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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Nov 02. 2020

당근마켓 거래복장은 의열단 콘셉트로

거래의 맛


“그러니까 말이야, 오토바이 탄 그 남자가 내 앞에 휙 서더니”     

좀 전에 당근마켓으로 음식쓰레기통을 처분한 친구의 말이다.

오토바이와 음식쓰레기통의 연결이라, 신선한데?

보통은 비슷한 주파수를 가진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니 상대를 통해서 내가 보이기도 했었다.


그녀를 오랫동안 알았지만 이런 표정은 처음이다.

달달한 로맨스에 빠진 설렘을 머금고 그 말을 하고 있다.     


“뭐라 설명이 안 돼.”

평소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던 그녀였다.

‘거지발싸개 같았다니까!’

그 디테일함이 너무 웃겨서 길가다가 미친 듯이 웃은 적도 많았다.

언제나 눈앞에 생생하게 상황이 그려지게 고유한 말들로 설명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말문을 막히게 한 30초의 만남, 그게 도대체 뭔데?

같이 걷다가 다짜고짜 허공에다 대고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낸다.

그 뒤론 대화 불가, 그녀는 날 버리고 자기만의 세계로 떠났다.     


망원역에서 잠시 스친 그 만남은 메마른 일상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기습적인 백허그나 육즙 가득한 꽃등심이 주는 설렘보다

더 날카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그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말로 설명이 안 된다는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분명, 인도를 여행하고 왔을 때 보다

남미를 다녀왔을 때 보다

전 세계 매력 터지는 여행지 그 어디를 다녀왔을 때 보다

더 에너지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래, 뜻밖의 사람에게서 에너지를 뒤집어쓰는 일, 이게 중고거래구나.     


코로나 시대, 물리적으로 어딘가 떠나지 못하는 우리들은

중고거래를 하면서 잠시 새로운 세계를 다녀오거나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시점이었다.

그녀의 중고거래 담이 나를 바꾸어 놓았다.

평소 중고거래할 때 츄리닝 나부랭이 등등을 대충 걸쳐 입고 나갔었다.

오늘 보고 안 볼 사람이니까.


그런데 이제부터는 아니다.

오늘 내 모습이 누군가에게 괜찮은 에너지를 줄 수도 있다.

물건만 주는 게 아니라 에너지까지도 패키지로 주는 일이다.

어차피 줄 거라면 유쾌한 에너지로 주겠어!

중고거래란 물건만 주는 게 아니라 에너지까지 패키지로 주는 일이다.


앗 그런데 나에겐 오토바이가 없잖아.

그럼 어떻게? 거지같이 하고 나가지 말고 멋지게 입자!    


멋지게 입자고 다짐한 날엔 정말 일도 멋지게 풀렸다.

섭외 불가능한 출연자와 만나러 갈 때 멋지게 입고 가서

그나마 덜 떨면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멋진 옷을 입으면 자연스레 자신감이 장착된다.

보이지 않는 요정이 내 등을 밀고 있는 것 같다.

그날 내가 입고 나간 체크자켓이 별것 아니지만

분명 일의 성사에는 도움이 되었다.


의열단은 오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항상 가장 멋진 복장으로 작전을 수행한다고 들었다.

영화 <밀정>을 보면 나라를 잃었다고 해서 함부로 하고 다니지 않는다.

각 잡힌 슈트, 깔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스타일!

의열단은 마치 패셔니스타가 되어 아찔한 상황을 헤쳐 나간다.     

영화 <밀정>에서 한장면, 패션화보 아님 주의


나 역시 그런 심정이다.

마지막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입고 나간다.

내 인생의 일부가 다른 사람에게 연결되는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멋지게 입고 나타날 때 신뢰감이 생긴다.

나랑은 다 펼치지 못한 가능성을

새로운 주인을 만나 마음껏 펼치길 바란다.     


간혹 너무 싸게 파는 거 아니냐

선물 받은 걸 팔다니 미친 거 아니냐 말들이 많다.

의열단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처음 살 때 마음으로

마지막도 같은 마음으로

예의를 갖춰서 보내고 싶다.     

그것은 물론 나 자신을 향한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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