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DUGOUT MAGAZINE> 158호 (2024년 6월호)
코너 : DUGOUT People
인터뷰이 : KIA 타이거즈 김도영
일자 : 2024년 5월 2일
형식 : 대면 인터뷰
장소 : 광주KIA챔피언스필드
타인의 성공을 재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잠재력을 가졌다 한들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와 현재의 단면을 근거로 한 것인 까닭이다. 과거의 기대가 반드시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으며, 실제로 높은 기대가 부담감으로 작용했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젊은 선수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는 '막연한 지지'를 보내지 않도록 주의하게 된다. 물론 직접 만난 이들에게 최대한 긍정적이고 잘 정제된 글을 써내야 하는 건 우리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그러나 내 글이 피상적이고 공허한 응원만을 담았다는 평가를 듣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원고 작성 시 가장 마지막에 작성하는 서문에 전력을 다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보낸 응원이 현실로 다가왔을 땐, 내 노력이 허상이 아니었음에 쾌감을 느끼곤 한다. 직접 만난 선수가 진심으로 잘 되길 바라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일지도.
<DUGOUT Behind> 스물두 번째 주인공,
'예비' 슈퍼스타에서 진정한 슈퍼스타로 거듭난 KIA 타이거즈 김도영이다.
김도영과의 첫 인터뷰는 2022년 11월 14일. 비록 전화 인터뷰긴 했어도 신인 시절부터 관심이 가던 젊은 선수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1년 반이 채 지나지 않은 2024년 5월 2일, 김도영과의 두 번째 인터뷰가 성사됐다. 비록 직접 그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다시 한번 그의 이야기를 내 손으로 담게 됐다는 사실이 정말 반가웠다.
151호(2023년 11월호) 이후로 정확히 7개월 만에 <더그아웃 매거진>에 등장한 그. 지난 출연과 비교했을 때 김도영은 사뭇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2023년에도 3할 타율을 달성하며 성장세를 보이긴 했지만, 이때는 월간 10홈런-10도루를 포함해 각종 역사를 갈아치우는 등 완전히 정상급 선수로 성장해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51호 표지 모델 당시 역대급 판매 부수를 찍었을 정도로 김도영은 이미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선수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김도영이 다시 표지 모델로 나온다니... 얼마나 많은 팬의 호응이 있을지 짐작도 안 갔다. 그래서 인터뷰에 쓰일 질문지를 준비하고, 인터뷰 녹취록을 들으며 원고를 완성하는 과정이 상당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김도영이 막 1년 차 시즌을 마친 직후의 상태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잠재력을 만개한 그의 이야기를 적는 게 어찌나 감회가 새롭던지.
실제로 첫 인터뷰 이후로도 김도영을 향한 내 관심과 애정은 계속됐다. 그가 야심차게 준비한 2년 차 시즌 초반에 부상을 입었을 때는 너무나도 속상했고, 복귀 후 데뷔 시즌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줄 땐 내 일처럼 반가웠다.
특히 그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APBC는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였다. 한국이 아닌 곳에서, 도쿄 돔이라는 넓은 무대에서 활약하는 '건강한' 김도영의 모습이 어찌나 장하고 자랑스럽던지. 안 그래도 대회 내내 적진에서 응원하는 기분이라 대표팀 선수들의 응원가를 부를 때마다 괜히 악에 받치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김도영의 응원가를 부를 땐 유독 국뽕이 차오르곤 했다.
솔직히 그의 응원가가 여간 좋은 게 아니지 않던가.
아는 사람도 몇몇 있겠지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리드오프는 '장타툴을 가진 우타자'다. 이를테면 LA 다저스의 무키 베츠나, 밀워키 브루어스의 잭슨 추리오가 대표적인 예시. 그런 면에서 일찌감치 리그 최상위권으로 평가받은 주력에 장타력을 만개한 김도영은 현 KBO리그에서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리드오프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좌타자 중심의 리드오프가 유행하는 상황에서 그의 각성은 내게 반가운 일일 수밖에. 다만 소속팀 KIA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김도영은 클린업 트리오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 '1번 타자 김도영'은 당장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이정후, 구자욱, 김하성 등 잔뼈가 굵은 강타자들과 함께할 거로 보이는 2026 WBC에서는 내심 김도영이 1번 타자로 출전하는 그림을 고대하고 있다.
