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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Dec 29. 2020

세탁소 아주머니의 축하인사는 날 눈물짓게 했다

얼마나 반복하게 될지 모르는 출근의 시작

나의 대학생활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한 대기업 계열사에서 6개월에 걸친 인턴을 하며 학교생활을 병행했다. 매일 회사로 출근을 했지만, 월요일과 금요일 오전 근무 후에 퇴근을 하고 막 학기 수업 하나를 들으러 학교로 향했다.     


“팀장님, 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어, 봉순 씨, 다녀오긴 뭘 다녀와. 얼른 가세요. 내일 봐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닌, 하지만 회의 때만큼은 누구보다 카리스마 넘치던 팀장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나의 학업 병행을 응원해줬다. 


“과장님,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또 가는 거야? 너무 부럽다~”


앙칼진 목소리로 모든 업무를 척척 해내던 내 사수는 부러움이 담긴, 하지만 은근한 압박감을 주는 표정으로 나의 이른 퇴근을 받아주었다. 


일주일에 단 이틀, 그것도 오후에만 학교에 갔는데, 사무실에서 앞만 보고 일하다 사방이 뻥 뚫린 캠퍼스에 갔더니 왜 학교 다닐 때가 좋다고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동안 눈에 들어오지 않던 우리 학교의 구석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학교에 박물관이 있었어?”

“넌 여태 그것도 몰랐어? 여기 전시회도 가끔 해”


친구 녀석은 조그마한 턱 끝으로 박물관을 가리키며 나의 무지에 무심하게 답했다. 나는 학교 안에 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타 단과대 안에 작은 도서관이 여럿 있다는 것도 몰랐다. 4년 내내 뭘 하고 다녔길래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닌 학교도 잘 모르나 싶은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 막 학기에 주어지는 최대의 미션, 취직 역시 준비해야 했다. 매일 취업정보 사이트에 접속해 공채 일정을 확인하고 자소서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최악의 경제와 최악의 취업난을 이야기했다. 매년 최악의 경신이 이루어지듯이 그때도, 그때가 최악이었다. 웬만한 기업의 취업경쟁률은 1000대 1을 넘겼고 한 번의 해외인턴과 또 한 번의 국내 인턴십을 마쳤지만 취업시장에 내던져진 나의 자소서는 서류 단계도 쉽게 통과하지 못했다. 어렵사리 서류통과를 이뤄낸 곳에서는 번번이 최종에서 고배를 마셨다. 다른 많은 친구들이 그랬듯이, 내가 과연 취업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이 깊어만 가던 시기였다. 


“야 서울에 이렇게 회사가 많은데 내 책상은 없네”

“아파트는 어떻고.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내 아파트는 없어요”


학교에서 같이 자소서를 쓰고 나온 친구 W가 혀를 차며 내 답답한 질문에 더 답답한 목소리로 답했다. W의 자소서 역시 수많은 회사의 문턱을 들락날락거리고 있던 차였다. 학교가 꽤나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단과대 앞 벤치에 앉으면 서울시내가 내려다보였다. 그 수많은 사무실, 수많은 아파트, 그 수많은 불빛들 사이에 내 자리는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맥주 한잔 할래?”

학교 후문으로 같이 내려가던 W가 가방을 고쳐 매며 넌지시 물었다. 


“술이 안 넘어가겠다. 가서 회사 정보나 더 찾아보자”

평소 같았으면 거절하지 않았을 내가, 아니 매번 술자리를 먼저 제안하던 내가 친구의 제안을 거절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취업준비기간은 늘어만 갔다. 결국 취직하지 못한 채로 졸업식을 맞이했고, 즐거울 줄만 알았던 나의 졸업식은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채로 진행됐다. 


6개월에 걸친 인턴도 끝이 나고, 학교도 나가지 않다 보니 취업준비에 더 열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많아진 시간만큼 내 생활은 나태해져 갔고, 쓸데없는 생각만 커져 갔다. 매일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읽고, 자소서를 다듬는 과정이 반복되는 만큼 내 자존감도 매일 끝을 알 수 없는 어디론가 내려가고 있었다. 수 많은 시도 끝에 다행스럽게도 몇몇 대기업의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깔끔한 인상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매번 정장을 집 앞 허름한 세탁소에 맡겼다. 


“사장님, 양복 찾으러 왔어요”

“아이고 학생, 아직 안됐는데. 내일 아침에 와야 해”


면접에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윌 스미스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페인트를 칠하던 복장 그대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던 면접에서도 누구보다 당당했다. 내가 면접에 셔츠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온 사람을 뽑는다면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는 CEO의 질문에 “엄청나게 멋진 바지를 입고 왔었나 보네요” 라는 그의 답변은 면접관 모두를 웃음짓게 했다.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하지만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


“네? 아… 저 내일 면접인데…”

“어떡하지? 시간이 걸리는데… 아니면 내일 아침에 여기서 바로 갈아입고 가”

“아… 네… 그럴게요 그럼”


아주머니가 날짜를 착각하신 모양이다. 내일도 안돼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면접날 아침 나는 곧장 세탁소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려 하는데 매번 집에서만 해와서 인지, 아니면 마음이 급해져서 인지 매듭은 모양을 잡지 못하고 꼬이기만 했다. 


“이리 줘봐 학생”

세탁소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넥타이 모양을 잡아 나의 목에 둘러주시며 말씀하셨다. 


“감사해요. 이따 옷 가지러 올게요” 

“면접 잘 보고 와.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말고”


울컥했다. 아주머니의 따스한 행동과 말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으로부터의 응원이었다. 아주머니의 응원에 힘을 받아서였을까. 얼마 뒤 한 회사로부터 합격통보를 받은 나는 아주머니를 찾아갔다. 


“사장님, 정장 맡기려고요. 이번엔 출근용이에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어머 학생! 취직했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잘될 거라 했잖아. 고생 많았네!”


회사로부터 정직원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보인 윌 스미스의 눈물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회사로 부터의 합격 이메일은 그러지 못했지만 아주머니의 축하인사는 날 눈물짓게 했다. 사장님 덕택이라는 형식적인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지만, 진심이었다. 사장님 덕택이었다. 그렇게 나도 누군가를 응원해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얼마나 반복하게 될지 모르는 출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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