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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Mar 05. 2023

판도라 화장실

2008년.


씨너스 영화관 건물 1층에 히노쇼군이라는 수제꼬지를 파는 술집이 있었다.


"담배 좀 사러 갔다 올게."


평소 술을 자주 마셨던 나는 음식을 먹으면 장이 갑자기 반응을 하곤 했다. 나는 챔피언 나이트에서 만난 썸녀에게 담배 좀 사러 간다고 구라를 치고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은 히노쇼군 문으로 나가면 상가 복도가 나오는데 복도 중간쯤에 있었다. 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평온을 만끽하고 있었다.


"끼익... 또각. 또각. 또각."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별안간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남자 화장실에 왜 들어왔지? 처음엔 의아했는데 슬슬 뭔가 불길해져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맙소사! 쓰레기통 안에 생리대가 보였다.


머릿속엔 이미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경찰이 출동하고 나는 수갑을 찬 변태로 체포되는 장면들이 눈앞 스크린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눈알과 뇌가 갈피를 못 잡고 빠르게 굴렀다. 아무래도 하이힐 잘못이 아닌 내 잘못 같았다.


"윽! 누가 안 내렸나? 냄새 쩌내."


문밖 여자가 말했다.


난 손으로 허공에 부채질을 했다.


"야, 니 오늘 쟤랑 잘 거가?"


"안 한 지 좀 돼서 살짝 땡기는 모르겠다."


"니 저번처럼 술 먹고 남자랑 자고 그 남자 연락 안 다고 질질 지 말고 쟤랑 오래 계속 볼 마음이참고 그냥 안 볼 거면 니 알아서 하라고. 쟤네 하는 폼이 심상치가 않네."


"왜? 잠도 자고 또 보면 되지."


"야이 돌탱크야. 남자들은 쉽게 자고 나면 너한테 금방 싫증 느낀다. 밀당을 해야지. 밀당. 남자들은 안달 나면 그 안달 난 걸 사랑으로 착각한다니까. 는 그래 남자 만나고도 모르겠나."


"아이고 선생 나셨네. 니나 잘해라. 저번에 나이트 기억 안 나나."


", 갑자기 나이트가 왜 나오노. 시끄럽고. 니 솔직히 쟤 마음에 드냐고."


"어, 괜찮은 거 같은데. 키도 크고. 얼굴도 봐줄 만하고."


"그러면 내가 니 술 먹고 째려서 수작에 넘어가겠다 싶으면 내가 택시 잡을 테니까. 니도 택시 타라. 알았나?"


"알았다. 나도 막 술 먹고 자고 또 안 보고 그런 인간관계 짜증 난다."


"택시 잡는데 또 안 간다고 더 논다고 버티면서 내 이상한 사람 만들지 말라고. 알았나. 가시나야. 분명히 약속했다 같이 집에 가기로. 알았제?"


"알겠다고. 야, 근데 내 여기 마스카라 번졌나? 함 봐봐."


"어디? 아직 괜찮다. 근데 니 혹시 립밤 있나."


뿌우우우웅.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한 신비로운 여자들의 대화에 빠져들었다가 괄약근에 힘도 빠졌는지 그만 방귀를 뀌고 말았다.


"야, 안에 사람 있다."


"어쩐지 냄새 쩐다 다. 어우 토할 거 같다."


"가시나야 듣겠다. 조용히 말해라."


"야, 우리 얘기 다 들었겠다. 쪽팔린다. 빨리 나가자."


여자들이 나가고 나는 문을 빼꼼 열었다. 히노쇼군은 곧 피크 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엄청나게 들이닥치는 가게였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얼른 여자화장실에서 뛰쳐나갔다. 나가는 도중 누가 문이라도 열고 들어올까 봐. 엄청 빠른 속도로 뛰쳐나왔다. 상가 복도에 나오니 한 세 사람정도가 있었지만 특별히 내게 눈길을 주진 않았다. 


휴우우우우우우우우.


문 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나는 판도라 상자의 주인공들이 누군지 스캔했다.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아서 용의자는 금방 포착이 되었다. 이십 대 으로 보이는 여자 둘과 남자 테이블이 있었다. 아니 저렇게 앳된 귀여운 얼굴로 아까처럼 대화했다는 게 나로서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나 담배 하나만 피고 올게." 


전 날 마신 술이 문제였다. 1시간 도 지나서 또 부글부글 신호가 왔다. 이번에는 화장실 표지판을 잘 보고 남자화장실에 무사히 안착했다.


"끼익. 뚜벅. 뚜벅. 뚜벅."


