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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Jul 22. 2022

02. 워홀러의 워킹 라이프

#3 일 하러 갑니다

 연어 공장은 오전 반과 오후 반으로 나누어지는데, 오전 반은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오후 반은 오후 3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을 한다. 우리는 오전 반으로 취업이 된 것이다!


 첫 출근 어스름한 새벽녘, 졸린 눈을 비비며 터벅터벅 어둠을 뚫고 연어 공장에 도착했다. 매니저가 공장 안내를 간략하게 해 주었고, 너희를 도와줄 분들이라며 소냐와 미셀를 소개해줬다. 직장 내 교육훈련(OJT)의 일환으로 신입이 시니어(경력자)와 한 팀이 되어 일을 배우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담당 시니어를 '버디'라고 불렀다. 버디는 출근 당일 본인에게 배정된 라인을 확인하는 법, 복장을 갖춰 입는 순서와 물품의 위치, 담당 업무 등 전반적인 것을 자세하게 설명해줬다. 어떤 버디를 만나느냐가 이곳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느냐를 결정했다.


 라인 투입 전, 하얀색 방진복을 입고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정성스럽게 망 안으로 넣어준다. 머리 망 밖으로 머리카락이 살짝이라도 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불호령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장화를 한쪽 씩 딱딱 신고 이어 플러그까지 귀에 꽂으면 비로소 일할 준비 끝! 난생처음 입어보는 복장에 어색해서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시끄러운 공장 속에서 일을 빨리 배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버디들의 시시한 농담도 귀에 안 들어왔다. 바짝 굳은 상태 속에 드디어 공장 내부로 입장. 극한의 긴장 상태가 되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무거운 마음과 입을 굳게 다문 침묵 속 긴장의 우리의 눈 맞춤, 말하지 않아도 아는 우리 둘만의 시그널, 비장한 고개 끄떡임.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3개의 라인이 돌아가고, 업무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 업무는 훈제된 통 연어를 커팅 기계에 넣으면, 한 장 한 장 슬라이스 된 연어들이 밀려 나오기 시작한다. 재빠르게 슬라이스로 잘린 연어를 그램 수에 맞게 포장 용기에 올린 후 진공 포장 기계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리면 된다. 이게 말이 쉽지, 슬라이스 몇 장을 올려야 무게가 딱 맞는지 처음부터 어떻게 안담? 연어는 폭포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집어서 올리는 것마다 그램 수가 안 맞아서 연어를 뺐다, 올렸다 하니 속도는 안 나지, 빨리하라는 슈퍼바이저들의 채근 등 삐질삐질 진땀 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당황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업무는 연어 슬라이스가 올려진 용기를 진공 포장 포켓에 하나하나 넣는 일이었다. 이것도 속도전이었다. 포장을 기다리는 연어가 쌓이지 않도록 양손을 바삐 움직여 포장 기계에 넣어야 하고 이 와중에 틈틈이 연어 퀄리티도 체크해야 했다. 손이 4개면 얼마나 좋아. 바쁘다 바빠. 


마지막 업무는 밀봉 포장된 연어를 급속 냉동 창고로 이동하는 레일에 차곡차곡 줄 맞춰 올려놓는 일이었다. 우선 이 일은 냉동창고 바로 옆에 있어서 가뜩이나 추운 공장에서도 가장 추운 곳이었다. 손발이 꽁꽁 얼어 나중엔 발가락이 아플 정도였다.


 그로부터 3주 뒤, 눈을 감고도 5분도 안 걸리게 복장 세팅을 할 수 있었고, 라인 입구로 들어가기 전 우리의 눈 맞춤의 의미는 180도 변했다. 방금 출근만 했을 뿐인데, 집에 가고 싶다가 눈에 쓰여있었다.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호주라고 달라질 리 없다. 직장인의 굴레. 


 또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100% 공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 저울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연어 슬라이스를 탁 들어 올리면 손끝의 감각으로 무게를 어림잡을 수 있었다. 무게 맞추기 올림픽이 있다면 우린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 척하면 척이었다. 슈퍼바이저들이 1분에 몇 개를 완성했는지 카운트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빠르다고,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완벽 적응 후에는 오히려 커팅 기계에서 쏟아지는 연어를 보며 '와라, 연어여'하고 여유까지 부릴 수 있었고, 심지어 옆 사람의 연어 몫까지 도와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무섭다. 우리의 적응력


