장은 점심 장사가 끝나고 조용한 오후 2시 정도가 되면 괜히 통유리와 창틀을 닦으라 했다. 파란 액체가 든 분무기 통을 찍찍 뿌려 가며 뭉친 신문지로 통유리를 닦고 있었다. 그때 한 중년 남자가 가게 문을 열고 빼꼼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서 오세요."


난 신문지 뭉텅이를 쥔 채 말했다. 뭔가 낯익은 얼굴이었다.


"여기 고깃집이지요?"

"네, 맞는데요."

"아, 우리가 점심이라서 고기는 좀 그렇고 된장국이나 콩나물국 쪼매 하고 김치만 있으면 되는데요. 여덟 사람인데 한 사람당 한 5천 원씩 해가꼬 밥 좀 먹을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난 사장님께 여쭤보려고 주방으로 갔다. 그때 딱 떠올랐다. 아! 저 사람 벽에 붙어있는 사람이다. 기호 2번!


"사장님, 사장님. 높은 사람 왔는데요. 높은 사람!"

"야가 뭐라노."

"아니 손님이 한 사람당 5천 원해서 밥 좀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는데 저 사람 기호 2번인데요."

"기호 2번?"


놀란 눈으로 사장님은 기호 2번에게 가서 환하게 웃으며 90도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간이라도 빼줄 듯 친절한 안내로 여덟 일행을 에스코트했다. 일행들은 가게를 두리번거리면서 안내받은 자리에 자리 잡고 앉았다.


"사장님, 우리 진짜 국하고 김치, 밥, 뭐 반찬 있으면 쪼매해서 이래만 주야 됩니다. 내가 좀 가난한 후보라서요. 고기도 막 잔뜩 시키가 먹으면 좋은데 운영비 사정이 좀 그렇습니다. 딱 5천 원치 주야지 더 주면 선거법위반입니데이. 염치없지만 좀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내가 사장님께 물었다. 우리 정식은 없잖아요. 그러자 사장님은 후보 일행들이 혹시나 들을까 봐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야, 혹시라도 당선이라도  봐라. 감당되겠나?"


아하! 난 무릎을 탁 쳤다. 사장님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제육볶음 두 접시와 쌈야채, 계란찜, 찌개, 반찬들을 푸지게 내왔다.


"하이고 사장님요. 내 돈 읍다캐도. 이거는 한 접시당 만 원씩 해서 이만 원 더 드릴게요. 와아 우리 사장님 역시 장사꾼이라 다르시네요. 고마 고기 두 접시 팔아뿐다. 내 돈 읍다캐도."

"아이고 아입니다. 이거는 서비습니다. 선거운동 하시는데 힘내시라고요."

"사장님 내 투표 뚜껑 열기도 전에 선거법위반으로 낙마해가 되겠습니까? 고마 이만 원이라도 받으세요. 안 그래도 좀 질 거 같긴 한데 그래도 뚜껑은 한 번 열어 봐야 안 되겠습니까. 나중에 또 사장님 딴소리하기 전에 내 돈부터 주야겠다. 4만 원 하고 고깃값 한 3만 원 드리야 될 양인데 안 받으실 거 같고 2만 원으로 합시다. 됐지요? 이제 다 맞지요?"


사장님도 그의 말빨 앞에선 이겨낼 재간이 없어 6만 원을 겸연쩍은 표정으로 받았다.


후보 일행 여덟 명은 먹는 내내 웃으며 식사를 했다. 기호 2번 아저씨가 농담을 했는데 스물 한 살인 내가 들어도 진짜 개그가 심상치 않아 나도 엿들으며 계속 피식거렸다.


제주쌈밥 사장 및 직원 일동은 일렬로 기호 2번 일행 가는 길을 마중했다.


