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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05. 2023

뉴질랜드 보충수업

뉴질랜드 스토리.


뉴질랜드 남섬 메스번이라는 소도시에 마운트헛(Mt. hutt)이라는 스키장.


나와 강사는 리프트를 탔다. 4인승 리프트라 우리 옆엔 백인 남성 두 명도 앉았다. 전깃줄에 앉은 참새 네 마리처럼 대롱대롱거리며 우린 정상으로 올라 가는 중이었.


"헤이. 와썹?"


강사와 난 움찔했다. 고글은 햇빛도 가려줬지만 당황하는 내 표정도 유용하게 가려줬다. 제발 많은 질문은 말아주길 바라며 입속에 혀를 오물조물 풀었다.


" 퐈인. 앤듀?"

"암 굿. 웨어 아 유 프롬?"

"위 프롬 코리아. 웨어 아 유 프롬?"

"프롬 잉글랜드."

"잉글랜드 베리 굿 컨츄리. 사커 굿."

" 프리미어 리그 이즈 베리 익사이팅. 땡스. 쏘 아 유 프로페셔널 플레이어?"

"오우 노우. 위 아마추어."

"오, 리얼리?  룩 소 베리 나이스 플레이어."


새끼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오우 땡스 베리 마치."

"이츠 노 조크. 유 가이즈 리얼리 굿. 아 원트 시 모어. 유어 퍼포먼스."

"오우 뤼얼리 뤼얼리 땡스. 으하하하."



내가 도 그랬다.


저 멀리 점처럼 작게 내려오는 스노보딩 동선만 봐도 한국 사람들은 티가 났다. 하얀 설원 위에 찍힌 중구난방으로 내려오는 점들 속에서도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점들은 내려오는 동선이 아름다운 선율을 지휘하듯 곱고 부드러웠다. 부드럽다가 날렵한 엣지를 박고 눈을 자르며 치고 나갈 때의 순간 가속은 또 힘차고 빨랐다.


간단히 말해서 한국인 보더들은 유독 잘 탔다.


점점 가까워진 점들을 확인해 보면 아니나 다를까 오며 가며 몇 번 마주쳐 안면이 있는 한국인 보더들이었다. 스키장에선 보통 보드복이 그 사람의 심벌이었기에 눈에 익은 보드복으로도 누군지 분간이 가능했다. 한국인 보더들 중에는 배추보이로 불리는 이상호 선수 및 한국 국가대표들도 있었다. 아무래도 전지훈련을 온 거 같았다.


"저 외국인들 배추보이랑 우리를 착각하고 프로 선수 아니냐고 물은 거 아냐?"


그런 질문을 받으면 우린 이상호 선수 및 국가대표 선수들과 우리를 혼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며 웃어넘겼지만 아니다. 한국인 보더들은 평균적으로 외국인들에 비해 훨씬 잘 탔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키장 스낵바에서 외국인들이 먹거리를 사서 맥주나 커피 또는 음료를 함께 곁들이며 대화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한국 보더들은 서로를 찍어준 스노보딩 동영상을 미간에 주름잡고 보면서 음식을 먹는다.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며 고개를 내젓기도 하고 머리를 긁기도 하고 갑자기 밥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탁자를 잡고 기본자세를 잡기도 한다. 한국에 스키 리조트를 다녀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푸드코트에 가면 자신을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 탄식하는 사람들과 밥 먹다 말고 탁자를 짚고 자세 연습하는 사람들과 이미지 트레이닝 중인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 보더들은 뉴질랜드까지 날아가서도 그러고 있었다.


보더들이 열 명이 모였다고 가정하면 한국 보더들은 열 명중에 내가 몇 번째로 잘 타는지, 그중 1등은 과연 누구인지, 등수를 무의식적으로 매긴다. 그리곤 실력 향상 의지를 불태운다. 내 년엔 저 녀석만큼은 타고야 말겠어하면서 말이다.


