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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Nov 01. 2020

시도하는 인간; 호모 익스피리엔티아

이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 맑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까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선선하다고 느껴졌던 그곳의 1월이 지나고 2월에 접어들자 우리나라의 초여름과 같은 날씨가 다가왔고 3월이 되자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것 같았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기온만큼 나의 마음도 초조해져 가고 있었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서 이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 항공사에 지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한창 무더위가 심해지던 4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나는 1년 6개월 여의 미국 생활을 정리했다. 그동안 함께해왔던 수많은 물건들을 주변에 나눠주고 인터넷을 통해 중고로 팔고도 남은 짐을 한가득 챙긴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올라탄 비행기의 좌석에서는 고향의 물이 날 반겨주고 있었다. 제주의 물맛은 플로리다의 그것과는 달랐다. 어릴 적 콜라를 처음 접했을 때의 청량감이 입안 가득 전해졌다. 기내에서 제공된 비빔밥을 숨도 안 쉬고 해치웠다. 하늘에서 먹는 비빔밥 맛은 전주에서 맛봤던 그 맛보다 결코 앞설 수 없었으나 내 미각은 그런 착각을 하기에 충분히 지쳐있었다. 한 그릇 더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참아냈다. 한식당이 차로 1시간 거리에 있었던 플로리다에서는 맛보기 어려웠던 탓이었겠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애틀랜타의 우중충한 구름을 뚫고 올라가 맑은 하늘을 가로질렀다. 한국에 가서도 나의 눈앞에 놓인 이 구름을 뚫고 지나가면 이렇게 맑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게 돌아오게 된 한국. 돌아오고 나서도 할 일은 많았다. 한국 조종면허를 따야 했고, 여러 가지 서류 작업들을 해나가야 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항공사 지원만을 기다리던 그때, 코로나가 터졌다. 


사스나 메르스처럼 지나갈 것 같던 녀석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형태로 우리를 괴롭혔다. 전 세계가 패닉에 빠졌고 아주 사소하던 일상이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됐다.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으나, 내 꿈에는 제동이 걸렸다. 하늘길은 모두 막혔고 파산하는 항공사들이 생겼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 문제였다.


막다른 벽을 마주한 것 같았다. 이것보다 더욱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전쟁보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방향을 찾아야 했다. 처음 서너 달은 그래도 멈추지 말고 준비해야지 하며 공부를 꾸준히 해나갔으나 곧 끝날 것 같지 않던 상황에, 마냥 맘 놓고 공부만 할 수도 없는 상황에 고민이 깊어졌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해 줬고 성적도 올랐다. 물건을 팔았다. 물건이 팔릴까 싶은 와중에 첫 주문이 들어왔다. 언택트 시대에 맞게 인터넷으로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친구와 가게를 열었다. 아직 잘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역시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벽을 뚫는 다기 보다 돌아가려 애쓰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시도하고 결과를 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KBS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에서는 현대의 인간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로 정의했지만, 나는 끊임없이 시도하는 인간 호모 익스리엔티아(Homo Experientia)가 된 기분이다(내가 만들어낸 말이니 찾아보지 마시길!).


다양한 시도와 경험의 지속. 과연 나의 퇴사는, 나의 시도는, 나의 경험은 시간이 지나고 어떤 모습으로 쌓여있을까. 간만에 오른 제주행 비행기에서 본 구름 위 청량한 하늘색처럼, 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구름을 벗어나면 나의 수많은 시도들도 저 맑은 하늘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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