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전시였다. 가방을 캐비넷에 맡기고 매표소에서 간단한 인사를 건낸 뒤 표를 받아 전시장에 들어갔다. 가장 처음 마음 속으로 들어온 것은 '좋다'는 느낌. 아, 나 전시 좋아했었지.
미국 뉴욕에 잠시 체류할 기회가 있었을 때도 주말마다 찾아간 곳은 거리 곳곳에 있는 미술관이었다. 의미를 전부 해석할 수는 없어도 미술관 안에 발을 들여놓으면 느껴지는 비일상성과 형용하기 어려운 미적인 체험, 나는 사방이 아름다운 작품들로 둘러쌓인 의자에 오래 앉아있거나 작품의 질감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 시간을 좋아했었다.
그런 내가 전시를 한동안 멀리한 이유는 뭐였을까. 대부분의 작품을 보고 나면 감상을 글로 남겨야하는 상황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 한켠에 부담이 들어와서였을까. 그럴듯한 해석이다. 하지만 그보다 큰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전시장에서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 잘 모르게 돼서다.
일행과 함께 전시장을 찾게 되면 함께 경험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작품보다는 상대에게 정신이 팔릴 때가 많았으며 혼자 전시를 보러가면 다른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거나 외로워지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작품 앞에 서는 건 스스로의 고독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겠으나 어느새부터 그 일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미술에 대해 잘 모른다. 미술 작품에 대한 뛰어난 비평 몇 편을 읽어본 적이 있고 인상주의나 낭만주의 같은 몇가지 미술사조를 파편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년도별로 어떻게 작품의 특징들이 변해왔으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누군지도 머릿속에 명확하게 정리돼있지 않다.
때문에 내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즐기는 방식은 멀리 서서 보기, 가까이 서서 보기, 설명을 읽어보려다 작은 글씨와 어려운 설명에 지루해져 그림으로 다시 시선을 옮기기, 측면에서 보고 다시 가까이 다가가 붓질과 표현된 질감을 느끼기... 반복. 이 정도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생각과 상상이 꼬리를 물고 나는 작품들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며 하잘것없는 정신적 과잉 활동에 몰두한다.
그러다보면 나는 여기 왜 서 있나. 이 작품에는 무슨 의미가 있나. 어렵기만한 작품에 흥미가 떨어지며 피곤이 몰려오고 나는 되돌아가 나의 미감을 충족시켜줬던 몇 가지 작품을 다시 눈에 담고 전시관을 나온다. 여기서 나의 여정이 끝나면 좋겠으나 그날 본 작품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라도 남겨야하는 날에는 부담감이 커져간다.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어떤 언어에 담아 꺼내놔야 하나 고민만 깊어진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며 느낀 것을 언어화해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전문적인 배경지식과 작품과 시대적 특징에 대한 이해 없이는 더욱 그렇다. 그럼 나는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가' 혹은 '무엇을 느껴야 했는가'를 고민한다. 글은 단순해지고 지루해지고 지겨워진다. 전시장에서 느꼈던 감각들은 명료해지는 동시에 시시해진다. 쓰는 일은 언어화하고 의미화하면서 뭉뚱그려져있던 감각에 생생한 생동감을 부여하는 일이지만 때론 오히려 감각의 층위를 끌어내리는 족쇄이자 사고의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이건 미술 작품을 감상한 소감을 명확히 정달하기 어려워 고민하는 자의 비겁한 변명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솔직함이다. 그럼에도 글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좋았다는 말을 돌려서 하고싶어서다. 나는 이번 전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를 보러가서 참 좋았다. 시대별로 구분된 여러점의 작품들을 구경하며 인상파니 낭만파니 팝아트니 하는 설명을 읽는 것도 좋았고 파블로 피카소나 클로드 모네, 앤디 워홀 등 여러번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작품을 보면서 꼭 무언가를 느껴야 할까. 특별히 설명할 수 없어도 좋다는 감각 하나만으로 전시를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이번 전시에서는 분명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간만에 찾은 전시 후기를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한다. 시간이 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전시장을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