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국, 당신의 애국 (1)
※ 6.3 대선 직전에 쓴 글을 다시 정리해서 쓰니 독자님들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현재 시점으로 쓴 글은 아니다.
내 마음에 분노가 올라올 때가 많다. 그러나 그 끝은 연민이었고, 눈물의 기도였다.
나라가 어지럽고, 대선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여야 갈등과 국민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다. 나와는 달리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세뇌당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지금의 삶이 버겁게 느껴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도 있다. 동조할 수는 없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은 든다.
자본주의 사회는 결국 경쟁이 필요하고, 경쟁이 심해지면 먹고 사는 문제도 괴로워진다. 돈과 인생의 가치를 연결하고, 이 잣대로 비교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의 뿌리 깊은 인식도 큰 문제다.
원하는 만큼의 돈은 손에 안 들어오고, 목표가 있어도 마음껏 활약할 수 없다. 잘나면 잘났다고, 못나면 못났다고 비난받는다. 그러니 이도저도 못 한 채 떠도는 마음들이 생긴다.
떠도는 마음들은 괴롭고 기댈 데가 없으니, 허황된 포퓰리즘과, 허울뿐인 평등과,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다는 희망에 기댄다. 그로 인해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게 된다.
https://www.moneys.co.kr/article/2025081316021686853
이 사회가 가르친 포기와 절망을 공산주의 체제에서 말하는 평등으로 보상받으려 한다. 그 평등이 사실은 독재자의 배만을 불리는 착취라는 사실을 모르고.
이데올로기와 이념 갈등은 그 뿌리가 깊다. 상대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연민도 없다면 폭동과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폭력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누구 하나 이득 보는 이 없이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즉,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진짜 대안은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하려는 자세다. 그 작은 마음으로 시작하면 이념과 사상을 초월한 인류애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여기서 선별적 복지를 위한 건전한 논의, 보편적 가치에 공감하는 사회, 윈윈 전략으로 나아가는 한걸음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번 6.3 대선 마지막 여론조사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보았다. 실시간 채팅에서 22살 남자와 대화해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나라에서 기본소득 준다는데, 일 안 하고 집에서 게임하며 놀아도 살 수 있는데, 왜 이재명을 뽑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곧 공산주의 배급제이며, 그러면 다 같이 가난해질 뿐이라고 말해줬다. 바로 옆 중국이 선례라고, 중국 청년층은 일해도 월급이 한화 150만원이 채 안 된다고.
(실제 팩트체크를 위해 알아보니 훨씬 더 적은 금액이라 놀랐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102809023276629
일을 안 하면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면 자존감도 희박해진다. 고귀한 인간이 사육되는 가축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심지어 이재명 후보 아들의 맛사지 업소 출입을 문제 삼자, 본인은 군대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군인이 맛사지 업소에 다닌 경험이 있다고,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건 본능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보다 업소에 가는 게 낫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남녀가 서로 끌리는 건 본능이지만, 이를 통제하는 건 이성이고, 선생님의 발언은 모든 남자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만드는 거라고. 이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해줬다. 자기 경험에만 갇혀서 판단하니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지적했다.
그랬더니 모든 남자라고 한 적 없댄다. 답답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하다 말아야지, 했지만. 꼰대 마인드 장착하고 인생 선배로서 말해줬다. 직장 다니며 돈 버는 거 엄청 힘들고 괴로운 거 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의 순리이고, 그 과정을 통해 인간성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해줬다.
잘난 듯 지껄였지만, 이게 다 공산주의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공교육 문제라고 본다. 그리고 이제까지 안일하게 살아온 내 탓도 있다. 나는 교회를 다녀서 어릴 때부터 공산주의에 대해 어렴풋이 배웠기에, 사소한 계기로도 이재명 후보의 정책과 기조가 얼마나 그것과 궤를 같이하는지, 금방 깨달았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혹한다. 노력하지 않고 편하게 사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그런 삶을 위해 눈과 귀를 막는다. 삶이 힘들다고 멀리 내다보기를 포기한 것이다.
'돈 많은 백수, (월세 따박따박 받는) 집주인이 꿈, 책임 없는 쾌락, 주식이나 코인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 문제 없이 깨끗한 돈 2억 받기' 등의 유행만 봐도, 대한민국이 얼마나 게으름과 태만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눈과 귀를 막은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를 연민으로 바꾸려 한다. 분노로 타버린 마음, 그 새까만 잿더미 위에 눈물을 쏟으려 한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지만, 꼭 내가 살아있는 동안이 아니어도 좋다.
다음 세대는 부디 일하며 느끼는 성취를, 노력하는 삶이 주는 기쁨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행복을,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원한다. 그걸 위해서라면 내 이름은 이 땅에 남지 않아도 된다. 분노보다 연민을, 눈물을 택하려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낮은 곳으로, 눈물을 흘려보내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