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 성향인의 스펙터클하지않은 어드벤쳐 모험기
미국의 고등학교 생활은 정글과도 같았다.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버텨야했으니까.
당연히 미국 학생들보다 영어가 많이 딸렸다.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벅찰 때가 많았고, 숙제를 끝내는데도 새벽까지 잠 못자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했던 내가 그들보다 잘할수 있었던 건 수학과 음악이었다.
수학이야 한국에서 진도를 더 빨리 나가기 때문도 있었지만, 숫자는 만국의 공통어이다보니 문제가 영어로 되어있어도 대충 감으로 풀 수 있었다. 영어가 최소한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수학으로 최대한 점수를 잘 받아야 그나마 성적이 나오는 수준이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엄마의 못 다 이룬 꿈을 내게 투영시키신 것이 없지 않아 있는데, 7살때부터였나, 기억도 나지않는 어렸을때부터 피아노 앞에 앉았다. 노래하고 피아노치는 것을 좋아해서 계속 음악을 배워왔지만 쉽게 지루함을 느껴버리는 성격 때문에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었다.
미국의 고등학교 시스템은 영어, 수학, 과학, 역사 등 꼭 들어야 하는 과목과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들이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해양생물학, 어떤 아이들은 도자기 만드는 공예, 어떤 아이들은 연극반 등 자신이 하고 싶은 과목들을 들을 수 있다. 내 스케줄에도 빈 클래스 자리가 있었는데, 뭐로 채울까 하다가 카운셀러가 밴드부가 있다고 얘기해준 것이 기억났다.
고등학교 밴드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락밴드부가 아니라, 심포닉 밴드였다. 오케스트라같지만 현악기는 더블베이스만 있었고 관악기와 목관악기로 구성된 밴드였다. 스케줄을 체크해보니 밴드부는 내 영어 클래스와 시간이 겹쳤다. 그나마 잘 할수 있는게 음악이었는데 못하게 되는 건가 우울해졌다. 영어 클래스느느 ESL 클래스로 영어가 제2외국어인 학생들이 꼭 들어야하는 필수과목이었기에 옮길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혼자 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내 생각을 말했다. 선생님은 차분히 내 말을 경청해주셨고, 교실에 있던 피아노를 한 번 쳐보라고 말씀하셨다. 배웠던 곡 중에 기억나는 것을 쳐보았고, 선생님은 내 간절함을 조금은 알아주셨던 것 같다. 먼저 ESL 선생님께 가서 내가 수업시간 중 반은 영어를 듣고, 반은 밴드부에 와서 음악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한 학기동안 그렇게 지낸 후, 나는 ESL 클래스에서 나와 일반 영어클래스에 들어가게 되었고 밴드부 수업도 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밴드부는 피아노가 없어서 타악기 파트에서 연주했었는데 실로폰, 마림바, 큰북, 작은북, 팀파니 ,심벌 등 여러가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 여러가지 악기가 함께 연주하며 하나의 음악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음악적인 감각도 그 때 많이 늘었던 것 같다.
밴드부를 들으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대회 때문에 여행도 다니고 좋은 추억을 너무 많이 쌓았다. 음악으로 진로를 정하게 된 것도 이 선생님 덕분이었다. 이 수업을 내가 듣지 않았다면, 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 선생님을 통해서 내가 나의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첫 도전이었다.
낯가리고 내향적인 성격에 안전한 길만 추구하던 내가 처음 발을 떼고 고개를 들어 세상을 마주했을 때 세상은 나를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대학교 졸업을 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 문득 선생님 생각이 났다.
이젠 대학교 교수님이 되셨다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검색해서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게 되었다.
그때 너무나 감사했다고, 지금은 이렇게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다 선생님 덕분이라고 감사의 편지를 짧게나마 써서 보냈는데, 선생님도 나를 아직 기억하고 계셨다.
I was so pleasantly stunned by your email- I am literally wiping away tears as I type. How very kind of you to contact me.
I use your story to this day as part of the training that I provide future teachers. How that when you first arrived at MCHS you spoke little (if any) English, and how you used to split time between band and the ESL class. When we first communicated with one another it was through gesture and music- and how after one semester, your English skills had progressed so rapidly that you transferred out of that class and full time into band. I truly believe that this is a result not only your resolve and intelligence, but also because of the power of music education.
I am so pleased to hear you are happy and healthy and that you have kept music in your life.
하나하나 우연은 없다. 살아가면서 더욱 실감하는 부분이다.
어떤 일도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내가 밴드부에 들어가면서 음악을 더 배우고 음악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로 인해 대학교에서 음악에 관련된 전공을 공부하고 지금 현재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미국에서의 삶에서 음악을 빼라면 뺄 수 없을텐데, 그것의 시발점이 이 순간이었음을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