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면 다섯 살배기 꼬맹이인 내가 할배 옆에 찰싹 붙어서 말을 걸었단다.
"할배, 뭐 하노. 막걸리 맛있나?"
"아이고 그이 아이가! 맛있고 말고 니도 함 무 볼래?"
"어! 나도 무 볼래!"
할배는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내게 한잔 주었단다. 모두들 입에 대자마자 퉤 뱉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꿀꺽꿀꺽 잘도 마셨단다.
"캬아! 쥑이네!"
어른 흉내 내면서 김치 쭈욱 찢어 먹고는 한잔만 더 달라고 할배한테 졸랐단다. 조르다가 안되면 개다리 춤을 추면서 애교를 부렸단다.
그 후로도
할배가 막걸리 주전자만 잡았다 하면 어디선가 내가 툭 튀어나왔단다. 할배는 껄껄껄 웃으면서 사이다 섞은 막걸리를 몰래 내게 한잔씩 주었단다. 난 술 먹고 신나면 조용필 노래도 부르고 이주일 흉내도 내다가 취기가 오르면 할배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단다.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웃겼단다.
할배는 일 년 뒤 돌아가셨다.
난 할배 기억이 잘 안 난다. 사진 속 할배 얼굴은 낯선 사람일 뿐이다. 함께 막걸리를 마신 기억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 말로 우리 둘은 정말 친했단다.
하긴 술친구였으니까.
"하이고 니 요새도 술 마시나!"
엄마는 내가 술 마시는 게 큰 걱정거리다.
할배 닮아 술 좋아하나 싶어서
할배 따라 할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