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도하를 잠시 경유했다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마드리드로 가고 있어. 목적지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를 타니까 수시로 모니터를 보게 되네. 지금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궁금해.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여행을 온 이유도 비슷해.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을 지나면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궁금했어. 그런데 내 안에 있는 것 중에 무엇 하나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거야. 지금까지 한 일들이 다 무용해 보이고, 잘하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더라고. 그 이유는 아마도 초점거리 때문이지 않을까. 삶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초점거리가 너무 가까운 것 같아. 당장의 마음과 상황에 묶여서 과거와 미래를 보는 눈을 다 잃었어. 우리 주변에는 거리를 두고 봐야 좀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 난 그런 것들을 보지 못 해, 지금.
그래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아주 작아지기로 했어. 아예 다른 나라로 넘어와서 그동안 갇혀 있던 삶에서 벗어나보기로 했어. 그리고나를 축소하는 거야. 생경한 세계에서세상의 규모를 실감하느라 나는 완전히 작아지는 곳으로 가는 거지. 나와 내 현실을 별 것 아닌것으로 만들수 있게.
돌아갔을 때는 나라는 사람의 사소한 아름다움과 평범한 특별함을 더 잘 알아채고 용감하게 선택하고 싶어. 나는 돌아가기 위해 먼 곳으로 온 거야.
한 번도 유럽 여행을 가지 못한 엄마와 동생을 두고 비행기를 타고 있자니 마음이 쓸쓸해. 꽤 쿨하고 거침없는 딸이 유럽을 쏘다니면서 행복하길 바랐겠지만 비행 내내 애리 씨와 동생을 생각하고 있어. 영화나 드라마도 잘 안 들어오고 앞만 보고 있거나, 잡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 무고하게 떠오르는 생각 사이로 애리 씨와 동생 얼굴이 계속 지나가. 함께 오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그래도 유럽에서 잘 지내볼게. 이 여행을 마칠 때쯤이면 일상으로 돌아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어. 더 단단해져서 돌아갈게. 이제 다시 내 궤도를 찾을 용기를 되찾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