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첫 거래의 맛

우유 -> 떡볶이

by 보리차

우유는 맛있는데 급식 우유는 드럽게 맛이 없었다.

우유 급식이라는 거 대체 누가 만든 거지?

우유 당번이라도 걸리면

아무리 노력해도 수거한 우유 통에서

남은 몇 모금이 줄줄 새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공기에 퍼지던 그 비릿한 냄새가 너무 싫었다.


난 우유가 싫어! 우유 급식 안 할래!

이런 말 조차 할 줄 몰랐던 나는

우유를 내 목구멍 대신에 나무들에게 뿌렸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고급 정보를 입수했다.

학교 앞 분식집에서 우유와 떡볶이의 교환이 가능하다고?

인생은 타이밍.

서둘러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굣길에 우유를 들고 바로 그곳으로 직행했다.


그 소문을 듣고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빨리 그것을 시도해 보았다.

친구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혼자서 갔던 것이다.

막상 떡볶이 집에 가까워지자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그 방법을 미리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초조했다.

이미 거래는 종종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키가 컸다.

그리고 혼자는 없었다.

간땡이가 아직은 작았던 터라

마음의 준비가 따로 필요했다.


그 순간 봉투에 우유 급식비를 챙겨주던 엄마의 손길이 잠시 떠올랐다.

동시에 라면을 못 먹게 하는 엄마도 떠올랐다.

청량음료도 치킨도 과자도 튀김도 못 먹게 하는 모든 엄마가 떠올랐다.

그런 엄마 때문에 나는 라면에 대한 로망이 컸다.

다른 친구들은 마음대로 먹는 라면을

나는 조르고 졸라서 엄마가 건강식으로 끓인 맛없는 라면을 먹어야만 했다.


엄마 방식의 인생을 너무 강요당하고 살아왔다.

당연히 내게 길에서 떡볶이 사 먹을 돈 같은 건 없었다.

그 어린 나이에도 도저히 이대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고 엄마는 요구르트를 가지고 방에 들어왔다.

난 그때를 노리고 있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로 도발을 시도하기에 날이 적당했다.

나는 그때 행동했다.

아니 지금이 아니면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친구들은 모두 요구르트를 거꾸로 뒤집어 뒤를 이빨로 뜯은 후 쪽쪽 빨아먹었다.

그 시절 우리들에겐 너무 당연했던 방식이다.

처음으로 요구르트를 뒤로 먹고 나서

‘엄마 똑똑히 봤지? 나도 이런 걸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더라도 그때는 그것을 해야만 했다.


요구르트를 뒤로 먹는 방식만큼은 내 맘대로 하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엄마와 협상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스텝이 우유급식을 끊는 거였다.

마음속은 그랬었다.


“아줌마, 얘는 우유를 나무한테 뿌려요.”

갑작스러운 친구의 고자질로 엄마한테 디지게 혼났다.

나는 그 실패를 기억하기 위해 그날 이후로 요구르트를 끊었다.

이번엔 행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억압된 인생을 살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친구들을 끌고 그곳으로 갔다.

좋은 건 같이 나눌수록 더 좋으니까.

미리 이곳을 견학해본 내가 리드했다.

우유와 바꾼 떡볶이의 맛은 내 인생 최고의 행복이었다.

그건 ‘친구가 사준 떡볶이’랄지 ‘준비물 값 빼돌려서 사먹은 떡볶이’랑은 차원이 다른 맛이다.

내 스스로 잔머리 굴려 얻어낸 결과물, 이게 이런 맛이구나.

떡볶이와 나 사이, 엄마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내 마음대로 한다는 건 해봐야지만 아는 거구나.

아홉 살 인생을 통틀어 내 스스로 자유를 일궈낸 '유일한 순간'이었다.


우유를 바꿔먹을 수 있는 떡볶이는 이제 없어졌지만

그 감각은 내 몸에 남아 나를 지키고 있다.

그때 처음으로

‘내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잘 교환하면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큰 기쁨을 주는지’에 대해

귀중한 체험을 했다.

그 어린 시절 감각이 '잉여 물건을 팔아 주식을 사는 루틴'을 만들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많아 가지고' 난 그 말을 참 좋아한다.

"우유로 떡볶이 바꿔 먹을 수 있데"

그 말을 들었던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사소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 말이 되었다.

어쩌면 모든 시작은 누군가가 해준 작은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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