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나는 참 애매한 사람이었다. 모호하고 흐린 회색분자같은 사람. 뭔가 똑부러지게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머뭇거리다 결국에는 최고의 선택을 놓치고 마는 사람.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 가장 손해를 많이 보는 스타일이 바로 나같은 사람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길 좋아한다. 내가 본 미국 사람들은 그렇다. 자신의 소신, 가치관, 의견, 생각들을 나누기를 꺼려하지 않았다. 남의 눈치를 살피고 신경쓰는 나는 절대 그러지 못했다. 사람들에게서 미움받지 않고 내쳐지지 않기 위해서 A에도 B에도 맞다고 했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나 자신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난 정돈됨과 바름을 사랑했다. 규칙과 익숙함을 좋아했다. 무엇이든 질서정연하게 있는 것이 좋아서 책장에 있던 책들을 하루에도 몇번씩 열맞춰 줄세우곤 했다. 바른 아이, 착한 아이라는 타이틀에 목맸었던 어린이였다. 위인전을 읽으며 신사임당같은 현모양처를 꿈꾸곤 했다. 밖에 나가서 노는 것 보다는 방안에서 하루종일 책읽는 것이 행복했다. 조금이라도 규칙에 벗어나면 마음은 두근두근거리다 못해 밖으로 나올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했던 범주 밖의 일이 벌어지면 불안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생활을 동경했고 모험은 절대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았다.
미국에 오게 된것은 내 인생의 최고의 모험이었다. 내가 원해서 왔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쳐도, 이 곳에 이렇게 이끌려 오게 된것은 내게 최대치의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첫 날 점심시간,백인 아이들에게 둘러싸여서 가만히 서있으면서 나는 누구인가, 내가 여기 왜 있는거지, 이 아이들은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걸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다. 그룹 프로젝트를 해야할 때 아무도 나와 하겠다는 아이들이 없어서 결국 혼자 해야했던 때,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거지, 묻고 또 물었다. 새벽 4시까지 전자사전을 끼고 이해가 되지도 않는 숙제를 하면서 내가 왜 이런 생고생을 하고있나, 물어도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내 자신을 알아야했다. 좀 더 독하게, 똑똑하게 알아야했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끝까지 해보는 스타일이다. 백인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동물원의 우리 안에 갇힌 원숭이 보듯이 쳐다봐도 그것에 기죽지않았다. 마음은 상했지만 혼자서 그룹 프로젝트를 해내려고 밤을 새웠다. 점심시간에 같이 밥먹을 친구가 한명도 없어서 혼자 화장실 문을 잠그고 엄마가 아침에 싸준 샌드위치를 급하게 먹고는 점심시간 내내 울고는 했어도 그것으로 인해 포기하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규칙과 익숙함의 삶에선 꽤나 많이 멀어진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로 인해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 시간들로 인해 나를 더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애매모호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회색분자일때가 더 많지만, 어쩔 때는 희고 어쩔 때는 검다. 내 의견을 나눌 수도 있고 숨길 수도 있다. 손해보지 않으려 꾀를 쓸 때도 있고 규칙대로 살아갈 때도 있다. 아직도 정돈됨과 바름을 사랑한다. 규칙도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가끔씩은 그런 규칙들도 넘어가줘야 한다고 느낀다. 확실히 세상을 더 알게 되었고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나를 더 알게 됨으로써 세상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게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는 알아간다는, 알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