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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ra Jan 28. 2017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순 없을까

회사 가기 싫은 날 by 김희진

2017년이 되니 내 나이 이제 서른둘. 미국에 살고 있으니 미국나이로 한다면서 아직은 서른이라 박박 우기고 있는 나지만, 이제 생일이 지나면 빼도 박도 못하게 서른을 넘겨버린 나이가 된다니, 세월이 참 야속하구나. 

쳇바퀴 돌 듯 매일매일이 반복의 연속인 업무를 하다 보면, 이 귀한 시간, 이렇게 써버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또 머릿속에 스멀스멀 퍼진다. 


새로운 시작보다는 이미 시작한 일의 안정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나이, 나아가자니 망설여지고 안주하자니 만족스럽지 못한 기분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에 이미 늦은 것은 아닐지 고민이 많아진다.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에는 서른이 되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서른한 살이 되는 것 외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될 수는 없을까?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힘들게 회사를 다니는 것만이 길일까? 답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된 것일까?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꿈일지도 모르지만, 그 꿈을 이미 이루다 못해 꾸준히 살아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꿈을 이룰 준비가 된 걸까? 내 마음에게 물었다. 





 <회사 가기 싫은 날>은 커피, 자전거, 가구, 빵, 꽃, 모자, 가방, 잡지, 그림, 헌책 등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17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일’이란 단어 앞에는 ‘좋아하는’, ‘하고 싶은’,‘원하는’ 같은 말이 아니라,‘해야 하는’,‘먹고살기 위한’,‘주어진’ 같은 말을 붙여 살아간다고 제멋대로 믿어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회사가 갑작스레 문을 닫게 되어 타의에 의한 프리랜서가 되고, 회사 밖 풍경을 바라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거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말한다.


나도 그랬지. 가만히 컴퓨터 앞에 앉아 업무를 보다가 창문 밖을 내다보면 걸어가는 다른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업을 찾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고, 어딜 가도 여기보단 낫겠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물어 머리를 온통 점령하는, 매일 반복되는 일. 좋아하는 것도 막상 일이 되어버리면 지겨워지고 하기 싫어진다고들 하는데, 그럼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궁금했다.



서른 살 넘어 도전한다고 하면, 백이면 구십은 말릴거다. 안 봐도 뻔해. 이제 안정적으로 인생을 꾸려나가야지, 도전? 너무 늦었어. 늦었다고 할 때가 늦은 거야, 라는 박명수의 유명한 말도 있지. 그래, 하려면 이십 대 때 했어야 하나. 근데 난 이십 대 때 아무것도 몰랐는데?


비아델알베로를 시작하게 된 서른한 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나이라고 생각했죠. 서른이 갓 넘은 그쯤에서야 남의 눈치를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늦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없이 좋은 나이라고 말한다. 나의 기준이 명확히 섰을 나이이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됨이 이미 하나의 무기가 되었고, 또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자신감이 되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두려워할 틈도 없이 좋아서 시작한 일을 좋아서 해왔다는 가방 디자이너, 이영미. 두려워할 틈도 없이 좋아하는 일이 내게는 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그냥 막연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뭐든 지금보다는 나을 거야, 같은 게 아니었다. 내게 필요했던 충고는 이것이었다. 너에게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이 있니? 너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은 뭐니? 그 마음 하나만으로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겠니? 


나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은 읽고 쓰는 일이다. 그리고 읽은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쓴 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가슴이 뛴다. 내가 읽은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난 후, 그 사람이 그 책 정말 좋았어,라고 해줄 때 가슴이 뛰고. 내가 쓴 글을 읽고 잘 읽었다고 해주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뛴다. 

다 내려놓고 그것들을 위해 뛰어들 수 있을까. 아직 더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아직도 세상의 잣대를 기준 삼아 내게 삿대질하는 조그만 내가 있기에.


“네가 만약 결혼했다면 그런 말 못 할걸.”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더 돈을 따질 수밖에 없을걸.”
이런 가정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랬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야 하나요. 자신이 시작하지 못하는 용기 없음, 자신감의 부족을 가정법을 이용해 합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들에 대해 가정해서 미리 걱정하느라 현실을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가정도 넣지 않은 현실 그 자체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 이것이 정답이었다. 내가 아직 하지 못하고 있는 그 용기 없음, 나의 자신감의 부재를 합리화하지 말기. 괜히 세상을, 현실을 탓하지 말기. 살기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붙들어야 한대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나 그저 이런 사람밖에 안됐던 걸까, 하며 회의감에 젖어든대도, 현실을 탓하지 말기. 


그래서 이 브런치도 시작하게 되었다. 

항상 글 쓰고 싶어, 책만 읽으며 살 수는 없을까, 나도 언젠가는 이런 책들을 쓸 수 있을까, 언젠가는 이런 책들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날이 오긴 오는 걸까. 생각만 하며 지금의 현실만을 탓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오늘은 피곤해서,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친구를 만나야 해서, 와 같은 수많은 핑계로 얼마나 많이 꿈에서 벗어났었나. 세어볼 수도 없다. 


그러고 보면 의외로 ‘기회’라는 것은 우리의 생각보다 자주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모르고 지나치거나, 좋은 사람이 있어도 소홀히 대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겠죠. 그리고 너무 섣불리 스스로 불행하다거나 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운이 없었다기보다는 운을 기회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잡을 준비가 없이 주어지는 기회는 그것이 기회인지조차 알 수 없는 순간의 지나침일뿐이니까요. 


지금 이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기회의 발판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발판이 차곡차곡 모아져 단단하게 만들어지면 언제 어디서 그 기회가 온대도 그 발판으로 높이 뛰어 낚아챌 수 있도록. 그 기회가 드디어 내게로 왔을 때 놓치지 않도록, 몰라보지 않도록. 잡을 준비가 없이 주어지는 기회는 그냥 순간의 지나침일뿐이기에, 그런 순간들이 더 이상 나를 지나치지 않도록 오늘도 쓰고 읽는다. 




그들이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하나다. 시작했기 때문에 나아갈 수 있었다. 순간이 모이고 쌓여 일상이 되고, 진심이 모이고 쌓여 나도 모르는 사이 커다란 마음이 되듯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품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꿈은 없습니다. 이 책이 누군가가 품은 꿈을 내어 보일 수 있는 작은 용기가 되길,어제에 매이고 내일을 걱정하다 정작 오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작은 속삭임이 되길,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 불안한 짐작만으로 멈춰 서 있는 누군가에게 다정한 조언이 되길 바랍니다.


막연한 자기계발 책들처럼 무조건적으로 다 잘될 거야, 우선 해보는 거야, 다 내려놓고 부딪쳐봐야지, 하고 질러대는 충고가 아니라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몸소 보여주고 얘기해준다. 

잔잔하고 소소한 감동이 되었다. 


좋아하는 일이 진정 행복한 일이지.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행복한 그들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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