 2시간 일하고 15분간 쉬는 시간을 주었는데, 이때 커피와 싸온 간식을 먹었다. 커피와 우유는 회사에서 제공해 주었다. 인스턴트커피 1스푼, 설탕 3스푼을 뜨거운 물을 섞어 에스프레소처럼 녹이고 거기에 우유를 따라주면 커피우유 짜란 완성! 추운 몸을 달달한 커피우유 한 잔에 녹이고 초코바 한 입을 베어 물면, 이것이 소확행이었다. 2시간 동안에 있었던 짧은 에피소드를 서로에게 말하며 잠깐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연어 커팅 기계 청소합시다!" 이 말은 곧 이제 퇴근이라는 뜻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일사불란하게 커팅 기계 전원을 끈다. 다 같은 마음이다. 청소하는 솔로 기계 안쪽에 끼어있는 연어 조각을 제거한 뒤 청소용 스프레이를 뿌리고 거즈로 연어의 기름을 닦아 낸다. 청소를 하면서 기계 날에 찔리고 경미하게 다치기도 하였지만 퇴근이 주는 행복이 훨씬 더 컸던 걸까? 전혀 개의치 않았다. 회사를 나올 땐, 온몸에 훈제 연어 향을 뿜뿜 풍기며 신나는 발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호주 휴온빌_일하러 가는 길
호주 휴온빌_쌍무기재는 너무 흔한 일




삐래) 

 나의 연어 공장 적응기에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 레슬리와 앤드류다.


 호주에서 구한 첫 번째 일이고 호주인뿐만 아니라 다른 국적의 ‘동료’가 생기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잠을 설쳤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내가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규칙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눈앞이 깜깜했다. 영어 때문에.


 공장 안 시끄러운 기계 소리 속에서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건 로또 여섯 자리가 모두 맞는 일과 같았다. 레슬리는 슈퍼바이저로써, 생산량이 목표치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녀의 입장에서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어리바리하게 허둥대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는가. 본인이 당장 느끼는 짜증스러움을 아주 가감 없이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슈퍼바이저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공장에서 생산율이 곧 그녀의 업무 성과이기 때문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를 했다가도 순두부 멘탈 소유자인 나로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같이 가슴에 콕 박혀 괴로웠다가도 괜히 나한테만 뭐라고 하는 거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자격지심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찌나 서럽던지. ‘나 외국인인데! 좀! 한 번 더 설명해 주면 안 되냐!’ 퇴근 후 나의 일과 중 하나는 레슬리의 험담였다.


 공장 일이 익숙해지고 나서는 웬만 한 건 다 눈치코치로 이해하고 일도 빠릿빠릿하게 할 수 있게 되자, 그녀의 다그침이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정확히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마음의 상처도 받지 않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그녀의 채찍은 워홀러뿐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여 차별하지 않는 공평한 사람이라는 사실과 새내기들이 일에 더 빨리 익숙해질 수 있게 하는 좋은 원동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그녀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매일 그녀에 대한 험담을 하던 나의 찌질한 모습이 그려지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역시 사람은 끝까지 겪어봐야 한다니깐.


 여느 때와 같이 기계적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쳤다. 고개를 돌리니 레슬리였다. 순간적으로 ‘왜지? 왜 쳤을까? 내가 또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에 철렁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는 따뜻한 말 ‘Well done! (잘했어요)’과 살짝궁 쳐주는 격려의 박수. 초등학생 때 일기장에 받은 ‘참 잘했어요’ 같은 도장. 아싸! 드디어 칭찬받았다!’


 첫 출근 날, 현장에 서 있는 나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 하고 몸과 머리 모두 '얼음' 상태였는데, 장난스러운 농담으로 '땡' 하고 긴장을 풀어줬던 앤드류는 지금까지도 너무 고마운 사람이다. 천진난만한 얼굴, 가죽 재킷에 멋진 오토바이를 타는 호기심 많은 수다쟁이 할아버지인데, 우리는 그를 앤드레곤이라 불렀다. 나와 앤드류는 쿵작이 잘 맞았다. 앤드루와 같은 라인에서 일을 하는 날이면, "오~ 메리(나의 영어 이름)~ 코리안 걸~ 치키 걸~" 하며 먼저 알은체를 해주었다. 초딩도 안 할 것 같은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어깨를 손으로 툭 치고 밑으로 숨거나 슈퍼바이저 몰래 불량 연어 조각을 서로에게 던지곤 했다. 그는 미생의 변요한처럼 슈퍼바이저 뒤에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웃게 해 주곤 했다. 


