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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순 Oct 28. 2022

처음으로 샀던 CD 앨범

추억은 호수의 평온한 물결처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입장했다. 나는 2층 앞쪽 열에 자리를 잡았다. 코로나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다. 2층 난간에는 무대를 보며 들뜬 아이들과 조용히 시키려는 부모님이 있었고 기념일을 축하하는 듯 꽃을 들고 있는 연인들도 있었다. 한쪽에는 홀로 객석에 앉아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는 남자도 있었다. 곧 공연이 시작한다는 준비 종이 울렸다. 관객들은 자리를 찾아갔고 서서히 암전 되었다. 이어서, 첫 음악이 시작됐다.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을 처음 들었던 건 1998년이었다.


"노래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네가 좋아할 만한 곡인 거 같아. 들어볼래?"  


'Lake Louise'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추천이었다. 선생님은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시종일관 까불거리는 성격이었던 나를 잠재울만한 음악이었다. 체르니 같은 교습용 음악이 아닌 우아한 곡을 치고 싶었던 나는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이거 쳐보고 싶어요. 악보 하나만 주세요!"


 악보를 들고 집에 도착해서도 그 곡을 계속 듣고 싶었다. 레코드 가게를 가야만 했다. 앨범의 제목은 'Reminiscence(추억, 회상)'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추억과 회상이란 단어를 얼마나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밤이 늦도록 이 앨범을 듣곤 했다.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에는 불안하거나 쫓기는 일이 없다. 유려하거나 웅장하지도 않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의 음악은 너무 단조로워서 재미가 없어 보인다. 한동안은 그의 음악을 들을 일이 없었다. 20대에는 매우 큰 음의 높낮이와 불협화음으로 감정의 과잉을 만들어내거나 조성이 없는 난해한 음악을 듣곤 했기 때문이었다. 갈등적이고 모순적인 연주가 주는 아드레날린과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이 주는 당혹감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난해함이 멋이라고 생각했었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턴가 그의 음악을 다시 듣게 되었다.  'Reminiscence(추억, 회상)'라는 앨범 제목처럼 늦게까지 이 음악을 들었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의 음악은 회상에 너무 취하지도 않고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게 추억과의 거리를 유지해주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단하지?라는 느낌은 내 음악에 넣지 않으려고 한다. 내 음악을 요리에 비유한다면 가끔씩밖에 먹지 않는 고급스러운 요리보다는 평소에 자주 먹는 맛있고 몸에 좋은 요리라고 생각한다."

 몸의 감각세포들을 특별히 자극하기보다는 평온하게 만드는 된장국처럼 그의 음악은 두고두고 만들어먹는 음식과 같다고 말했다.


 올해로 나이가 70세인 그는 무엇을 회상할까. 난방이 전혀 안 되는 방에서 장갑을 끼고 피아노 연습을 했었던 대학시절, 물리학자와 피아노 연주자라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을 때, 35세에 첫 앨범을 냈던 때, 마흔여덟 살의 첫 콘서트, 처음으로 박수갈채를 받았을 때.


 장롱 속에 넣어두었던 CD 플레이어와 이어폰을 집어 들었다. 레코드 가게로 뛰어가던 내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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