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순 Oct 30. 2020

‘서로 부담을 주지 않는’ 글쓰기의 시작

페퍼로니 피자가 다했다

[언제 와]


순의 문자를 받자마자 가기 귀찮아졌다. 희한하게 오라고 하면 가기가 싫을 때가 있다. 

[일이 좀 생겼는데 잠깐만]

[다음에 보자 ㅋㅋㅋ]


다음에 보자는 이 말에 다시 청개구리처럼 가고 싶어 진다.

[저녁 먹고 간다 ㅋㅋㅋ 꼭 와라 ㅋㅋㅋ]


순과 만나기로 한 건데 장소는 J의 집이다. 

[출발]

[J가 많이 지치대 담에 보자 ㅋㅋㅋ]


J에게 바로 연락했다. 

[순이 너 피곤하다고 담에 보자던데?]

[내가? 나 피곤하다고 한 적이 없는데 ㅋㅋㅋ 순이 요즘 거짓말을 자주 하네? ㅋㅋㅋㅋㅋ]

[갈게 그럼 ㅋㅋㅋㅋㅋ]


순에게 J와의 카톡을 캡처해 응징을 가했다.

[장난하냐?]

[걸렸네.. ㅋㅋㅋㅋㅋㅋ 내가 지쳐 ㅠ 넌 내일 쉬는 날이잖아 난 일 간단 말이야]

[나도 일찍 일어나서 상쾌하게 시작할 거야ㅋㅋㅋ 간다ㅋㅋ]


그리고는 J의 집 앞 피자집에 전화를 걸었다. 제일 큰 사이즈의 페퍼로니 피자를 포장했다. 


J는 은행원이다. 연이은 야근과 회식으로 피곤할 법도 한데 언제나 반가운 목소리로 맞아준다. 순이 들어오고 술자리가 시작된다. 피자가 유난히 맛있다. 사실 이유는 없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없는 소리를 이어가다 J가 내일 출근을 핑계로 도저히 안 되겠다며 먼저 잠자리에 든다. 그때 티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슬쩍 열어보고는 웃었다. “야 J는 무슨 이런 책을 읽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에세이였다. 이런 나에게 순은 구박을 준다. “사람들은 그런 책이 필요하다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 경험을 공유해주는 책”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 술에 취한 순은 이따금씩 흘러내리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우리가 퇴사를 하고 어? 이렇게 알바를 하고 있는 삶 어? 이게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란 말이야. 퇴사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많냐? 열심히 노력해서 대기업 들어갔더니, 그 안에서 자존감 다 무너지고 일에 치어, 회식에 치이다가 자기를 위한 삶은 제쳐 놓고 살아야만 하는 그런 어? 잠깐만, 담배 하나 태우고. 내려갔다 오자” 술에 취한 순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별말 없이 따라나섰다.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고 나온 순은 말을 이어갔다. 전혀 다른 곳에서부터. “그래서 말이야, 우리가 한 번 써보자. 회사 다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퇴사했고, 그만큼 많은 고민을 해 왔고 하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이랑 공유해보자고. 어?” 


“그래” 답을 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집에 무사히 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죽겠다 ㅋㅋㅋ] 

[다음부터 막판 달리기 금지다 ㅋㅋㅋㅋㅋ]

[11시에 피자 싸들고 온 놈이 누군데 ㅋㅋㅋㅋ 야 우리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1주일에 한번 정도 만나서 글 써보자]

[ㅇㅋㅋㅋㅋㅋㅋㅋㅋ]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하자던 녀석은 한 시간 후에 목표부터 진행방법, 일시, 장소까지, 간만에 회사 보고서를 만드나 싶을 정도의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는 버스에서 졸다가 첫 미팅에 지각을 하며 내게 경고를 먹었다. 그렇게 ‘서로 부담을 주지 않는' 글쓰기의 여정이 시작됐다.

작가의 이전글 술 먹다가 취해서 시작된 에세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