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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Jan 05. 2021

"선배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신입은 다 그런 건가요?

앞이 보이지 않던 취업난을 뚫고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아마도 더 이상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서 비롯됐을 그 행복감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곧 나만 뭔가를 모르는 것 같은 느낌이 나만 혼자인 것 같은 느낌으로 이어졌고, 윗사람에게 혼이라도 나는 날에는 다음날 회사 가기가 두려워졌다. 


분명히 한국말인데도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말은 영어보다 더 안 들렸고, 나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네?”라는 반문의 연속이 나의 자존감을 깊이를 알 수 없는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얼마 가지 않아 파블로프의 개처럼 전화벨 소리만 울리면 나의 기립근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곧추세워졌다. 때문에 퇴근을 하고 나면 허리에서부터 등을 타고 목까지 이어지는 근육이 항상 뭉쳐있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많이 보고 경험해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신입사원 교육 때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스스로가 한없이 미약한 존재임을 깨닫던 때였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가 메릴 스트립의 사무실에 처음 발을 들이고 느꼈을 감정 이리라.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스탠포드 법대도 마다하고 기자가 되겠다던 앤 해서웨이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던 패션잡지사의 비서로 취직했지만, 보스인 메릴 스트립의 지시가 늘어갈 때마다 작아져갔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돌체 앤 가바나의 철자를 되물을 때 상대방은 친절한 답변 대신 그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경험했던 그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그녀가 흘렸던 눈물만큼이나 간절하게 빨리 녹아들고 싶었다. 모든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이런 걸 물어봐도 될까 싶은 것들을 여러 선배들을 돌아가며 물어봤다. 


“선배님, 여쭤볼 게 있습니다. 시스템상에 주문입력을 할 때 이 항목은…”

“야, 넌 지금까지 뭘 했길래 아직도 이런 걸 물어보냐?”


그렇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채찍 같은 답변이 돌아왔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묻지 않고 실행에 옮겼을 때는 이 작은 바람이 걷잡을 수 없는 허리케인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다. 


“넌 무슨 생각으로 일을 이딴 식으로 처리한 거야? 모르면 물어보고 좀 해”

“물어보지도 않고 네 맘대로 해서 잘못되면 책임질 거야?”


질문을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었다. 군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욕먹을 때 먹더라도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었기에, 나의 질문은 계속됐다. 가끔은 본사 선배들보다 더 거친 공장 직원들과의 통화에서는 질문을 주저하기도 했다. 월 말일날 내 고객사의 물건만 출하해 주지 않겠다던 공장 선배의 으름장에 점심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하는 업무이고, 내가 몰라서 놓치는 부분이 생겼을 때는 보고의 과정에서 무지와 무능이 탄로 나기 십상이기에 물러날 수 없었다. 나의 전쟁 같던 매일의 일상도 저 여유 넘치는 선배들의 그것과 같아지는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뭐든지 배우는데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던 나는 회사일도 그렇게 남들보다 느리게 배워나갔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선배들이 나를 인정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지금 돌아보니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만겁과 같았던 그때의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내게 주어진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팀원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맞으며 행사장에 들어가는 메릴 스트립을 따라가지 않고 뒤돌아 걷던 파리에서의 앤 해서웨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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