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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Jul 25. 2022

04. 해피 홀리데이

#3 애들레이드 여행기

 애들레이드는 살기 좋은 도시로 매년 순위에 오르긴 했으나, 우리의 호주 여행지 리스트에 단 한 번도 거론되어 본 적이 없었다. 살기엔 좋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여행지로써는 매력 꽝인 도시였다. 번뜩하고 떠올릴만한 랜드마크가 없었을뿐더러 사람을 확 이끌만한 매력적인 요소가 없어 심심한 도시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1년을 넘게 살았던 루시는 애들레이드 비공식 홍보대사였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무한 찬양했다. 계속되는 영업에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저렇게 칭찬 일색인가.


 어느 날, 루시가 친구와 애들레이드 여행을 간다며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애들레이드 여행을?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루시 친구랑? 물음표들의 향연. 눈치 백 단 루시가 머뭇거리는 우리를 알아채고 그녀의 친구에 대해 말해줬다. 이름은 비비, 나와 이뽈처럼 학창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이며 둘은 애들레이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함께 했다. 게다가 루시와 비슷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소개했다. 루시의 간절한 외침 DON’T WORRY! We all friends!


 우리 둘 다 새로운 사람에게 파워 철벽 치는 낯가림 쟁이지만 루시니깐, 루시 친구니깐, 끼리끼리 이즈 사이언스니깐 그들의 여행에 살포시 숟가락 얹기로 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 인생에 애들레이드 여행은 없을 테니깐. 결정하기까지가 어려웠지, 다 결정하고 나니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들레이드 전문가 루시는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플랜을 제시해 주었고, 우리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었다. 서로의 취향을 조율하여 완벽한 4박 5일 여행 일정이 완성되었다. 만약 우리끼리 여행을 갔다면 절대 꿈꿔보지 못했을 경험들을 루시 덕분에 할 수 있었다. 크으 로컬 가이드의 위엄, 땡큐 루시.


 우리가 애들레이드에 먼저 도착해서 루시와 비비를 기다렸다. 과연 비비가 어떤 친구일지 너무 궁금했다. 멀리서 루시를 발견했다. 그 옆에서 힙합 음악을 듣는 듯 둠칫 둠칫 리듬을 타며 우리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이 비비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루시의 친구 맞네 맞아. 에너제틱 앤 하이텐션. 끼리끼리는 불변의 진리였다. 드디어 만난 우리 넷. 루시는 비비에게 우리를, 우리에겐 비비를 소개해주었다. 그러자 비비는 광희 저리 가라 호들갑을 떨며 발을 동동 구르고  하이톤의 목소리로 한껏 우리를 반가워했다. 낯가림의 대명사인 우리는 당황했지만 루시는 늘 있는 일인 양 엄마미소 지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비비의 차밍 포인트는 특유의 너털웃음 소리. 게다가 웃음 장벽이 낮다 못해 마이너스이니 그녀의 웃음소리는 한시도 떠날 날이 없었다. 웃음의 전파력은 강했고 비비가 ‘하하하’ 크게 웃기 시작하면 우리 셋은 어느샌가 같이 웃고 있었다. 매일 같이 배꼽 어딨나 찾아야 할 지경이었다.




삐래) [하늘을 날다, 경비행기 체험]


 경비행기를 타보고 직접 조종도 할 수 있다는 곳, 우리는 간단한 교육을 받고 배정받은 파일럿과 함께 탑승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파일럿이 날 향해 엄지 척, 나도 그에게 엄지 척! 사인과 함께 두둥실 하늘을 향해 올랐다. 궤도에 오르자, 끝이 안 보이는 지평선과 어마어마하게 큰 초록색 논과 밭, 굽은 강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도시의 풍경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따뜻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의 뷰가 좋았다.


 한참을 넋 놓고 풍경을 보고 있는데,  ‘It’s your turn (너의 차례야)’와 함께 시작된 나의 조종. 사실 조종이라기보다 핸들과 페달을 살짝 만져보고 밟아보는 게 전부이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비행기가 움직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놀이기구를 좋아하냐고 묻는 파일럿의 말에 아무런 의심 없이 ‘Of Course (당연하지)’라고 말하는 순간, 시작되는 곡예비행. 90도로 기울어지질 않나, 위아래 위위 아래로 움직이질 않나, 30분간의 비행이 끝나고 착륙한 뒤 영혼이 탈탈 털리고 눈은 멍한 채로 비행기에서 내려왔다. 그런 나를 보며 이뽈은 박장대소했다.  




