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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03. 2023

조폭 훈련병 뽕쟁이 훈련병

차렷. 열중쉬어.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좌로 돌아. 제자리에에에 섯!


기초 제식훈련에도 왼손에 왼무릎이 들리고 오른손에 오른무릎이 들리는 오합지졸들은 빨간 모자들 앞에서 등줄기에 식은 육수를 쭉쭉 뽑아내는 기상 점호를 마쳤다.


민간인이었다면 발로 들고 차 버렸을 것 같은 똥 된장국에 오징어젓갈, 맛김, 진미채, 배추김치가 고작 입소 2일 차인데 왜 이리도 입에 착착 붙는 것인지, 쇳소리 나도록 식판을 박박 긁었다.


식후땡의 미칠 듯한 압박에 있지도 않은 담배를 입에 가져다 무는 시늉을 하며 한 모금을 빨고 후 내뱉으니, 훈련소 동기들도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따라 공기 흡연을 했다. 일부는 상상의 도넛을 날렸고 또 일부는 상상의 도넛 구멍사이에 손가락을 콕 쑤시며 저급한 농을 지껄였다. 하루 만에 군대 짜증 난다. 미치겠다. 돌겠다는 푸념을 늘어놓고 있는데 빨간 모자들이 발자국 소리도 없이 붕 뜬 저승사자들처럼 먹을 뿌리며 몰려왔다.


빨간 모자들은 표정이 없었다. 표정이 없는데 눈알은 늘 '죽을래?'라고 말하고 있었다. 등장부터 '죽을래?'라고 눈빛 발사하는 여섯 명의 조교 뒤로 중사 계급장을 단 간부가 커다란 파일을 옆구리에 끼고 등장했다. 중사는 파일을 책상에 '턱!' 하고 놓더니 옆구리에 양손을 올린 늠름한 자세로 오합지졸들에게 말했다.


"조식은 잘들 했나?"

"네, 그렇습니다."

"입소 하루차 모든 게 어색하고 낯설겠지만 여긴 장난치라고 모인 곳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여기서 사고를 치면 평생 되돌릴 수 없는 큰 후회가 따른다. 영창에 갈 수도 있고 육군교도소에 가서 인생에 빨간 줄이 그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껏 가르치고 키워서 군대 보냈는데 사고 쳐서 부모님 실망시키는 아들이 돼서야 되겠나?"

"아닙니다."


고작 하루 훈련소서 잤는데 부모님이란 단어는 내 마음을 크게 철썩였다.


"자, 그런 의미로 지금부터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지금 이 기회가 지나면 너희는 이제 꼼짝없이 26개월  군생활을 마쳐야 한다. 번복은 없다. 난 도저히 하룻밤을 자고 일어나니 군생활을 못하겠다. 죽겠다. 차라리 죽어 버리고 싶다는 인원은 앞으로 나와라. 그리고 사회에서 폭력 조직에 가담해서 계급사회에 불만이 있고 난 도저히. 난 분명히. 사고를 칠 것 같다는 인원도 앞으로 나와라. 집에 보내 주겠다. 합법적으로 집에 갈 수 있다. 조폭이 아닌 일반 훈련병 중에도 난 지금 너무 힘들다. 적응이 안 된다는 인원은 거수하도록."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너무 솔깃한 제안이었다. 집에 보내준다니 맙소사. 오른손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 빠졌다가 힘이 들어가고 빠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단! 어차피 입영통지서는 또 재발급된다. 지금 집에 돌아가면 또 영장을 받고 다시 와야 한다는 말이다. 국방의 의무에 열외는 없으나, 지금 난 도저히 안 되겠다. 다음에 다시 오겠다. 하는 인원에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준다는 말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거수하길 바란다."


어차피 또 와야 한다니 맙소사! 어깨에 힘이 쭉 빠지는 말이었다. 그 힘 풀리는 말에도 어깨에 힘을 주고 팔을 들어 올린 두 명은 따로 열외 되었다. 부러움 반 멍청함 반이 섞인 용기를 낸 두 명은 중사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고 중사는 큰 파일을 열어 무언가를 메모하고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회에 있을 때 조직폭력에 가담을 했거나 코카인, 필로폰, 대마초등에 해당하는 마약류와 본드, 가스, 너미럴등을 포함한 향정신성의약품 위반에 해당되는 약물 접촉을 저지른 인원은 자수할 기회를 주겠다. 어차피 머리카락 검사 및 피검사를 하면 다 밝혀질 사항들이다. 그러니 미리 자수해서 군생활을 스스로 시작부터 꼬아 버리는 짓은 하지 않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식 훈련병이 되면 간단한 검사를 거쳐 다 몸에 남은 약물 흔적은 밝혀지게 되므로 그때 가서 영창이든 교도소든 가면서 후회하지 말고 미리 자수의 기회를 준다는 말이다. 해당사항 있는 자들은 일어 서."


오합지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중에 누가 봐도 조폭인 듯한 인상의 거구가 특유의 거들먹거리는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 반해 굉장히 순한 인상의 멸치도 일어났다. 그 둘이 용기를 줬는지 잇따라 다섯 명 정도가 더 일어섰고 엉거주춤하던 나도 일어섰다.