수학 문제집을 풀듯이. 오답 노트를 확인하듯이. 그리고 내 성적이면 내가 속한 무리에서 과연 몇 등인지를 의식하며 보드를 탄다. 아니 보드에 파고들며 공부한다. 


늘 그렇게 경쟁이 몸에 밴 삶을 살아와서인지도 모르겠다.


강사와 리프트를 타고 있는 나도 같은 맥락이었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 여름이 겨울이다. 겨울에 한국 스키장들이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나는

 잘 타 보겠다는 마음으로 뉴질랜드에 보충수업 학원을 끊은 셈이었다.


나는 손으로 하는 건 금방 곧 잘하는데 발로 하는 건 이상하게 다 못했다. 소히 말하는 개발이었다. 군대에서 족구를 하면서 살면서 들을 욕은 다 먹었고 축구는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어깨는 넓고 강한 편인데 다리는 새다리여서인지도 모르겠다. 스쿼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는 조금 튼실해진 새다리였다.


즐기자고 즐겁자고 타기 시작한 보드는 타면 탈수록 나에게 열등감을 줬고 좌절감을 줬다. 나랑 안 맞는구나 하면서 축구처럼 안 하면 될 것인데, 나는 이상하게 유독 설산이 너무 좋았다. 보드는 언제부턴가 내게 큰 설산처럼 느껴졌고 언젠가는 저 정상을 밟아 보았으면 하는 꿈이 담긴 목표의 이정표가 되었다.


"플레져 밋 유. 윌 테이크 어 룩. 굿럭. 씨유 어겐"


정상에 리프트가 도착하자 영출신 참새 두 마리는 전깃줄 리프트를 박차고 제 갈 길로 미끄러져 날아갔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슬로프 정상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강사가 알려준 것들을 되뇌었다. 밑에서 오답 노트 작성을 위한 동영상 촬영 준비가 다 됐다는 신호를 기다리면서 정성 들여 기본자세를 잡았다. 머리, 어깨, 골반, 허벅지, 무릎, 발바닥의 무게 중심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도록 온 정성을 다 들이며 내려가겠노라. 다짐했다.


강사가 손을 흔들며 출신호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데크를 조금씩 전진시켰다.




게스트 하우스 숙소로 돌아온 강사와 나는 마트에서 저녁으로 먹을 소고기를 사고 주류샵에서 그나마 소주와 제일 비슷한 스미노프 보드카 한 병을 샀다.



손바닥 두덩이 정도의 소고기가 한국 돈으로 만 원 정도였고 상추 손바닥 하나만큼이 8천 원인 희한한 나라였다. 소고기 한 덩이보다 상추 한 덩이가 더 비싸다니 맙소사.


구운 소고기에 보드카를 먹고 있으니 파채무침과 땡고추, 마늘, 쌈무, 된장찌개, 물냉면이 간절했다. 꾸역꾸역 소고기를 보드카와 뉴질랜드 맥주 스파이츠로 밀어 넣는데 강사가 먹다 말고 안약을 눈에 넣었다.


"렌즈 껴요?"

"아니요, 보름 전에 내가 눈병이 났어요. 웬만하면 병원 안 가는데 심상치 않아 여기 동네 병원에 갔는데 아니 사람이 읍어? 어디 간겨? 기다려도 읍어?아니 점심밥을 농사를 지어서 먹나 한참을 기다려 겨우겨우 접수했더니. 환장하네? 바로 치료도 안 해주고 다음 주에 예약됐다고 다음 주에 오래요. 대체 이게 뭐여?그래서 다음 주에 가서 받아 온 게 이 안약이에요. 참내. 병원비가 25만 원인가? 이래 도 이 안약 엄청 비싼 겁니다. 하하하. 보드 탈 때 조심해요. 나도 몰랐어. 다리 부러져서 응급실이라도 가면 몇 백? 아니, 천단위 나올지도 모른대요."