문이 열리고 둔탁한 구두발자국 소리가 났다.


"니는 도대체 아군이가 적군이가."


"왜?"


"아니 이십팔이 도대체 거기서 왜 나오는 건데. 내가 이십오. 이십육. 이십칠까지 밥상 딱 차려줬는데 거기서 이십팔이 뭐냐고. 니 돌대가리가. 이십팔. 이십구 또는 이십팔. 이십구. 삼십. 이렇게 나가야 여자들이 걸려서  먹을 거 아니가 병신아. 내 술 먹여서 뭐 할 건데. 니 내랑 오붓하게 모텔 가고 싶나.  내가 팔베개라도 해주까. 여자를 먹여야지 여자를. 생각을 좀 해라. 대가리는 폼으로 달고 사나."


판도라 상자 테이블에 네 명이 게임을 하느라 시끄럽게 떠들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일부러 그랬나. 술 먹다 보면 헷갈릴 수도 있지."


"됐고. 랜덤 게임에 걸리면 절대 배스킨라빈스는 고르지 마라. 돌대가리야."


"내 할 줄 아는 게임 많이 없단 말이야."


"야, 여기서 나가면 2차로 생맥주 먹던지 아니면 바로 준코로 갈 거다. 준코로 가서 노래 부르면서 분위기 띄워서 자연스럽게 스킨십까지 가야 된다. 니 또 아무도 모르는 엠씨 스나이퍼인지 엠씨 쓰레빠인지 이상한 랩 하지 말고 빅뱅 이런 거. 다 아는 거. 신나는 거. 부르라고 알겠냐고! 고해 나오면 바로 취소 누를 거다. 고해 좀 부르지 마라."


" 알아서 게. 무슨 선생이가 뭔데."


"술도 오르고 분위기도 올랐을 때 자연스럽게 우리 이제 좀 피곤한데 편하게 방 잡고 술 한 잔 더 마실래?  이 스토리로 가야 된다고. 알겠냐고. 노래 부르고 신나서 술만 벌컥벌컥 마시다가 꽐라 돼서 재 뿌리지 말고 파이팅 좀 하자. 제발."


"알았다. 알았다고 이 성의 노예 같은 새끼야. 니 같은 새끼들 때문에 절대 딸은 못 놓겠다."


"야, 근데 정도면 병원 가서 검진받아야 되는 거 아니가. 장이 썩은 거 같은데?"


난 손으로 허공에 부채질을 했다.


"듣겠다. 조용히 말해라."


남자 둘이 화장실에서 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곧 나도 나왔다. 아주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쌍으로 돌아가면서 꼴값들을 떨고 앉았네 싶었다.




나와 썸녀는 히노쇼군에서 나와서 2차로 생맥주 집에 갔고 3차로 해산물 실내차에 갔다. 그래서 꽤나 취했버렸다. 맥주와 해산물을 잔뜩 먹어서인지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한기가 느껴지던 차에 우린 어묵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포장마차 앞을 지났다.


"오빠야. 오빠야. 우리 오뎅 먹자. 오뎅."


"이야 뜨끈뜨끈 겠네. 그래. 먹자 먹자."


우린 주황색 천막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모 이거 그냥 바로 먹어도 돼요?"


"어, 거기 작대기에 파란 테이프 붙은 거는 500원 빨간 테이프는 800원 딴사람거랑 안 섞이게 잘 모아 놔라. 간장은 요 있네."


난 종지에 간장을 담고 국자로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떠 담아 썸녀에게 건넸다.


"어 뜨겁다. 자. 조심. 조심."


"캬아. 오빠야 국물 쥑인다. 먹어 봐라."


술이 취하면 왜 그리 허기가 지는지 어묵이 너무 맛있었다. 어묵을 호호 불어가며 먹는데 포장마차 안쪽 테이블에 낯익은 두 남자가 보였다.


히노쇼군 판도라 남자 애들이었다!


여자 애들은 없었다. 아무래도 이미 택시를 타고 도망을 간 모양이었다. 난 너무 웃겨서 그들에게 귀를 쫑긋 세웠다.


"야, 문자 보낸 거 답장 오나? 몇 명한테 보냈는데?"


"다섯 명한테 보냈는데 답장이 하나도 없네."


"뭐라고 보냈는데."


"너는 지금 뭐 해? 자니? 밖이야? 이렇게."


"어떻게 해볼까란 뜻은 아니야 그냥 심심해서 그래 아니 외로워서 그래 까지, 다 쓰지 왜. 내가 여자래도. 외로워 죽을 거 같아도. 차마 니한테는 답장 안 하겠다. 새끼야. 그래서 둘이 우동에 소주 마시니까 좋냐?"


