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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Feb 22. 2024

[PRESS] 나태주 시인의 약속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에요


꽃이 피고 지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나태주 시인의 아름다운 약속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더 좋을거야 

그래, 이런 말이 듣고 싶었다. 옆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건네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어서 스스로 자꾸 되뇌이곤 했다. 좋아질 거라고.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질 거라고. 한동안 몸과 마음이 고될 때마다 조용히 중얼거리거나 메모장에도 일기장에도 비슷한 말을 자주 썼다. 작년 10월에는 비슷한 제목의 글도 한 편 올렸다.


[에세이] 더 좋을 거야 

작년 여름에 나를 관통해간 어느 시기를 지나오면서 쓴 글이다. 더 좋을거라고 믿기 위해 발버둥치던 시기의 흔적이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다.


그렇게 혼자서만 마음에 담아두던 말이었는데, ‘약속’이라고 말해주는 저 제목이 따스하게 느껴졌다. 좋아질 거라는 나의 문장은 악쓰는 것에 가까웠다. 버티기 위해 어떻게든 믿어야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왜,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있지 않으려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일을 기대하기 힘든 순간들이.


그런데 나보다 우여곡절을 많이 겪고 인생을 더 많이 사신 노시인께서 건네주는 ‘약속’이라는 말을 들으니 조금은 마음이 뭉글해진다. 분명 좋아질 거라고 너무 애쓰지 않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이 책에 관심이 갔다. 흔히 가볍게 쓰는 싸구려 위로가 아니라 그 안에 또 무언가가 있을 것만 같아서.


게다가 나태주라면 <풀꽃>, <멀리서 빈다> 같은 시들로 유명한 따뜻한 시인이다. 최근 누군가를 자꾸 떠올리며 시 <멀리서 빈다>를 읽기도 했었는데 그런 기억들이 떠올라 책을 골랐다.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거에요> 노시인께서 전하는 제목의 저 문장 하나로도 꽤나 울림이 있지만 책을 읽으며 호기심을 가지고 조금은 더 물어도 좋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하고.


이 글을 읽으면서도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도록 책의 목차와 소제목들을 소개한다. 제목 하나하나가 시 같은 느낌이다. 그리 특별하지 않아보이는 문장들이 나는 왜이리 따스해보일까. 이 문장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위로는 나태주라는 친숙한 시인이라는 배경 탓도 없지 않겠지만 그 자체로 애정이 담겨 힘이 있는 거라고 믿어도 될까.




제목: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거에요




<목차>


프롤로그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지금 그대로도 




1부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참 좋다 


그냥 좋아하는 거 하세요 


가끔 황망한 날을 만나지요?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세상은 아직도 징글징글 좋은 곳이야 


어머니가 첫 번째로 사주신 시집 한 권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날마다 이 세상 첫날처럼 


우리가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일흔이 넘어도 사랑은 언제나 서툴다 


아들과 아버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아버지가 아들에게 빚진 일 




2부 당신과 오래 세상에 머물고 싶어요


져줄 줄 아는 사람 


아내의 첫 시 


들으면 기분 좋은 말 


너무 늦게 오지 말아요 


주저앉았을 때, 나를 일으키는 것들 


아내 앞에서 서약하다 


삶이 막막해도 이팝나무 꽃은 환장하게 피지요 


아내와 사이다 한 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아주 특별한 학용품


내가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는 오늘 산을 그렸다 


늙은 사람도 늙은 사람에게 배우지요


나는 오늘 밥을 먹었다 


수녀님과 가수


나에게 특별한 날, 내가 새로워진 날




3부 기적이란 그 속에 있을 땐 모른다


나는 왜 사는가


사랑하려면 가끔 뒤를 돌아봐야 한다


사는 일에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어요


풀꽃아 너도 살아서 기쁘냐? 나도 그렇다 


나는 낫고 있다, 그 말에 대해 


괜찮아, 질 수도 있어 


내일이면 오늘 일이 사무치게 그리워져요 


암캥이 수캥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병원에서 맞은 아내의 회갑


괜찮아요, 소리 내어 울어도 괜찮아요 


아침이 멀리 있어도 아침은 와요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당신과 앞산을 오르는 것도 기쁨 아니겠소 


날마다 사는 연습이지요 




에필로그


그대도 기죽지 말기를 




시인은 크게 아팠다고 한다. 장례를 논의할 정도로 심각한 고비를 겪으며 중환자실에서 꽤 길게 생활하기도 하셨다. 

왜 이렇게 삶의 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괜찮다고 더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 걸까. 지나고나면 추억을 맞아 다 괜찮아보이는 걸까. 분명 괜찮지 않았을 시절을 겪은 저자가 말하는 좋아질 거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이 궂은 날이었다면 내일을 기대해보자. 내일은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나겠지. 까치발을 디뎌보자. 이것이 희망이다.




