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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Dec 24. 2020

을지로입구역에서 명동역까지 두 번을 갈아탔다고요?

촌놈에게 지하철이란 그렇습니다



아...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서있습니다. 


다시 돌아오라고 외쳐도 돌아오지 않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실의에 빠진 나는 묻습니다.


그와의 만남에 최선을 다했는가, 

반성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제목 ‘지하철’. 


대학교 1학년 문예창작 시간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각한 친구 녀석은 이 시를 발표하고 박수를 받았다. 내용이 정확하진 않다. 아니, 무척이나 수준 높았던 원본과는 거리가 아주 먼 복원일 가능성이 크다. 기억을 더듬었으나 너무 오래됐다. 하지만 무척이나 신선했다. 자신의 지각을 시로 승화시킨 녀석의 시도가. 


시간이 흘러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그 친구의 깊이 있으면서도 해학적인 시를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출근시간, 멀어져 가는 지하철의 뒷모습을 바라보게 될 때마다 그 친구의 시가 어김없이 떠올랐다. 


회사까지는 도어 투 도어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1시간이 넘는 서울 직장인 평균 출퇴근 시간보다 훨씬 적은 시간이었지만, 학교 바로 앞에 살던 중학교 시절에도 그랬듯이 가깝다고 먼저 출근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용인에서 2시간 걸려 출근하던 동기 녀석이 가장 일찍 출근했다. 


출근은 고통스러웠다. 언제부터 생긴 룰인지, 영업부서만큼은 회사에 공표된 출근시간보다 30분 빨리 와야 했다. 새벽녘까지 이어진 술자리 후에도 출근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기상과 함께 샤워 후 내달리기를 반복했다. 요즘 브이로그에 등장하는 아침식사 따위는 사치 그 자체였다(물론 그분들은 더 바쁜 상황에서도 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즐기는 것이리라).


역에 다다르면 엄청난 인파의 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끼이고 끼여 지하철에 오르고 나면 괜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두 손을 위로 올린 채 앞만 보고 서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신도림역까지만 가면 자리가 날 수도 있기에, 그때까지는 이어폰 꼽기 등을 포함한 모든 행위를 참고 있었다. 


15년 전, 서울에 올라왔을 때 경험한 지하철은 그야말로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엄청나게 깊은 지하도로 내려가 표를 한 장 사고(그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철은 5호선이었고,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창구에 줄을 서서 표를 구매하는 시스템이 아직 남아있을 시절이었다) 선로 앞에 서있으면 기차처럼 생긴 차량이 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뛰어다녔다. 


사실 내가 생각한 지하철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서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들게 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나온 지하철은 재밌고 로맨틱 한 장소 그 자체였다. 술에 취한 전지현이 구토 후 일면식도 없는 차태현에 ‘자기야’를 외치며 처음 만나게 된 그곳, 지나가는 사람들의 스텝에 선 밟기 게임을 하며 서로의 이마와 뺨을 내어주던 그곳. 연인을 떠나보낸 차태현이 슬픔에 젖어 선로로 떨어질 것 마냥 플랫폼 끝자락에 서있던 그때, 상황실을 찾은 전지현이 방송으로 차태현을 불러대던 그런 곳.  


영화 <엽기적인 그녀>


내가 그리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인파에 휩쓸려 뛰어가 지하철에 올라타면 서울 구석구석을 누빌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때, 버스는 너무 어려워 보여 시도할 생각을 못했다. 때문에 서울 밖이 어떻게 생긴지는 잘 몰랐다. 


친구들과 을지로 입구에서 백화점 구경을 하고 명동 거리 구경을 하자며 명동역을 갈 때면 지하철을 두 번을 갈아탔다. 2호선에서 1호선으로, 다시 1호선에서 4호선으로. 걸어가면 10분 거리인 그곳을. 촌놈들 사이에선 이런 이야기가 흔했다. 


지하철 덕후 비슷한 활동을 하던 친구도 있었다. 인천에서 온 녀석은 엄청난 지하철 사랑을 과시했다. 서울과 인천의 역명을 다 외우고 다녔으며, 개찰구 안에 화장실이 있는 역은 어디인지, 다음 역에서 내리는 문이 어느 편인지 노선도를 보지 않고도 다 알고 있었다. 이미 한번 놀란 내게 친구 녀석은 지하철 매니아 중에는 차량이 들어오는 소리만 듣고도 몇 호선인지 아는 사람들도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튼, 나는 퇴사와 함께 더 이상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게 됐다. 출퇴근도 하지 않았지만, 미국 중에서도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으로 건너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국땅에서 지하철이 그리워질 때쯤, 첫 차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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