"아니. 택시 타고 다짜고짜 집에 가는 걸 내가 우짜는데 도로에 들누울까?"


"시끄럽다. 술이나 따라라. 무슨 손발이 맞아야지 이고."


"어? 야, 저기 두 명 지나가는데 내가 한 번 갔다 올까?"


"어디? 어디!"


"뻥이다. 이 새끼야."


나는 가서 등이라도 토닥거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낙담하지 마라. 너랑 오래 보고 싶어서 간 거다. 내가 똥 싸면서 다 들었다. 새끼들아."


난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이모 우리 이거 먹은 거랑 저기 저 테이블까지 같이 계산해 주세요."


"어디? 저기 남자 둘이? 삼촌 아는 애들이가?"


"아, 그냥요."


난 계산을 다하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죄송한데 딴 게 아니고 내 친동생이 군대에 있거든요. 내 동생 같고 오늘 술 먹어서 기분도 좋고 해서 내가 소주 한 잔 사고 싶어서 드시는 거 이거 내가 계산했거든요. 딴 거 아니고 진짜 나라 지키는 내 동생 생각나서 그런 거니까.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먹지요."


"아? 진짜요! 이거 우동하고 소주 값 대신 계산해 줬다고요? 대박이다!"


"네. 얼마 안 해요."


"마, 새끼야 형님한테 고맙습니다. 인사해라."


둘은 벌떡 일어나 내게 고맙다고 하면서 소주잔을 줬다. 난 웃으면서 한잔 마시고 썸녀와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오빠야. 누나 밖에 없다고 안 그랬나?"


"어, 맞다. 그냥 쟤들 보니까 옛날 친구들 생각나서"


"돈이 썩었나. 차라리 내를 도. 내를. 뭐 하는 짓이고. 누가 여자 친구될지 몰라도 그 여자 친구 속에 천불 나겠네."


"근데 와... 갑자기... 오뎅 먹었드만 갑자기... 확 피곤해지네. 니는 안 피곤하나?"


썸녀는 갑자기 음을 멈추고 떡 버티고 서서 날 노려봤다.


"방금 그 말 뜻이 뭔데?"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 뜻 없이 진짜 안 피곤하냐고 물은 거다. 뭐 딴 뜻이 있는 아니고."


"오빠야. 우리가 비록 나이트에서 만나긴 했지만 나는 오빠야를 차츰 알아가고 싶다. 오빠가 혹시 다른 목적으로 날 만난 거면 미리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난 오빠가 싫었으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다."


"다른 목적 그런 거 없다. 나는 진짜 이제 피곤하기도 하고 근데 또 너랑 헤어지자니 너무 아쉽고 해서 편안하게 티브이도 보면서 맥주 한 캔 더 먹고 싶다 뭐 그런 거지. 딴 뜻 없다. 니랑 더 있고 싶으니까."


"진짜가?"


"그래! 나는 진짜 부처 같은 사람이다. 나는 니 손도 안 잡을 자신 있다."


"......"


난 침을 꿀꺽 삼켰다.


"개수작 부리지 마라!"


썸녀가 갑자기 도로 쪽으로 달려갔다. 난 멍하니 그걸 보고 있었다. 썸녀는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앉았다. 창문을 내리더니 얼굴을 내밀고 내게 오라고 손짓했다. 난 옳다구나! 동그래진 눈으로 잽싸게 달려가서 뒷좌석 문을 잡았다.


"누가 타랬나.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라고. 나도 마음은 더 있고... 아니다 내 먼저 갈게. 진짜 미안."


에이, 좋다 말았네.


"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택시 번호판 내가 폰에 메모해 놓을게."


"도착하면 문자 할게."


"어, 그래."


그녀를 태운 택시는 매정하게 내달렸다.


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라이터를 켜고 빨아 당기자 빠지직 불이 붙었다. 연기를 내뿜으니 하얀 연기 속에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포장마차가 다시 보였다.


포장마차 옆으로 수많은 네온사인이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 찰싹 달라붙어 걷는 연인들.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삐끼들을 보며 난 생각에 잠겼다. 


녀의 마음이 읽히는 듯했다.


그녀를 만나서 지금까지 그녀의 겉만 보았다. 처음 겉이 아닌 그녀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번도 드러내지 않은 내 마음속 판도라 상자 뚜껑을 열어 그 안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나를 만났고 난 몸을 들여다보려고 그녀를 만난 진실이 판도라 상자 안에 고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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