"아이고 잘 묵고 갑니다. 바쁘신데 왜 또 다 나왔습니까. 내가 이래저래 폐만 끼치네요. 사장님하고 직원분들 덕분에 아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내 당선되면 회식하러 올게요. 맛이 좋네요. 소신껏 투표하시고 혹시나 내 인물이 기호 1번보다 났다 싶으면 저 찍으셔도 됩니다. 벽에 사진 보면 눈도 작고 째졌는데 실제로 보니 영 못난이는 아니지요?실물이 영 났지요?"


후보 일행과 제주쌈밥 임직원은 모두 크게 웃었다. 기호 2번 아저씨는 웃으면서 사장을 시작으로 한 명 한 명 악수를 했고 나와도 마주하였다.


"어? 자네는 나이가 몇 살이지?"

"스물한 살요."

"어?가만 보자. 자네 올해 생일이 지났나?"

"아니요. 생일 8월인데요."

"에헤이 우짜노. 투표권 읍네? 난 투표권 없는 사람하고 절대 악수  하는데?"


내가 어색하게 웃으니. 시골 큰아버지처럼 날 귀엽단 듯이 흐뭇하게 웃으며 지그시 보았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내 떨어지면 또 선거 나올 거거든. 또 떨어지면 또 나오고 고마 될 때까지 한 번 해볼 끼니깐 미래에 유권자님한테 잘 보이야지. 우리 악수 한 번 하입시다. 잘 부탁합니데이. 미래 유권자님."


나보다 키가 작았던 아저씨의 손은 참 따뜻했다. 식당 앞에는 'ASAHI TV'라고 적힌 큰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 벽에 붙은 기호 2번 아저씨의 포스터를 보았다.


아까 그 아저씨 이름이 노무현이구나.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기호 2번 노무현 아저씨는 대통령에 당선되어 3군단을 방문했다. 우리 부대원 일부도 대통령 방문 환영 행사에 참가했다. 그가 연설했다.


"여러분들 내 온다꼬 뺑이 깠지요?"


무겁고 엄숙하게 얼어붙어있던 공기들이 단숨에 녹아 버렸다. 장병들의 어깨가 웃음을 참느라 여기저기 들썩였다.


"여러분한테는 미안한데 대통령 되니까 여기부터 오고 싶대요. 제일 꽁지 이등병이었던 내가 대한민국에 군수통수권자가 됐다고 와서 자랑하고 싶대요. 여러분들도 다 지금은 비록 이등병, 일병이지만 잘 참고 열심히 하면 나중에 내처럼 아니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말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유머와 설득력 흡입력은 제주쌈밥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았다. 사열식이 아닌 강연을 관람하는 기분이었다.




예전이 떠오르면 유튜브에 고 노무현 대통령님의 명연설들을 찾아보곤 한다.


막강 권력 앞에서도 할 말 다하는 ENTP 대통령님. 타고난 토론가 ENTP! 하나님이 불합리하다 싶으면 하나님 앞에서도 목소리 높이실 멋진 분!


대통령님 군부대 방문 두 달 후 나에게는 막강 권력인 분에게 할 말 다하다가 영창에 갔다.


아니다 싶으면 질러버리는 ENTP라 그런 건지.


 주위엔 대통령을 엄청 싫어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대통령 이름만 들어도 눈물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는 이름만 들어도 이제 말이 없어진다. 숙연해진다. 돌덩이를 얹은 듯 마음이 무겁다.


부디 늘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님이 MBTI 검사를 하진 않았겠고 아마 추측성으로 올려진 게시물일 것이다. 그래도 나와 비슷한 성향이지 않을까 반가웠고 예전 추억도 떠올라 적어 보았다. 정치색을 띠는 거 아니고 정치적 성향이 깃든 것도 아니다. 에피소드다. 그게 다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같지 않았다. 어려운 말, 고상하고 유식한 말을 쓰지도 않았다. 논두렁 시골길 손녀를 태우고 웃으며 자전거를 타는 사진을 본적이 있다.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 마시는 사진을 본적도 있다. 내가 만난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느낌은 사진 속에 딱 그 할아버지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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