[정글의 법칙 in 스완 리치 Swan Reach]


 동굴 '방문' 아닌 ‘탐험’의 시간.

 ‘루시야, 동굴 입구가 대체 어디 있다는 거니? 우리만 안보이니? 여긴 낭떠러지이고 그 앞은 강인데.’


 동굴로 향하는 길이 있긴 있는데 ‘이걸 길이라고 해야 하나’ 싶은 길이다. 매우 가파르고 건조한 모래로 덮여있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네발로 엉금엉금 걸어내려 갔다. 그렇게 힘겹게 도착한 동굴 입구에는 수많은 제비 떼가 시끄럽게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자 이제 유유자적 동굴 탐방 시작인가 했더니 철인 3종 경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건 내 몸 하나 간신히 지나갈만한 구멍이었다. 우리는 하드코어 코스임을 직감한 듯 서로 눈을 마주쳤다. 꾸역꾸역 몸을 집어넣어 동굴 안으로 들어간다. 직립 보행이 가능한 길도 있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오리걸음을 걸어야만 하는 구간이 대부분이었다. 정글의 법칙을 셀프로 찍고 있는 기분.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입고 있던 옷을 하나 둘 벗기 시작했다. 가장 짜릿했던 건 손전등과 핸드폰 라이트를 모두 껐을 때의 그 암흑.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조금도 보이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 잠깐 동안 어둠의 침묵을 감상하다 무서워져서 서로를 찾는다. ‘너 거기 있지?’


 동굴 밖을 향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루시는 다 왔다는 희망고문을 되풀이했고 드디어 우리 눈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 여긴 천국인가요. 할렐루야.’ 해냈다는 뿌듯함과 함께 다신 오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공존했다.

 본의 아니게 체력 단련을 한 덕분에 우리의 점심이 너무나도 맛있게 느껴졌다. 이래서 땀 흘리고 난 뒤의 식사는 꿀맛이던가. 테이크 아웃한 버거를 스완 리치 강가에서 먹었다. 강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아 맛있는 버거에 흥분했다가 눈앞에 펼쳐진 절경에 대화가 잠시 멈췄을 때 이게 진짜 휴가라고 생각했다.




이뽈) [돌고래보다 더 높은 고주파로 돌고래를 만나다, 포트 애들레이드 Port Adelaide]


 단돈 AUD 10에 야생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온 곳이었다. ‘덕계못’ 법칙을 브루니에서 체험하고 온 뒤라 반신반의하며 유람선에 탑승했다. 한 마리의 돌고래가 등장하자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에게 인사하듯 매끈한 지느러미와 꼬리를 뽐내며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고 있자니 엄마 미소가 절로 나왔다. 너희들은 존재 자체 만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구나. 몇 마리의 돌고래를 본 사람들이 차디찬 바람을 못 견디고 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기다렸다. ‘우린 아직 배가 고프다. 돌고래는 다시 올 것이다. 이게 끝일 리가 없다.’ 버티는 자가 결국 승리한다고 했던가. 돌고래에 대한 나의 애정이 닿은 건가. 돌고래가 다시 나타났다.


 내가 찾아냈다!!! 방송에서 돌고래 위치 알려주기 전에 내가! 나님이! 먼저 발견했다고! feat. 너무 기뻐서 주체가 안 될 때 터지는 외침,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울부짖음.

 나의 돌고래 사랑은 찐이라고요.




 여행 계획을 짠 루시가 선택한 장소는 우리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음식 취향까지도 잘 맞았다. 우리들 엄마한테 전화해서 사전 조사했나 싶을 정도로 어쩜 우리를 잘 아는지. 몇 십년지기 친구처럼 말하지 않아도 죽이 척척 맞았다. 4박 5일의 시간은 빛의 속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즐겁고 행복했던 날들을 보냈기에 헤어짐의 아쉬움이 더 진하게 남았다. 루시와 비비는 우리의 여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며 정말이고 다시 만날 사이처럼 쿨하게 작별했다. 루시와 비비다운 끝인사에 헤어짐이 또 다른 만남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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