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키는 작아진다

시간에 비례하는 등의 굽이, 키의 차이, 짊어져야만 했던 삶의 무게

by Bora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이 한창 뜨거웠을 때 우리 가족은 한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부모님은 잘 다니시던 직장을 그만두시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유를 물었을 때 나와 내 동생의 교육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끼라고, 단지 그것을 위해서였다고 하셨다. 내가 엄마, 아빠의 나이였다면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었을까, 가늠할 수 없었다. 평생 살아왔던 곳인데, 그 곳에 내 가족들이, 친구들이, 쌓아왔던 삶의 가치와 관념을 버리고 발 한번 디뎌보지 않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내가 할 수 있을지 답할 수 없는데 그 때의 내가 알 수 있었을까, 그 무거웠던 무게를.


우리 가족을 초청하신 외삼촌이 하시던 일을 도우러 나가셨던 아빠는 새벽에 나가서 오후 늦게나 땀에 쩔어서 돌아오셨다. 외삼촌은 집에 지붕을 수리하는 비지니스를 하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평생 직장 생활을 하시다가 다른 일을 하시려니 힘드셨나보다 라고만 생각했다. 하루종일 땡볕 아래서 높은 지붕 위에 올라가 몸을 쓰며 일하셨던 아빠. 하루는 동생이 다니던 중학교 근처에 있던 집에서 일을 하셨는데 학교가 끝날 무렵 동생이 학교에서 나오는 걸 보고 달려가서 인사하고 싶었지만 땀에 젖고 더러워진 옷때문에 동생이 창피해할까봐 차마 가서 인사하지 못하셨다고 나중에서야 웃으면서 얘기하셨을 때 난 그제서야 아주 조금 그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등교 첫 날,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손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긴장했던 동생의 무게. 왜 나를 미국에 데려왔냐며 울고 짜증내던 나의 무게. 식당에서 힘들게 몇시간씩 손이 부르트도록 일을 하고 돌아오던 엄마의 무게. 그런 엄마를 마중나가던 그의 어깨에 실린 우리 가족의 무게.


처음 이민와서 지내는 1년동안 아빠는 매일 매일 작아지셨다. 일이 잡히지 않아 하루종일 텅 빈 집 안에서 보내시면서 당신의 등은 굽어지고, 한국에서 고모가 보냈던 이메일을 읽으시면서 당신의 눈은 눈물지고, 이 곳에서 살수 있을까 걱정하는 엄마를 위로하면서 당신의 키는 작아졌다. 그 1년 동안 당신의 어깨에 짊어졌어야 했던 무게들은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당신을 짓눌렀을까, 얼마나 당신을 자책하게 하고 고개숙이게 했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아프다. 다시 돌이킬 수 없음에, 그 때의 아빠에게 가서 다 괜찮다, 안아줄 수 없음에 아프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없음에 아프다. 당신의 키를 내가 작아지게 했음에 아프다. 당신을 아프게 한 것이 나인 것 같아서 그래서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