여덟 명을 쭉 훑어보는 빨간 모자들은 주민번호와 이름을 물었고 중사는 해당 뽕쟁이 및 조폭들의 신상 파일을 뒤적였다.


"첫 번째 넌 뭐야?"

 

빨간 모자가 처음 일어난 거구에게 물었다.


"저는 현재 부산 칠성파 행동대원입니더."


중사는 파일에 무언가를 메모했다.


"두 번째 넌 뭐야?"


순한 인상의 멸치는 미국사람 특유의 제스처로 어깨와 손을 한 번 들썩였다.


"어... 암... 저는 미쿡 유학생입니다. 프렌 집 파뤼에서 코케인 앤더 마리화나 했습니다. 암 쏘 쏘리."


중사는 멸치를 한 번 유심히 보더니 파일에 무언가를 또 적기 시작했다.


세 번째 녀석은 대전에서 온 조폭이었고 네 번째 녀석은 인도네시아에서 필로폰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섯 번째 녀석도 미국에서 온 유학생으로 코카인과 마리화나를 했다고 했다. 여섯 번째는 영국 유학생이고 대마초를 피웠다고 했다.


"일곱 번째 넌 뭐야?"


내 옆에 서 있던 녀석은 또 미국사람 특유의 제스처로 어깨와 손을 한 번 들썩였다.


"저는 미쿡 엘레이 커리언 갱입니다. 마리화나 앤더 엑스터시 했습니다. 암 쏘 쏘리."


중사가 파일에 메모를 마치고 마지막에 서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덟 번째 넌 뭐야?"


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뽀... 뽄드요."


시종 무표정이던  앞에 빨간 모자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웃음을 참는지 입에 힘을 꽉 줬고 일곱 명의 자수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 앉은 예비 훈련병들도 몇몇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아, 괜히 나왔다.


"몇 번?"


중사는 예외적으로 내게 몇 번이라고 물었다.


"한 번요."

"너 조폭이야?"

"아니요. 저 그냥 양아치......"

"군대에선 요자를 쓰지 않는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중사는 내 파일엔 어떤 메모도 남기지 않고 그냥 덮었다. 내 앞에선 빨간 모자가 중사 몰래 내 어깨를 툭 치더니 웃으며 엄지척을 했다. 처음 보는 빨간 모자의 미소였다.




호기심 왕성하던 시절 집에서 '경찰청 사람들'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비행청소년들이 본드를 흡입하는 장면을 재연하는데 본드를 비닐봉지에 짜서 넣고 봉투의 손잡이를 귀에 걸었다.

 

"야 숨을 쉬듯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면 돼, 너도 해 봐. 쉬워."


본드를 처음 접하는 친구에게 본드 흡입 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었다.


"우와 빙빙 돈다. 와아 여기가 천국인가 봐. 너무 기분이 좋아. 어? 여자가 나타났어. 와아 예쁘다. 너도 보여?"


화면 속 재연 배우들은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지었고 난 그것을 시청했다.


본드가 정말 천국을 보여줄까?그들은 너무 황홀해 보였어. 못 참고 호기심이 폭발한 나는 문방구에서 오공 본드를 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서 재연 배우들이 가르쳐준 대로 따라 했다.


천국은 개뿔이었다. 어지럽고 띵하고 망치로 맞은 듯 멍해지고, 둔해지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왜 천국이 안 보이지? 여자가 왜 안 나타나지? 더해야 하나? 더 열심히 흡입했더니 앵무새가 나타났다. 앵무새가 날개로 북채를 쥐고 북을 쳤다.


"한 바퀴 남았습니다. 둥. 둥. 둥!"


앵무새는 한 바퀴 남았다며 북을 세 번 쳤다.


"두 바퀴 남았습니다. 둥. 둥. 둥!"


앵무새는 일곱 바뀌까지 새면서 북을 치다가 날았다. 날더니 저승사자의 어깨 위에 앉았다. 검은 삿갓을 쓴 저승사자가 날 보며 섬뜩하게 웃길래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난 여전히 비닐봉지에 본드를 흡입하고 있었다. 봉지를 입에서 얼른 뗐다. 난 뒤로 벌렁 드러누웠다. 화끈거리는 입과 코는 미친 듯이 신선한 공기를 빨아들이고 내뱉었다. 심장은 미친 듯 뛰었고 파란 하늘에 구름은 빙빙 돌았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한 이질감들이 덕지덕지 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화면이 하얗게 변하더니 구토가 쏠렸다.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토했다. 그 후로 약 3일간 두통에 시달렸고 입맛도 뚝 떨어졌다.


천국? 여자? 기분이 좋아? 순 개뻥이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향정신성의약품 위반에 해당되는 일탈이었다. 그게 중학교 일학 년 때의 일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조폭이랑 마약만 나오라고 할 것이지 왜? 본드를 언급해서 사람 망신을 주는 것인지, 괘씸한 마음에 한껏 중사를 노려 보았다.




미소 짓던 빨간 모자 조교는 훈련 기간 중 남들 몰래 내게 담배도 몇 번 주었다. 그리고 난 860명 훈련병 중 전투력 평가 1등을 했다. 퇴소식 날 육군훈련소 소장 투스타에게 최우수 훈련병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남들 4박 5일 가는 백일휴가를 포상까지 합쳐서 8박 9일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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