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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Dec 25. 2021

놀이공원의 처음이 아빠가 아닌 그 누군가가 된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활동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전공과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대학시절 무엇을 배웠는지 돌이켜 본다면 나의 부채 리스트에 남아있는 등록금만큼의 크기는 아님이 분명하다. 다니는 내내 나름대로 많은 대외활동과 준수한 학점을 위해 노력 해왔음에도 그저 수많은 대학생들의 이력서 속 크게 특출 날 것 없는 글자 몇 개로 추려지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서에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의 기억을 채우고 있기에 나의 대학생활은 나름대로 풍요로웠다. 그렇게 이력서에 쓸 수 없으나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강의실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사회봉사활동 수업에서 나왔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쉽게 학점을 딸 수 있는 교양수업을 수소문하여 봉사활동 몇 번으로 시험과 과제를 갈음할 수 있는, 아주 만만해 보이는 수업을 찾아냈다. 그렇게 수강하게 된 사회봉사활동 수업의 교수님은 콧등 위에 얹은 안경이 자꾸만 미끄러지는, 아주 깡마르고 새하얀 피부톤의 얼굴을 지닌 분이었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자꾸만 깨지는 통에 내가 앉은 뒷자리까지 전해지는 내용은 만원 지하철 안에서 자꾸만 끊기는 블루투스 이어폰 같았으나, 우연히 앞자리에 자리하게 된 날 듣게 된 그분의 가르침은 대학생활을 통틀어 가장 깊은 한마디였다. 


  “여러분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건 이기적인 활동을 하는 거예요. 가기 전에는 가기 싫고, 갈 때는 귀찮고, 시간 내는 것도 아깝지만 다녀오면 가장 큰 만족을 얻는 건 여러분들이에요. 도움을 받는 분들은 여러분들 다녀가면 감사해하기도 하지만 가고 나서는 더 외로워하기도 해요. 그래서 지속성이 없는 봉사활동은 도움받는 분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어요. 근데 여러분은 다녀오면 그 뿌듯함이 아주 오래 가요. 평생 가기도 하고. 그 짧은 몇 시간 가서 다른 사람 도와줬다는 기억이. 그래서 봉사활동은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활동이에요. 남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 남는 건 나에게 가장 많이 남으니까요” 


  학창 시절 지속된 정책의 영향으로 나의 의지와 큰 관계없이 그저 그런 봉사활동을 해오던 나를 반성케 하는 말이었다. 시험도 없는 수업에다가 봉사활동에 대해 공부할 것이 무엇이 있겠나 싶었던 수업시간이 그날 이후 달라지게 됐다.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 말씀을 귀담아 들었고 방학 동안 할 봉사활동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겨울 방학을 맞아 초등학교에 교육봉사를 하러 갔다. 당시 내가 살던 곳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였는데 가보니 모든 건물이 높아만 보이고 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잘 사는 것 만 같던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나 싶은 곳이었다. 처음 만난 나를 보고서도 해맑게 웃는 아이들은 대부분 한부모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와서 수업을 듣고 점심까지 먹고는 집에 가는 시간표였는데, 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고 꼭 운동장에 나가 놀았다. 운동장까지 꽁꽁 얼어붙은 그 추운 겨울에도. 


  집에 가더라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던 아이들은 집에 가는 걸 싫어했다. 그렇게 봉사활동 시간이 끝난 후에 함께 축구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던 아이들과의 마지막 주간에 서울랜드 소풍이 잡혀있었다. 놀이공원에 가 들뜬 모습도 잠시, 평소에 다른 아이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남자아이는 너무 무서워서 귀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다며 소리를 질렀고, 한 여자아이는 바이킹을 타다 울음을 터트렸다. 그야말로 아이들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던 나에게 계속해서 “선생님 이거 탈 거예요?”를 물어보는 한 친구가 있었다. 선생님은 아무거나 타도 된다며 타고 싶은 걸 마음껏 타라는 대답에도 질문을 멈추지 않던 아이는 종일 나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었다. 행여라도 잃어버리는 아이들이 있을까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에 옆에 가만히 붙어있는 친구들은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소풍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진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놀이공원에서의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겨울방학 동안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마지막 시간. 내 옆에 끊임없이 붙어있던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삐뚤삐뚤 써 내려간 편지에는 아빠가 한 번도 데려가 주지 않았는데 선생님 덕분에 놀이동산에 처음으로 가서도 재밌게 놀 수 있었다며, 내가 쓰고 다니던 비니와 똑같은 비니를 쓰고 같이 놀이공원에 함께 놀러 간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놀이공원에 아들을 한 번도 데려가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과 그동안 서운했을 아들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져, 또 이 어린아이가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게 느껴지는 편지에 코끝이 찡했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겨울방학이 지나갔다. 교수님의 말마따나 그 뿌듯함이, 따뜻한 기억이 코 끝에 차가운 공기가 닿아 겨울의 냄새를 풍기는 계절이 오면, 아주 가끔 놀이공원에 가면 생각나곤 한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크리스마스, 또 한 번 이번 겨울을 어떻게 이기적으로 보낼지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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