1- 김도영 (DH)
2- 구자욱 (LF)
3- 이정후 (CF)
4- 노시환 (1B)
5- 김하성 (3B)
6- 토미 에드먼 (SS)
7- 김혜성 (2B)
8- 박동원 (C)
9- 홍창기 (RF)
가끔 상상해보는 라인업이라기엔 뇌피셜에 가까운 거긴 하지만, 대충 이런 그림이 되지 않을까. 이 선수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WBC 무대를 휘젓는 김도영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이제 단 한 시즌만 치르고 나면 2026 WBC가 펼쳐질 텐데, 김도영이 작년만큼의 모습만 보여주더라도 그리 비현실적인 목표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다.
"뭐든지 성적을 내는 게 우선이에요. 만약 국제대회에 다시 나갈 수 있다면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충분한 생각을 하고 플레이를 하려고 합니다."
제목에도 썼듯이, 현재 김도영을 설명하기 위해 쓴 표현은 '처음 마주하는 순간'이다. KBO리그 사상 첫 '월간 10홈런-10도루' 달성 당시 정우영 캐스터님의 코멘트에서 영감을 받긴 했지만, '처음'이라는 단어는 김도영을 대표하는 키워드로 뽑히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때론 '이종범의 전성기 때 사람들이 느낀 감정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싶다가도, 뭔가 그의 퍼포먼스는 누군가의 모습에 대입하자니 묘하게 이질감이 들곤 했다. 그 정도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내게 충격적이고, 얼핏 만화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그나마 내 눈으로 봐온 야구선수 중 김도영에 버금가는 충격을 안긴 건 2015년의 테임즈 정도다. 그나마 테임즈도 외국인 선수였던 데다 선수로서 전성기에 접어드는 20대 후반이었는데, 김도영은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국내 선수였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배로 다가왔다. 심지어 이것이 커리어하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니... 응원팀을 떠나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를 안 할 수 있겠는가.
특히 하필 작년은 오타니의 50-50이 나온 해라, 김도영도 40-40으로 그 방점을 찍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끝내 2홈런이 부족했다는 게 참 아쉬웠지만, 그래도 작년이 끝이 아니라는 거에 위안을 삼기로 했다. 아직 21세에 불과한 어린 선수 아니던가. MLB 포스팅을 신청하기에도 아직 4년이나 남은 시기. 그동안 40-40이 문제겠는가. 어쩌면 그보다 더한 위업을 달성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것이 마냥 희망 회로라고, 막연한 기대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걸 알 필요가 있다. 이미 김도영은 모두의 상상을 뛰어넘는 '처음'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그가 우리가 여태껏 보지 못한 광경을 유감없이 선사하더라도, 그건 전혀 비정상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김도영의 성장을 지켜볼 때면 참 흐뭇한 감정으로 가득해진다. 특히 프로 입성 후 첫 잡지 출연을 함께하고, 대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본 입장이라 더욱 그렇다. 아직 직접 대면하지 못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지만, 멀리서라도 이렇게 응원하면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느낀다. 언젠가 그의 어린 시절 활약을 얘기할 때면, 나 역시 한 명의 목격자가 될 수 있을 테니.
스타의 탄생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뜨겁게 만들곤 한다. 리그를 대표하고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이는 선수는 응원팀을 막론하고 '전국구 선수'가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스타가 누구냐고 한다면, 주저 없이 김도영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상대할 땐 공포의 대상이 되다가도, 태극마크를 달 땐 '우리 선수'로 변모해 모두의 응원을 받는 그런 선수 말이다.
2022년에 처음 그와 인터뷰했을 때, 난 서문에 '아직 우리는 고작 이 아기호랑이의 첫 걸음마만을 목격하지 않았던가'라고 남겼다. 그리고 다행히 그 말대로 김도영은 첫 시즌의 성적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앞서 얘기했듯 난 선수들에게 막연한 지지를 보냄으로써 선수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 하지만, 괜히 김도영에겐 지금보다 더 뛰어나고 위대한 업적을 이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걸게 만든다.
왠지 김도영은 반드시 해낼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