나는 날마다 내일을 기대하며 산다. 내일을 꿈꾸며 산다. 비록 내가 꿈꾼 내일이 허탕일지라도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꾸고 내일을 기대한다. p.25




다시 말해 조금 불평을 하자면, 이건 너무 좋은 말이지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이 다음 페이지의 제목이 “가끔 황망한 날을 만나지요?”인 것은 이런 반응을 예상해서 일까. 이어지는 내용에는 처음 아픔을 참지 못하고 병원에 가던 날의 기억이 적혀있다. 고통을 안고 “아무래도 이번에 집을 떠나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서” 한 시간만 집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그 뒤로 수도없는 아픔을 겪은 저자는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진통제를 놓아도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길고 긴 병원 생활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터널 속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길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어둑한 터널,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그 길. 금방 빠져나오면 다행이지만, 그 터널이 길다고 좌절할 필요도 기죽을 필요도 없다. 나는 그 터널 속에 갇혀서야 깨달았고, 이 책은 그 기록이다. 




‘나도 이렇게 아팠는데 일어났으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같은 사람도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p.29




책을 두 번 정도 읽으며 시인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을 따라 읽다보니 마음속에 ‘결국 지나간다’는 말이 떠올랐다. 지금 어떤 시간을 견디고 있든 결국 시간이 가는구나. 또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살아난다는 보장만 있다면 죽을병에 걸리는 것도 한 번쯤 해볼만한 일’이라던 책 속의 말이다. 

왜 자꾸 이 말이 마음에 걸릴까 생각해봤다. 결국 그 모든 시간에도 결국은 의미가 있다는거 아닐까. 물론 왜 이렇게 힘드냐고 원망하고 싶겠지만, 어떻게 내일이 좋아질 거라고 믿고 기대할 수 있냐고 의문을 표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어떤 시간이든 지나가고 모든 것에는 의미가 숨어있다. 책에 담긴 의미를 이런 문장으로 요약해도 괜찮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최근 나의 삶을 돌아본다. 자세하게 설명하기는 길지만 나도 최근 하나의 시기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요 며칠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다 보니 자주 감상에 젖는다. 누군가를 너무너무 미워하기도 했고,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도 있었고, 중간에 끼어서 난처하고 어려운 상황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아주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 사건들을 거쳐 분명히 조금은 다른 내가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와서야 꺼낼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몰라 조심스럽지만 분명 좋아질 거라는 그 약속을 나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해줄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이런 말들이 설득력 없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좋아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태주라는 시인의 이름을 빌려, 시의 따듯한 문장들을 빌려, 죽음 직전에서 살아돌아온 저자의 기록을 빌려, 분명 좋아질 거라고 약속하는 따스한 마음에 속는 셈 치고 새끼손가락을 걸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나는 늙어서 더 행복하다. 젊었을 때는 아주 많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p.56 




힘들고 어렵고 지친 그런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귀한 인생,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보자. 지금 우리는 행복을 손에 꽉 쥐고 있다. 힘주려고, 싸우려고, 잔뜩 긴장해서 주먹을 쥐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볼 수 없다. 힘을 풀고 손바닥을 펴면 그 행복이 보인다. p.57






당신은 기적의 사람이다. 기적은 당신 몸속에 있다. 우리는 수많은 날을 그 기적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하지만 암흑 같은 날들이 다가올 때, 그 기적은 나온다. 내가 기적이고 당신이 기적이다. 우리들 하루하루가 기적이고 일 년 365일이 하루같이 기적이다. 




그래서 나는 말한 수 있다. 지금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것이다. p.294




 

출판사 서평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어두운 순간을 만날 수 있다. 일이 안 풀리거나 마음먹은 대로 살 수도 없을 때, 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에서도 위태로울 때……. 그럴 때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기분이 든다. 언제나 기쁘고 사랑하고 예쁜 것만 볼 것 같은 나태주 시인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열여섯 해 전,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해 사흘밖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다.  

나태주 시인은 그전까지 싸우는 사람이었다. 질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 뭐든 잘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만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야 뭐든 잘하려고 애쓰고, 이기기 위해 아등바등 대는 삶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먹고 자는 사소한 일에 감사하는 일, 하늘을 보고, 비가 내리는 일에 분별없이 기뻐하는 일, 딸아이가 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아내와 동네를 산책하는 그런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일……. 그러한 일을 소중하게 대하면서 나태주 시인의 삶은 기쁨과 긍정과 에너지로 넘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과 이야기가 에세이 『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에 오롯이 담아냈다.  

어느 날, 사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갑자기 어둑한 날들이 지속될 때 이 책을 읽을 일이다. 꽃이 환장하게 피는 봄날에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그 꽃이 다 지는 줄도 모르고 사는 지금 삶이 어두울 수 있다. 괜찮다. 나태주 시인도 예순이 넘어서야 이기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넘어지는 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시인은 지금 어두운 길을 걷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말 한마디를 건넨다. “너 괜찮아. 지금 다시 시작하면 돼.” 

이 책은 김영옥 배우의 목소리를 담아 오디오북으로도 출간된다. 연기 경력 70년이 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이자 성우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김영옥 대배우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나태주 시인의 다독임은 이 책만의 가장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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