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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Jun 07. 2024

[Review] 유머와 친절을 잃지 않는 발레 연극

유니버셜 발레단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 - 더 발레리나


아직 공연이 시작하기 10분 정도 남은 시간이다. 관객들은 한둘씩 자리를 채운다. 그들을 안내하는 직원들의 목소리와 이미 자리잡은 이들의 작은 대화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이쪽으로 앉으시면 됩니다-”, “어제 너희 아빠가 말이야 글쎄-” 




그 때 몸이 드러나는 발레 연습복을 입은 이들 몇명이 무대 위로 올라온다. 어 아직 시간 안 됐는데. 여전히 입장하는 관객들. 무대 위 무용수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고, 들고 온 가방을 내려놓고 발레구두를 손질한다. 




바닥에 발레구두 굽을 두드리는 소리. 탁탁탁- “와 저 사람 좀 봐. 엄청 유연하다.”, “어어 나 이제 공연 들어왔어 끝나고 연락할게.” 탁탁탁- “우와 근육 좀 봐. 엄청 노력했겠지?” 탁탁- 시간은 여전히 7시 25분. 5분 뒤 관객 입장은 모두 마감이 되고 무대가 밝아진다. 스트레칭하는 무용수들 사이로 들어오는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 오늘의 수업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드물게도 발레 공연임에도 연극의 형식을 채택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연극의 1장은 무용수들이 연습실에서 발레 레슨을 받으며 공연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특징적이게도 막을 올려둔채로 시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관객들은 무대 시작 전에 무용수들이 들어와 몸을 풀고 각자의 방식대로 수업(혹은 공연)을 준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보다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하도록 이끌린다.




작품 속 수업의 시작은 정해진 공연 시간이 되고 선생님이 들어오고서야 시작됐지만, 공연은 공연 시간보다 앞서 공연을 준비하는 대기실의 뒷모습으로써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공연의 시작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만드는 동시에 자연스레 공연에까지 녹아든 그 짧은 10분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대기시간이었을테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미 공연의 일부였을 것이다.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이든 <더 발레리나>는 기존의 딱딱한 공연의 형식을 넘어 관객들에게 신선하고 친숙하게 다가왔다. 







발레를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드디어 발레 공연을 내 눈으로 본다는 기대와 혹시 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너무 잔잔하거나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공존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다. 다른 음악 콘서트나 클래식 공연과 비교해서도 발레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절대적인 공연 횟수도 적은 편이고 일상에서 쉽게 접하지 않다보니 심리적 장벽도 조금 있는 듯하다. 




유니버셜 발레단 창단 40주년 기념으로 공연한 발레 공연 및 연극인 <더 발레리나>는 이런 부분을 충분히 염두하고 제작한, 관객을 향한 배려가 돋보였다. 70분의 길지 않은 공연이었고 복잡한 플롯 구성이 있는 연극도 아니었지만 발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전문가부터 첫 관람자까지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친절하고 유머있고 또 아름다운 수준높은 공연이었다. 







작품 속 이야기는 이렇게 흐른다. 한 발레단이 연습을 한다. 기본기부터 공연에 올릴 무대까지 동작을 맞춰나간다. 그러다 주연배우가 연습 중 부상을 입게 되어, 재능 있고 열정 있는 무용수가 기회를 얻고 그 자리를 대신해 성공적으로 공연을 올린다. 




도입부에서는 서두에 언급했듯이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장치로 관객들을 연극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고, 1장에서는 연습실이라는 장면 하에서 발레의 기초 동작들과 무대 뒤편 무용수들의 모습과 노력을 유쾌하게 보여주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장면에서는 일부러 실수들을 유발하고 다시 보여주며 피식-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연습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그리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장면을 보여주며 점차 안무가 맞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발레는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 보다 가깝게 느껴져서 좋았다. 같은 동작은 여러번 구경할 수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들의 몸 근육 결 하나하나에는 엄청난 노력의 흔적이 새겨져 있기도 했지만, 대사와 연습실 씬을 통해 마치 브이로그를 보듯이 무대 뒤편의 모습들을 함께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발레에 대해 더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후반부에는 수준 높은 발레 공연이 이루어지는데, 공연 전에 해설자가 나와 고전 발레와 네오 클래식 발레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준다. 나는 여기서도 역시 형식이 주는 힘을 찾는다. 발레와 공연에 대한 설명이 공연 앞부분에 이루어졌다면 다소 딱딱하고 격식이 강한 공연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공연 속 공연에 대한 설명의 형식을 차용하여 관객의 입장에서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설명에 귀기울일 수 있었다. 설명도 전문적이었고, 다양한 동작과 예시를 함께 사용해서 지루하지 않게 필요한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존의 고전 발레에서는 상체를 고정한 상태에서 동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네오 클래식 발레(신고전발레)에서는 상체의 중심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하여 표현의 범위가 보다 넓어졌다고 한다. 현대무용에서 사용할 법만 동작들도 결합되었다고 설명한 것을 기억한다. 발레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그 차이점을 엄밀하게 구분하면서 확인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설명을 듣고나니 보이는 발레 동작들을 구경하며 보다 깊이있게 즐길 수 있었다. 




발레라는 장르는 우아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잔잔한 표정과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이어지는 동작들은 왜 사람들이 발레를 사랑해왔는지 단박에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우아함은 완벽한 자기통제력에서 오는게 아닐까. 동작 하나하나 근육 하나하나가 모두 무용수의 의도대로, 아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펼쳐졌다. 하늘을 걷는 듯도 하고, 중력을 거스르는 것 같기도 한 몸짓들이 무대를 장악했다. 




발레 공연은 직접 눈으로 봐야한다는 말이 단박에 이해됐다. 직접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노력의 흔적들이 그들에 몸에 있고, 단련된 몸에서 나오는 절제되고 통제된 동작들이 주는 우아함이 있고, 인간의 몸을 통해 표현되는 아름다움과 춤의 구성과 무대의 분위기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가 있다. 게다가 <더 발레리나>는 연극의 형식을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효과적인 형식으로 사용하여 시종일관 유머와 친절을 잃지 않는 무대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앞으로 발레를 실제로 볼 기회가 있다면 언제고 추천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발레 무용수들의 이야기와 훌륭한 발레 공연이 함께 담긴 <더 발레리나>, 발레를 만나고싶다면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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