 그의 개구쟁이 같은 장난은 무미건조한 일터의 소소한 활력소가 되었다. 특히 그에게 고마운 점은 처음 해보는 일과 영어를 써야 하는 환경에 적응 못 할 때 나에게 ‘천천히 해도 괜찮아, 너는 처음이니까 내가 도와줄게’라는 말 한마디였다. 엄청난 위로였다. 그는 나뿐만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친구들을 지나치지 않고 손수 도와주고, 다정한 행동을 하고,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살뜰한 동료였다.


 몇몇의 친구들은 떠나는 날이 되면 친한 동료들끼리 파티를 열고는 했는데, 나는 특별히 친한 사람이 없어서 조용히 인사하고 떠나려고 했다. 마지막 날, 앤드류가 조용히 나에게 저녁식사를 제안했다. 그는 퇴근 후에는 쌩 하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가고, 동료들과 같이 하는 모임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 파격적인 제안을 하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대답은 당연히 오브 콜스. 


 저녁 식사시간 내내 대화는 끊기지 않았다. 앤드류는 나에게 호주에 온 계기, 워킹 홀리데이가 끝난 뒤의 계획 등등 궁금한 질문을 마구 쏟아 냈다. 장난기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수다쟁이 일 줄이야. 즐거운 대화의 장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꼭 편지하라며 주소를 적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따뜻한 말, “항상 너에게 좋을 일만 있길 기도할게” 그의 진심이 느껴져 감동했다. 앤드류를 통해 나이는 중요하지 않고, 마음만 맞는다면 친구가 된다는 것을 배웠다. 




이뽈)

나는 소냐라는 무표정이 매우 무서운 호주 아주머니를 버디로 만났다. 처음 해보는 공장일이었지만 단순노동이다 보니 일이 금방 익숙해졌다. 새내기지만 여유가 생겼고 소냐는 나의 빠른 적응력에 아주 흡족해했다. 우린 업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갔다. 우선 그녀의 직업관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일은 적당히 하는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삶을 이미 실현하고 있는 그녀. 희대의 개구쟁이로도 설명이 부족한 그녀는 종종 날 놀라게 하였는데 예를 들면 본인의 친구 딸인 메건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것. 물론 메건도 맞받아친다 똑같이. 둘은 장난이지만 이를 지켜보는 나는 당황스럽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란 나는 문화충격이었다. 호주에서는 이게 가능한 건가?


 그녀는 알고 보니 굉장한 인싸였고 나는 그녀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그래서 일 시작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되었다. 이곳에 초대된 워홀러는 나뿐이었다. 나는 친구와 언니를 데려가도 되냐고 허락을 구했더니 오브 콜스! 선물 교환이 있을 거라고 해서 우린 선물을 준비해 갔다. 작업복만 입고 만나다가 예쁘게 잘 차려입고 만나는 동료들의 모습은 새로웠고 우린 크리스마스이브 날이고 한 잔의 알코올에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급속도로 친해졌다. 게다가 나의 버디는 나에게 노래를 시켰고 레드카펫 깔리면 올라가는 체질의 나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울면 안 돼)’를 불렀다. 노래 하나 불렀을 뿐인데 다음날 나의 버디는 동네방네 우리 ‘보라 (이뽈의 영어 이름)’가 빼지 않고 잘 논다고 소문을 내었고 타고난 아싸는 의도치 않게 인싸가 되었다. 그 후로 동료들과 친해지는 건 이지 피지 레몬 스퀴지.  


 소냐의 절친 캐서린은 엄마처럼 잘 챙겨주다가 친구처럼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정색을 하고 다가와서 슈퍼바이저가 찾는다고 하길래 공장 밖을 나가보면 아무도 없다. 다음번에는 안 속는다고 거짓말 치지 말라니깐 나의 버디가 특유의 무표정으로 케서린을 거든다. 토요일에 일하는 것 때문에 부르는 거라고 그럴듯한 이유를 댄다. 그렇게 또 속고 일터로 돌아오면 둘은 깔깔깔 배를 잡고 웃고 있다. 그 뒤로 나도 그녀들한테 똑같이 되갚아줬으니 1:1. 사실 내가 더 많이 당하기는 했지만. 서로 주고받는 장난과 대화를 통해 동료에서 친구가 되어갔다. 


 어느 저녁에 전화 한 통이 왔다. ‘보라, 술 마시러 가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네 친구한테 전화받은 기분. ‘그치, 나이가 같아야 친구인가 마음이 맞아야 친구지.’ 그렇게 그녀를 따라 1차는 그녀의 딸 집에서 한잔을 하고 그다음은 아들 네로 가서 한잔을 했다. 패밀리 펍 투어는 나름 신선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국인 친구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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