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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Jan 07. 2021

치열했던 시즌, 취업

 얼마 전, 대기업 공채가 없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공개채용 제도로는 직무 적합성이 높은 신규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내가 겪었던 취업시즌이 떠올랐다. 공채를 뚫기 위한 관문들! 학교성적, 토익, 토스, 대외활동, 어학연수, 자기소개서, 인적성 검사, 1차면접, 2차면접, 임원면접까지. 하나를 끝내면 다음 하나를 끝내기 위해 목을 매던 시기였다.


  집에서 심심할 때는 추억팔이가 재밌는 법이다. 가 썼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어보고 싶어 졌다. 컴퓨터를 켜고 이력관리 폴더를 클릭했다. 그곳엔 약 40개의 자기소개서가 있었다. 문서의 최종 업데이트 날짜는 2013년 11월. 그 이후로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파일이었다.


 취업시즌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을까. 첫 줄을 읽는 순간, 손과 팔꿈치 사이에 소름이 돋았다. 밤을 새우면서 3주 동안 40개의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던 오싹함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자소서의 순기능이 있다면, 처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반강제로 생각해봐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장단점, 성격, 도전했던 경험들, 성장과정까지 에세이를 쓰듯이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때만큼 어느 한 곳에 모든 긴장과 간절함을 쏟았던 적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은 자소서에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었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쓰시오’ -> ‘저는 온갖 어려움을 딛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입사 동기는 무엇인가요’ -> ‘제발, 제가 백수 생활만은 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절정은 ‘입사 후 포부’라는 질문이었는데 ‘세계를 무대로 발로 뛰겠다’는 워딩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결의가 묻어 있었다. 그때는 진심이었다. 입사 후에는 세계를 무대로 발로 뛰겠다고 인도네시아로 파견 간 지 2개월 만에 퇴사했지만 말이다.


 40개로 시작했던 지원서는 인적성과 면접이라는 관문을 거치면서 단 3개만 남았다. 최종 합격통보를 기다리며, '내가 이 생활을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다른 길이 없으니 다시 해야만 했다. 주변에서 친구들의 합격 소식들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망연자실이란 사자성어를 고스란히 느껴야만 했다.


 2013년 크리스마스이브! 먼저 합격한 친구가 술 한잔 하자며 전화가 왔다.


“야, 아직 합격 발표 끝난 게 아니니까. 기다려보자. 일단 나와, 집에 있으면 우울해진다”

“아니야, 나는 집에서 중국음식이나 시켜 먹을란다”


 도무지 나갈 힘이 나지 않아서 집에서 탕수육을 먹으면서 예능을 볼 생각이었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핸드폰 번호도 아니고 02)로 시작하는 일반 전화였다. ‘설마? 드디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온 몸이 정지상태가 되었다. 인사팀이 산타클로스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 빨리 전화를 줄 것이지, 왜 크리스마스이브란 말인가. 피를 말릴 대로 말리다가 이제야 전화 와서 이 한 마디를 전해 주었다.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가장 먼저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당연히,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셨다. 상기된 목소리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진짜 행복하다. 오늘은 파티를 해야겠네. 엄마랑 아빠는 노래방 가야겠다”

“나 보다 더 신나셨네!

“신나지 그럼! 고생했다”

 그 정도로 기뻐하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고생했다’라는 말이 나에게 큰 편안함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치열하게 들어갔던 회사였다. 가끔씩 어머니는 종종 '잘 지내니?' 고 물어보다. 전화기 너머로 보낸 '잘 지내요'라는 내 대답은 반쯤 거짓이었다. 퇴사를 한 지금은 몇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질서 정연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작은 작업실에서 개인 시간을 갖는 여유도 있다. 다시 한번 물어보신다면 이제는 답할 수 있다. '저 정말 잘 지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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