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ra Jan 31. 2017

행복의 조건

5년만에 신혼여행 by 장강명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결혼은 언제 하니?"였다.


나이 서른 둘, 한국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내게 결혼에 대한 불편한 질문은 사실 예견되어 있었던 것일 텐데, 새삼스럽게 그들의 관심이 의아했던 건 내가 이상해서였을까, 아니면 기준에 맞는 삶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그들이 이상해서였을까.


장강명 하면 요즘 인기 많은 핫한 소설가라고 알고 있었다. <한국이 싫어서>는 재밌게 읽었던 작품이고 다른 소설들, <표백>, <그믐>등은 읽어보고 싶었지만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결혼한 지 5년만에 다녀온 신혼여행에 대한 에세이를 냈다고 해서 흥미가 생겼다. 요즘 작가들 중 가장 현실적인 그가 신혼여행에 대해 쓴 글이라니, 그는 결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기대하며 읽어낸 책이다.






신혼여행을 글로 써 책을 냈다고 해서 최소 한 달에서 두 달, 배낭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일까 했더니 3박 5일 동안 보라카이를 다녀온 여정이었다. 역시 작기의 힘이 이런 건가, 3박 5일의 여행을 250쪽의 책으로 펴낼 수 있다니. 가서 글만 쓰고 온건가, 의구심도 들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짧았던 여행의 기록에서 그의 인생관, 결혼에 대한 관점, 삶에 대한 가치관과 사회의 기준에 대한 생각들을 투명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허례허식이 싫은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고 살다가 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지는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돈으로 5년만에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HJ는 명절에 우리 부모님 댁에 가지 않았다. 설이나 추석에 나는 부모님 댁에 혼자 간다. 내가 내린 결정이다. 이 글을 보면 아니라며 펄쩍 뛰실 테지만, 어머니가 HJ를 싫어했다. 그냥 내 아내라는 점을 싫어했다. 한국 어머니들은 며느리를 질투한다. HJ도 내 부모님을 싫어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우리 부모님이 그녀를 싫어하는 데 대한 반작용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었다. 그녀에게 우리 부모님은 두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상징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를 구속하려는 한국적인 것들. 성차별. 출산과 육아. 유교. 대한민국 그 자체.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과 HJ를 설득해서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내 부모님과 HJ가 왜 서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명절에 싫다는 아내를 자기 부모님 댁으로 굳이 데리고 가는 남자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보기 싫은 친지들을 만나러 큰집에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아마 그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가 정확히 뭔지 모를 것이다. 그냥 막연히 명절에는 가족이 다 모여야 한다고 하니까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일 뿐이다.


시부모님과 아내가 서로를 안 보고 사는 것. 그게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챙겨야 할 명절이며, 주기마다 챙겨야 할 시부모님, 가족들, 친지들이 수두룩하다. 명절마다 싸우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늘 그랬듯 뉴스 토픽이 된다. 하루종일 앉아서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는 엄마를 어렸을 때부터 보면서 왜 아빠는 방에서 티비 보다가 주무시는지, 왜 엄마는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음식만 하다가 집에 오는 건지, 왜 나와 사촌언니는 일손을 거들어야 했으며 남자사촌동생은 그런 말을 안 들어도 되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막연히 명절이기에, 항상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런 것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대답이 한국사회에서는 당연할 것이다. 가족이니까, 혈육이니까 싫어도 봐야지 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그래, 싫으면 안 보면 되는 거지, 뭐 어렵나. 싫다는 사람들 설득해서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 자신이 없다는 고백이 너무나도 솔직해서 어쩌면 밉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의도로 쓴 것인지는 알겠으나, 이걸 실제로 할 수 있는 저자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누구나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걸 말로 내뱉는다는 것은 그 말이 가져올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그는 싫다는 그 이유가 그 사람이라서, 남편의 부모라서 싫은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한국 문화의 구속이기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 혼자 명절에 집에 가는 것은 그에게는 부모님과 아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는 사회와는 반대될지 몰라도 자신의 기준에 맞는 선택을 밀고 나간다. 놀랐다. 이 남자, 뭐야.


한국식 결혼식은 우리 생각에 허세와 불필요한 지출의 결정체였다. 내 생각에는 전형적인 한국식 결혼식은 빼빼로데이와 매우 비슷하다. 언젠가부터 점점 호사스러워지고 있고 장식이 본질을 앞도하고 있으며, 이제는 거대 산업이 되어버렸다. 업체들이 호사스러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모두 그게 허세이고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상술에 넘어가고야 만다.


왜 이런 미친 짓거리가 사라지지 않을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세대가 미친 짓거리의 뼈대를 세우고 신세대가 거기에 살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에 협조하지 않는 자들을 '걔 원래 특이하잖아'라며 이단자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미친 짓거리를 성대하게, 무의미하게 치러낼수록 찬탄을 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그의 결혼에 대한 관점은 나의 관점과 너무도 비슷해서 읽으면서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신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인은 예식장 대관료만 1억을 지불했다고 했고, 스드메라고 하는 웨딩문화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예식장에서 식을 올린 건 불과 30-40분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그 짧은 시간이 결혼식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예식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스몰웨딩을 꿈꿔도 들어가는 돈은 대부분 하는 예식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고, 또 부모님들께서 뿌린 만큼 거두기를 원하시는 분위기가 다반사라 스몰웨딩을 반기지 않으시는 어르신 분들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게 부부를 위한 예식인지, 부모님들을 위한 예식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꼭 해야 하는 예단, 예물, 축의금 등 한국만의 결혼 문화에 차려놓은 뷔페 음식 먹고 허겁지겁 나오는 보이기만을 위한 식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성대한 결혼식보다는 양가 부모님들끼리 한 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좋은 덕담들을 나누고 언제나 행복하게 살겠다고는 약속할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고 사랑하며,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나가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시간으로 예식을 대신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예식에 들어가는 돈을 최소화하고 그 돈으로 차라리 신혼여행을 더 길게 간다던지, 아니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는 것을 꿈꿨다. 헤어, 메이크업, 드레스 같은 것들도 최소화해서 비용을 줄이고, 호사스러운 허세를 부리고 싶지 않다. 남들 다 하는 거라고 해서 등떠밀려 하고 싶지 않다. 그저 30-40분 예식장 홀에서 머무르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하고 싶지 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는데,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 세상 어딘가에 누구라도 있었구나,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구나. 나만 혼자가 아니었구나, 해서 안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런 관점을 가진 남자를 찾기란 힘들 테지만.





