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52호 (2023년 12월호)
코너 : DUGOUT Report
인터뷰이 : 강릉고등학교 이율예
일자 : 2023년 11월 9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더그아웃 매거진 스튜디오
가능성을 만개한 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역시 뜻깊은 일이지만, 그 가능성의 시작을 마주한다는 건 더욱 특별한 일이다. 자그마한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힘차게 줄기를 뻗어나간 뒤 마침내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는 과정을 지켜본다면, 그 아름다운 결과물의 가치를 진심으로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 선수가 천천히 한두 걸음을 내디딜 때, 훗날 한국 야구를 지탱하는 거목으로 자랐을 때, 난 늘 이날의 인터뷰를 되새길 생각이다. 흔하지 않은 이름만큼이나 돋보이는 존재감을 가진 이 어린 포수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갖고 있던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DUGOUT Behind> 스물한 번째 주인공,
이젠 프로의 이름을 달고 새로운 페이지를 채워나갈 강릉고등학교 이율예다.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있던 이율예. 만 16세의 어린 나이였지만, 사실 그는 이미 모두가 주목하고 있던 대형 포수 유망주였다. 특히 2023년 U-18 야구 월드컵에서도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국가대표 안방마님'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은 상태. 그래서인지 이날의 대화를 준비할 때 더 신경 쓰게 되고, 정성을 쏟아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나왔다.
"아침 7시 반에 나오려고 했는데, 눈을 떠보니까 7시 10분인 거예요. 그래서 허둥지둥 준비하느라 급하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첫 만남의 순간. 아버지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온 이율예는 지금껏 만나온 프로 선수들보다 확실히 어리고, 때묻지 않았다는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특히 인터뷰 초반 낯을 가리면서도 야구 얘기가 나왔을 때 눈을 반짝이며 신나게 얘기하던 모습은 영락없는 '야구 소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릉고 유니폼 위에 대표팀 장비를 입을 때는 또 얼마나 멋있었는지 모른다. 역시 태극마크의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순간.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발견한 이율예는 정말 다양한 매력을 가진 선수였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경기장 안에서의 화려한 쇼맨십. 고교 야구가 비교적 선수들의 감정 표현이 격한 편에 속한다지만, 이율예의 퍼포먼스는 유독 인상적이었다. 대표적인 경기가 2023 이마트배 결승전(위 영상 12분 35초와 13분 32초). 홈으로 쇄도하는 주자를 아웃시킨다거나, 중요한 볼넷을 얻어냈을 때 그는 짜릿함을 여과 없이 분출하곤 한다. 하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열정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반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편이라고.
"저도 모르게 나와요.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그런 액션이 나오는 것 같고... 평소엔 되게 차분하거든요? (웃음) 실제로 경기 전엔 일부러 차분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경기를 치르면서 에너지를 끌어올려야 하고, 시작 전부터 힘을 빼면 일찍 지칠 수 있잖아요."
평소에도 열정맨일 줄 알았던 내 예상이 비껴가는 순간. 게다가 프로 지명 후 그의 모습을 본 SSG 선배 박지환은 이율예를 두고 "활기찬데 좀 깍듯한 스타일이다"라고 평했을 정도. 내심 경기장에서의 퍼포먼스를 위해 원기옥(?)을 모으고 있는 건지, 원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일부러 숨기고 있는 건지 의문이 생긴다. 대체 그의 진짜 모습은 어느 쪽일까.
그래도 확실한 건 이율예는 절대로 경기장에서 기죽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을 거라는 점이다.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대표팀의 막내로 참가한 야구 월드컵에서도 그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성적만큼이나 폭발적인 텐션을 보여주며 대표팀의 흥을 돋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어차피 제가 하위 타순에 있기도 하니까, 왠지 직구를 던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직구 타이밍에 배트를 돌렸는데 운 좋게 공이 우익선상으로 빠진 거예요. 그리고 경기가 그대로 3대0으로 끝났으니까, 그 기쁨이 훨씬 컸어요." (적시타를 치고 멋있게 세리머니를 하던데,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해냈다. 이제 이겼다!"
인터뷰 중 이율예는 본인을 '안타를 쳐야 긴장이 풀리는' 스타일이라 정의했다. 경기 전 심호흡과 기도를 하면서 긴장을 푸는 루틴이 있다고 하지만, 결국 자신이 직접 결과를 만들면서 상승세를 타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얘기. 만약 이율예가 프로에서 빠르게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든다면, 무서운 기세로 프로 무대를 휘저을지도 모르겠다.
"(강민호 선배님은) 야구를 멋있게 하시잖아요. 그리고 구단 유튜브를 봤는데, 팀원들과 장난도 치고 엄청 유쾌하시더라고요. 저도 팀원들하고 그렇게 지내고 싶어서 롤 모델로 뽑았습니다."
