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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Jul 26. 2022

05. 사막에서 살아남기

#3 네가 그립다

삐래)

 이뽈이 엘리스 스프링스로 떠난 후, 혼자 휴온빌에 남게 되었다.

 ‘얼마 만에 자유냐!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한 동안 룸메이트가 없는 삶을 만끽하며 아주 편하게 지냈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몇 주 가지 못했다.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이렇게 허전할 수가.


 매일 새벽 5시, ‘아 그지 같은 공장’ 하면서 같이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에는 같이 맛있는 집밥을 해 먹고 미주알고주알 공장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같이 보냈던 이뽈이 없으니 점점 말 수가 줄어갔고 생활이 무미건조 해졌다. 정말 정말 심심했고 틈만 나면 이뽈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통화, 이때 난 우리가 리스너보다는 토커이며, 그냥 토커도 아니고 헤비 토커란 사실, 찐친구 대화에서는 주제가 무궁무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서로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시작으로 연예인 이야기, 고등학교 때 이야기 등등 주제가 끊임없이 나왔다. 우리가 떨어져 있던 고작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같이 통화를 했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1시간은 기본이고 오래 할 때는 3시간까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만든 우스갯소리로 만든 룰은 3시간 이상 통화하지 말기였다. 남자 친구와도 이렇게 오래 못할  텐데 우리 선은 서로 넘지 말자고 룰을 만든 이후로는 칼같이 2시 50분이면 끊었다.


 하루 중 이뽈과 통화하는 시간을 제일 기다렸고 우리의 대화는 하루의 위로였고 내일을 버틸 힘이었다. 이뽈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새삼 알게 되었고, 고맙고 그리웠다.


 어느덧 지역 이동을 해야 할 때가 왔고 여러 도시가 후보에 올랐다. 어김없이 이뽈과의 통화를 하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동 후, 적응하는 것과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뽈은 잘 알기에 많이 걱정해주었다.


 그렇게 며칠 후, 다급한 전화 한 통. 발신자는 역시 이뽈.

 ‘내가 일하는 리조트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너 올래?’


 워홀 처음 왔을 때 했던 구직활동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에 적응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지낸다는 것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뽈의 전화 한 통에 가장 걱정했던 일이 한순간에 날아갔다.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주저 없이 엘리스행 비행기를 끊었다. 나의 호주 워홀 생활에 이뽈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금세 포기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쳇바퀴 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호주 가기 전 사주 볼 때, 귀인이 나타날 거라더니 이뽈이 귀인이었나.



 

이뽈)

 호주의 중심에 위치한 앨리스 스프링스는 인구 2만 오천명의 작은 사막 도시이다. 가까운 도시가 하나 없는 외딴곳 중의 외딴곳. 울룰루 취업 실패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엘리스 스프링스로 오게 되었지만,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일을 구하기 쉽고 시급이 높다는 점. 근데 사무치게 외로울 수 있으니 주의하란 말은 왜 아무도 안 했던 것이냐. 이곳에 오면 여기 어떻게 왔냐고, 지인이 있냐고 묻는다. 즉, 혼자 와서 정착하여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별로 없으며 인터넷 상의 정보가 많지 않아 워홀을 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하필 이런 곳에서 홀로 서기를 시도한 것인지.


 에어즈락에서 엘리스 스프링스까지. 내가 일을 구하지 못했을 때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은 삐래뿐이었다. 엘리스 스프링스에서 첫 취업에 성공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삐래에게 전화하기. 없어져봐야 소중함을 안다고 이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 누가 보면 10년 못 본 사이인 줄. 있을 때 잘했어야 했는데. 삐래가 타즈매니아에 같이 살았을 때 혼자서 한 달간 한국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방도 혼자 쓰고 내 맘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많아져 자유로움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래, 그때는 둘보다 혼자여서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도무지 적응도 안되고 왜 이렇게 싫은 건지.


 띵동, 아이폰에서 뜨겁다고 경고가 뜰 정도로 더운 엘리스 스프링스의 날씨. 36도가 넘는 사막이 진짜 맞는구나 싶었다. 어쩜 구름 한 점이 없는지. 매일같이 반복되는 맑은 날씨에 지쳐 나가떨어진 지 오래. 흐린 날씨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적은 내 평생 처음이었다.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엘리스 스프링스에선 손수건이 필수. ‘감기 조심하세요~’ 판피린 캐릭터처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야만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얼굴이며 팔이며 새빨갛게 익은 날이 많아, 이틀에 한 번꼴로 오이 마사지를 필수로 해줘야 했다. 빨래가 바짝 마르는 건 좋았지.

호주 엘리스 스프링스_돈 쓸 곳이 별로 없는 심심한 곳이지만 노을은 예쁘지

 돈을 벌 수 있는 곳은 많은데 돈을 쓸 곳은 없는 금욕의 도시다 보니 밤새도록 수다가 가능한 친구가 필요한 건 당연지사였다. 낯선 곳에서 내 편 하나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지 혼자가 되어서 깨달았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징징대며 여기로 이사오라고 하는 건 나답지 못하지. 삐래의 엘리스 스프링스 이주 프로젝트 시작!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이니 리조트와 레스토랑에 공석이 생기면 바로 알려 달라고 말을 해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하우스키퍼 한 명이 일을 그만두었다. 이 소식을 알리자마자 삐래는 두말할 것 없이 비행기표를 예매했고 나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보았다. 집을 구한다는 공고를 엘리스 스프링스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하고 직접 찾아가서 집의 컨디션을 살폈다. 그렇게 일자리와 집을 다 세팅한 뒤 그녀가 왔다. 내 계략대로 되고 있구먼.


 ‘삐래!!!! 이런 친구가 어디 있니? 너의 워홀러의 귀인은 나야 나!’  


 잠깐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몸소 깨달아서 인지 우린 사막에서 즐겁게 잘 지냈다. 과도기를 지나쳐 안정기에 접어든 신혼부부처럼. 더 이상 마음 상할 일도 없고 이해해야 되는 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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