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먹는 눈물의 샌드위치

눈물로 얼룩진 나의 첫 High School 등교날

by Bora

너무 떨렸다. 손에는 땀이 나고 긴장돼서 배는 아파오고. 오피스에 들어가서 내 이름을 말하고 카운셀러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를 보며 집에 가자고 백 번도 더 말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보다 더 긴장한 엄마를 보니 아무 말 할 수가 없었다.


기다리던 카운셀러가 와서 스케줄이 적힌 종이를 건네주고 학교를 둘러본 뒤 엄마는 가고 나만 남았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라며 나를 카페테리아 앞까지 데려다 주고는 카운셀러도 런치 브레이크를 위해 떠났다. 덩그러니 나 혼자 카페테리아 앞에 서 있는데 드는 생각은 "큰일났다...."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친구 하나 없는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백인들이 80%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이 살아갈 수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곧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교실에서 쏟아져나왔다. 난 당연히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카페테리아 앞에 있었기 때문에 가장 앞에 선 학생이었고, 카페테리아 문이 열리면서 밀려 들어가서는 그냥 보이는 거 아무거나 집어들고 계산했다. 헐레벌떡 나와보니 내가 집은건 야채만 들어가있던 푸석푸석해보이는 샌드위치. 그걸 들고 이젠 어딜 가야하나 둘러보는데, 보이는 건 다 끼리끼리 모여있는 학생들. 내가 들어갈 틈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살고 있는 도시가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서 인구 수도 적었고, 그때 당시에는 더 한국 사람이 없었을 때라서 보이는 동양 사람은 거의 나 혼자뿐이었다. 아이들이 다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잔디밭에, 테이블에 앉아있어서 나도 빈 곳을 찾아 그곳에 잠시 앉았다. 샌드위치가 싸여진 랩을 뜯고 고개를 드니 열 몇명의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라면 어리게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때 내게 비쳤던 그 아이들의 모습은 어리지않았다. 미국인들의 성장 속도가 동양인보다 빠르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얘기하고 싶은 건 그 때 그들의 눈빛은 새로 온 동양 여자애에게 보내는 친밀감의 표시가 아닌 확고한 부정적인 감정이 섞여있었다. 마치 내가 새로운 장난감이 된 듯한 기분, 나를 둘러싸고 아무 말도 안하고 쳐다보기만 한 후로 30초가 흘렀을까, 가방을 들쳐매고 화장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한창이라 그런지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가 볼 세라 가장 멀리 있는 칸에 뛰어들어가서 문을 걸어잠그고는 벽에 기대어 앉았다. 눈물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잘 지내야 한다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릴순 없다고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보다 더 힘들게 일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내가 투정부려서도 안되는 거겠지 하고 생각하다가도 그냥 지금 이 상황이 너무 힘들고 벗어나고 싶었다. 원래 성격이 내성적인데다가 다른 나라에서 다른 언어로 학교생활한다는 게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란 걸 난 고등학교 등교 첫 날 아프게 깨달았다.


그 날 울면서 그래도 먹어야한다고 먹었던 야채 샌드위치는 정말 맛이 없었다. 차라리 맛이라도 있었으면 다행이지, 그건 가슴 아프고 쓰린 맛이었다. 그 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직 열일곱밖에 되지 않았던 나의 삶에 던져진 변화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깊었다.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그 때의 나에게 미안하고 또 아프다. 지금은 웃고 넘길 수 있는 얘기야 라고 하면서도 아직도 그 때의 그 쓴 맛이 혀 끝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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