현실적인 얘기도 많이 나오지만, 그래도 이 책은 신혼여행기이기에 꽁냥꽁냥하기도 했다가 싸우기도 하는 부부의 귀여운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둘이서 똑같은 일정으로 다녀온 여행임에도 각자 좋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달랐던 것도 재밌었고, 밥만 먹으면 잠을 자야 하는 저자와 당이 떨어지면 화를 내는 HJ의 이야기도 읽으면서 계속 미소 연발. 


어릴 때는 그런 일들이 매일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열광과 감탄, 발견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10대가 되고 20대가 되자 신세계라고 할 정도의 새로운 경험이 확 줄어들었다. 진짜 새로운 경험은 많지 않다.


어릴 때에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의 연속, 매일매일이 달랐는데, 서부에서 동부로 대학교를 갔을 때는 처음 몇 달만 새롭다고 느꼈지, 금세 익숙해졌다. 


세계 최고의 우울한 석양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곳에 뭐가 낯선 게 있을까. 왜 도시에서는 이렇게 감동을 하지 못했을까. '도시에서는 이렇게 석양을 기다려서 천천히 본 적이 없었으니까. 저녁 무렵에는 늘 할 일이 있었으니까. 해는 매일 지는 거라고, 구태여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석양 따위는 한가할 때 보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나는 생각했다.


그래, 이 생활에 익숙해져서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새롭지 않았던 거였다. 왜 굳이 다른 나라까지 여행을 가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감동받아야 하는지, 저자는 기다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도 똑같은 석양이 지고 똑같은 태양이 뜨는데,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삶이 버겁기 때문에, 힘들기 때문에, 지쳤기 때문에, 갖은 핑계를 다 대면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래, 맞다. 어느 날,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길을 걸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마주친 광경은 너무나도 투명하고 맑은 핑크와 보라색이 섞인 노을이었다. 마치, 한 입 베어 물면 달큰함에 온 몸이 떨릴듯한, 솜사탕같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줄 것만 같은 색감과 풍경이었다. 왜 몰랐지, 왜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을까. 진작 알았더라면, 더 많은 것들을 바라보며 감동하고 느끼고 감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자 나는 이 여행이 인생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의 중반을 넘기고서야 어떻게 하면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지 알게 된다. 다시 한 번 처음부터 시작하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생각하면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친구들과 얘기해본 적이 있다. 누구는 고등학교 때로, 누구는 중학교 때로, 또 다른 누구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태까지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노력을 알기에, 다시 돌아가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난 아주 어릴 때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돌아가면,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하다가, 그래도 내 삶은 이런 삶이어서 행복한 때도 있었으니 그걸로 됐지, 뭐, 하게 되었다.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도, 길을 잃고 헤매어도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으니까, 거기서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 있으니까. 




<안나 카레니나>는 첫 문장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한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남들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듯, 또 남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들이 내게는 행복이 아닐 수 있듯이 행복의 기준은 없다. 그렇지만, 사회는 우리에게 행복의 기준이 있다고 말한다. 결혼, 신혼여행, 출산, 육아 등 나의 행복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것도 있을 텐데 한국사회는 그것을 천편일률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강요한다. 저자는 그것을 따르기보다는 자기만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 살아간다. 그의 아내 HJ는 행복을 느낄 때마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날짜와 이유를 적으며 행복 리스트를 정리한다고 한다. 그녀에겐 토요일 아침에 소파에 편히 앉아서 컴퓨터로 <라디오 스타> 보면서 샌드위치 먹으면서 모닝커피를 마신 것이 행복이다. 지방선거 투표하러 걸어가는 길에 나무에 파릇파릇 잎이 난 걸 보면서 여름을 느낄 수 있던 것이 행복이다. 그만큼, 행복해지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하고 충족되어야 하며, 한 조건만 모자라면 행복하지 않은 것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언제 행복한가, 생각해본다. 추운 겨울날, 출근하려고 집에서 나왔을 때 겨울 냄새가 나는 것.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 앞에서 고민하는 것. 비 오는 날, 창문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듣는 것. 한가한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깼지만 이불 안에서 뒹굴뒹굴거리며 나른하게 누워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조용한 카페에서 책 읽는 것.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기 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며 머리를 간질이는 것.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하지만 그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나의 행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남들이 하는 것 같은 결혼식이, 육아가 행복일 테지만, 저자에게는 결혼식을 하지 않고, 아이가 없는 삶도 불행하지 않다. 오히려 더 자유를 느낀다. 행복이란 굉장히 상대적이기에, 5년만에 신혼여행을 간다 해도 그 곳에서 맥주 한 병 마시며 행복하다고 느낀다며 그게 다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순 없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