어린 선수와 대화를 나눌 때면 롤 모델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하지만 이날처럼 인터뷰이의 롤 모델이 각인된 적은 잘 없었다. 이율예가 자신의 롤 모델인 강민호와 신기하리만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롤 모델과 닮아가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이율예의 웃는 얼굴은 그야말로 강민호와 판박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재밌는 건 평상시의 얼굴은 그다지 닮지 않았다는 것.
"제가 학교에서는 이렇게 밝게 웃진 않아요. (웃음) 그래서 지금보다는 더 그러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확실히 이율예는 활짝 웃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괴리는 큰 편이라고 느꼈다. 전자는 해맑은 동시에 그의 롤 모델인 강민호처럼 활달하고 친화력 갑(甲)일 것만 같지만, 후자는 비교적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리더로서의 느낌을 주는 까닭이다. 물론 그가 수비의 핵심인 포수라는 걸 고려하면 차분하고 무덤덤한 인상도 결코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팀의 리더가 될 여지가 많은 만큼 (실제로 이율예는 올해 강릉고의 주장직을 역임했다) 평정심은 필요한 덕목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율예가 더 자주 밝은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밝힌 건, 자신의 롤 모델이 야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친화력을 가졌음에도 오랜 기간 정상급의 포수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듯하다는 게 내 의견이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비록 현재는 수더분하고 깍듯한 이미지에 가깝지만,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날 만난 그는 이미 '강민호스러운' 성격을 가질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과연 그가 그 잠재력을 터트리는 순간은 언제가 될지 궁금해질 따름.
"큰 걸 바라진 않아요. 일단 다치지 않는 게 최우선이고요. 수비에서는 기본기 위주로 정확한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훈련할 계획이고, 공격에서는 힘을 키워서 좀 더 장타를 칠 수 있게 힘을 키울 생각이에요."
'SSG 1라운드 지명자'인 이율예를 만났을 때는 정확히 그가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1년을 앞둔 시점이었다. 이미 3학년 선배들이 일찌감치 다음 진로를 정한 상황에서, 한 살 위 형들이 맡은 역할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가득할 시기였을 터. 2학년 시절부터 탈 고교급 포수라는 평가를 들으며 프로 지명을 향한 기대를 키웠지만, 타격이 최대 강점인 수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돋보이지 못했기에 불안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2024시즌에 이율예는 수비만큼이나 타격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주말리그 전반기 6경기에서 타율 0.550이라는 폭발적인 활약으로 최우수선수에 선정됐고, 끝내 작년 0.327에서 더욱 상승한 0.370의 타율로 3학년 시즌을 마무리했다. 출루율과 장타율도 5할을 넘기며 OPS는 1.022에 달하는 호성적. 이에 당초 상위 라운드에 지명될 거라고 예상된 이율예는 2025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 후보로까지 급부상했고, SSG가 그를 1라운더로 선택하며 이는 현실이 됐다. 나 역시 1년 전의 인터뷰이가 이런 경사를 맞이했으니, 내게도 당연히 기쁜 일이었을 수밖에.
※ 이율예 고교 3년 성적
- 1학년(2022년)
19G 41타수 12안타 0홈런 10타점
타율 0.293 / 출루율 0.431 / 장타율 0.366
- 2학년(2023년)
32G 98타수 32안타 1홈런 15타점
타율 0.327 / 출루율 0.443 / 장타율 0.449
- 3학년(2024년)
24G 73타수 27안타 2홈런 16타점
타율 0.370 / 출루율 0.515 / 장타율 0.507
객원 시절을 포함해 약 3년 동안 <더그아웃 매거진>의 에디터로 활동 중이지만, 특이하게도 이율예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고등학교 선수로 남아있다. 의도적으로 '더그아웃 리포트' 코너를 기피하는 건 절대로 아닌데... 간혹 담당하고 싶은 고등학교 선수가 나오더라도 매번 이 코너에 풀베팅하는 에디터가 등장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기에 이율예는 요 근래 프로 유니폼을 입은 영건 중 유독 관심을 쏟게 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1라운더'인 만큼 이미 여러 사람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겠지만, 잠깐이나마 대화를 나눈 인연을 핑계 삼아(?) 그 기대 속에 내 미약한 응원의 메시지를 더해보려 한다. 지금부터가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텐데, 이젠 '강릉고의 이율예'가 아닌 'SSG의 이율예'로서 더 빛나는 선수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훗날 프로에서 피워낸 그만의 꽃이 한국 야구를 빛내는 결과물로 남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인터뷰 현장에 동행한 건 물론 큰 도움을 주신 이율예의 아버지에게도 축하와 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평소 아들의 경기 영상을 모두 찍어올릴 만큼 헌신적인 서포트를 이어오셨는데, 이날도 인터뷰에 사용한 질문지를 기념으로 가져가도 되냐고 하셨을 만큼 아들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케어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게다가 컨트리뷰터에 언급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재촬영 이슈에도 너른 양해를 해주시기도. 요 근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계시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의 행복이 더 찬란한 미래의 시작점이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앞으로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