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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06. 2023

사팔뜨기 상욱이


국민학교 4학년 때.


우리 반에  눈이 사팔뜨기인 욱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마! 사팔뜨기! 똑바로 안 보나? 어디 보노?"


짓궂게 놀려도 배시시 웃는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면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욱이 또 나갔나. 점마는 왜 도시락 안 싸오노."


"점마 할매랑 산다더라. 동생하고 셋이. 할매 아프다더라."


", 맞나......"


고대하던 봄소풍이 왔습니다. 친구들끼리 중대한 약속을 합니다.


"나중에 자 사러 내랑 같이 갈래?"


", 알았다. 근데 느그 엄마는 얼마 줄  같은" 


"몰라? 한... 3천 원? 4 원 주면 좋겠는데."


"니랑 랑 돈 합쳐서 이것저것 골고루 사자. 같이 먹으면 되잖아."


", 니 윽쑤로 똑똑하네. 그럼 두 배로 많이 고를 수 있네. , 알았다."


저녁에 엄마한테 칭얼거려 가며 협상한 천 원짜리 몇 장 꼬깃꼬깃. 행여나 흘릴까 봐 주머니 깊숙이 단도리 하고 동네에서 제일 큰 슈퍼로 갑니다. 이미 슈퍼엔 학교 친구들과 형 누나들로 북새통입니다. 


사또밥, 벌집핏자, 별뽀빠이, 짝꿍 따위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과감하게 후렌치파이와 카스타드 상자를 집었다가 한참을 고민 후 맛은 고급스럽지만 아무래도 가격이 너무 부담돼서 다시 내려놓습니다.


그때, 사팔뜨기 욱이가 스칩니다.


집에 도착하니. 고소한 냄새에 코가 꿰어 주방으로 이끌려 갑니다. 주방 보조로 심술이난 누나는 나를 노려 봅니다. 수를 직면한마냥 애써 눈빛을 피하고 밥상 위를 살핍니다.


계란지단. 단무지. 사조햄. 시금치. 우엉. 어묵들이 가지런히 정렬해 있습니다. 작 년처럼 이른 새벽에 나가시는 아빠 아침밥으로 그리고 도시락으로 예쁜 게 담기기 전에 제일 맛있는 꼬다리를 먹으려면 누나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란 다짐을 해보지만 잠이 워낙 많은지라 자신은 없습니다. 그래도 꼭 일찍 눈 뜨리라 다짐하다가 엄마한테 말을 겁니다.


"엄마 내 김밥. 반만 도시락에 담고 반은 따로 싸 주면 안 되나?"


"와? 와 그라는데?"


"우리 반에 욱이라고 도시락도 못 싸 오는 애 있는데 김밥 없을 거 같아서. 할매랑 사는데 할매 아프다더라. 욱이 쫌 주면 안 되나."


프라이팬에 계란지단을 부치던 엄마가 그대로 잠시 멈춥니다.


고대하던 소풍날. 


욱이는 10개가 넘는 김밥 도시락을 받았습니다.


햇빛에 반짝이는 은박도시락이 잔뜩 한 돗자리 끄트머리에 앉은 욱이는 은박 뚜껑에 두른 노란 고무줄을 벗겨내고 떨리는 손으로 김밥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었습니다. 상욱이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습니다. 김밥을 우물거리던 턱이 덜덜거리더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사팔뜨기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렸다가 돗자리에 방울방울 떨어졌습니다. 




는 중학생이 되었고 짜장면을 시켜 먹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띵동!"


고대하던  짜장면이 왔나 봅니다. 버선발로 고인 침 휘날리며 문을 여니 놀랍게도 사팔뜨기 욱이가 서 있는 겁니다.


"손님 음식 왔습니다. 어디에 둘까요?"


"마! 내다. 니 내 모르나?"


"압니다. 손님."


"근데. 왜 존댓말 하는데?"


"손님한테 친절해야 합니다. 반말하면 안 됩니다."


"뭐라꼬? 괜찮다 인마. 반말해라."


"아닙니다. 음식 여기 놓겠습니다. 다 드시고 그릇은 문 앞에 두세요. 주문 감사합니다. 또 시켜주세요!"


그렇게 친절 프로세스가 탑재된 욱 로봇은 철가방을 들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마! 내 어제 짜장면 시켜 먹었거든. 근데 욱이가 왔다. 금마 짱개하드라."


"안다. 금마 학교 땔 치우고 짱깨 한다."




제가 입대 전 스물한 살 여름 즈음에 욱이가 중국집 사장이 됐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즉슨.


욱이가 중학교 2학 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배달부로 일을 시작했을 때. 욱이가 일한 중국집은 후미진 곳에 가게도 작았고 더군다나 제가 살던 동내가 못 사는 동내였습니다. 그래도 맛있고 친절하다소문이 났습니다. 낙후된 건물과 시설 때문에 힘들어한 사장님은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했고 이전하면서 욱이에게 헐값에 가게를 넘겼답니다. 배달부인 상욱이한테 틈틈이 음식 만드는 것도 가르치고 돈도 함부로 못 쓰게 따로 통장을 만들어 월급을 모아주셨답니다.


포레스트 검프처럼 남들보다 똑똑하지 않더라도 친구들에게 짜장면 배달해 주면서도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가르친 대로 묵묵히 손님이라고 존대하던 모습을 그 중국집 사장님도 기특하다 여기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근면성실한 모습이 눈엣가시처럼 가슴 한 켠 아려와서 챙기신 게 아닐까 하는 추측들을 친구들과 늘어놓았습니다.


사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한결같이 친절하고 존댓말 하던 상욱이를 처음에는 배달부라고 웃음거리로 여겼다가 나중엔 모두 대단하다고 멋있다고 했었습니다. 성실하고 늘 웃고  열심히 하더라고 상욱이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배달 감사합니다. 욱아. 오늘도 수고하세요."


나중엔 나조차욱이에게 존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팔뜨기라고 놀렸던 저를 포함한 친구놈들은 놈팽이처럼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비전도 없는 대학교 다니면서 학비 받고 용돈 받고 어떻게 하면 술 먹을까. 어떻게 하면 여자 꼬드길까. 당구치고 피시방 정액 끊어서 스타크래프트 하면서 꼴딱 밤샐 때.


욱이는 어엿한 사장님이 되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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