뉴질랜드는 그랬다. 저녁 8시면 마트도 닫고 카페도 닫고 음식점도 다 닫았다. 숙소에서 밤에 출출한데 냉장고가 비었다면 심심하기 짝이 없는 직선 도로를 30분 운전해서 KFC를 가야 했다.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시내에 가면 유일하게 새벽 3시까지나 하는 가게가 있는데 그 가게 이름이 강남포차예요. 사장님이 한국사람요. 근데 새벽까지 오는 손님들도 또 근방에 늦게까지 일한 한국 사람들.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은 꼭 더 늦게까지 한다더라고요. 거기서 나도 한 번 마셨는데 국밥 18000원 소주 한 병 15000원이었어요. 드릅게 비싸."

"한국 사람은 어디에 던져 놔도 다들 열심히네요."


게스트 하우스에 있는 프랑스인이 와인을 마시며 우리에게 건배했고 미국인이 맥주병을 우리 잔과 부딪혔다. 독일에서 하이킹하러 온 할아버지도 맥주를 마셨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는 백인 커플은 명동 얘기를 꺼냈고 불고기 얘기를 꺼냈다. 커플 중 여자는 싸고 다양하고 품질 좋은 어메이징 에스테틱 쇼핑을 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그 게스트하우스에 외국인들은 모두 한국을 가 봤다고 했다. 한국은 정말 편리하고 빠르고 안전한 나라라고 자기네들끼리 영어로 쏼라쏼라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그런 말도 하는 듯했다. 한국은 더 이상 변방에 작은 나라가 아니구나 싶었다.


강사와 나는 내일 기상악화로 스키장 폐쇄 소식을 접하고는 보드카 한 병과 맥주 5병을 다 비웠다. 맥주잔에 얼음을 넣고 맥주를 붓고 보드카를 넣어 소맥처럼 타서 먹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보던 외국인이 우리에게 나이를 물었다. 포티라고 하자 눈이 동그래져서 스물 초반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무슨 꼬맹이들이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저리 술을 마시나 싶어 나이를 물었다고 했다. 외국인들은 나와 강사 나이를 듣고 자기들끼리 또 뭐라고 쏼라쏼라했다. 그때 내가 술이 조금 취했는지 되지도 않는 영어로 용감하게도 지껄였다.


"코리안 스노우보딩 하드. 워크 하드. 스터디 하드. 위 드링킹 하드 투. 위 아 패스터. 캔트 슬로. 뉴질랜드 이즈 베리 슬로. 쏘 암 크레이지."


스키장이 폐쇄된 다음 날 나는 해장으로 신라면을 먹었다.



외국인들은 내가 라면에 넣어 먹는 핵불닭소스도 안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봤다고 했다. 나중에 저녁에 자기도 좀 먹어볼 수 있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저녁에 그는 후회막심한 표정으로 물을 들이켰다.


와이파이도 느리고 집에서 할 것이 없고 길거리에 나가도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강사와 나는 근처에 있는 테카포 호수에 갔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호수를 보며 깨달았다. 나란 녀석은 네온사인이 더 절경인 놈이구나.


아름답다. 아름답구나. 끝. 할 게 없잖아? 다시 온만큼 돌아가야 하잖아?


난 술도 빨리 마시는 편이다. 빨리 마셔야 빨리 자고 자야 내일 또 일하니까. 자원은 없고 인력만 잔뜩 한 나라에서 살아남으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외국인들은 알까? 어메이징 코리아에 24시간 간판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와 값이 싼대도 품질이 우수한 화장품들과 편리하고 빠른 서비스와 공짜 와이파이들이 다 극심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뼈와 살을 녹이면서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라는 것을.


여유가 없는 나라에서 와서 그런지 여유로운 뉴질랜드는 내겐 너무 어색하고 답답한 나라였다. 이들은 도대체 뭘로 벌어서 먹고사는 거지?


절경인 테카포 호수 사진을 올리려고 찾아보니 내 폰에 호수 사진이 없다는 게 참 나답다. 그 절경을 보고도 찍을 생각을 안 하다니. 그때 브런치를 했더라면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을까. 이제야 사진 안 찍은 게 아쉽다. 


숙소 앞마당 강사가 찍어준 까불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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