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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차 Nov 05. 2020

스몰도 버거워! 나의 XS 결혼 준비

거래의 맛

신박한 정리로 화제가 되고 있는 전문가가

“이사 가면서 결혼사진 액자 결국 버렸어요, 그 전에는 침대 밑에 계속 있었죠.”

라며 팟 캐스트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가 결혼하던 시절엔 스드메에서 가장 힘을 줬던 게

집에 크게 걸어두어야 할 웨딩 액자라 했다.     


결혼 준비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딱 하나 웨딩 액자 하나만 하려 했는데

그것도 나중엔 버리게 된다니, 그럼 정말 아무것도 할 게 없잖아?

파리 웨딩화보를 알아보고 있는 와중에

코로나가 터져 포기하고 스튜디오에서라도 찍으려 했는데

이것마저도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 인가?


아무것도 안 해서 나의 스몰 웨딩은 정말 엑스스몰웨딩이 되었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걱정되는 지점이 하나 있다.

그가 무언가를 사는데 나와 상의 없이 사들인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중고거래를 하는 순환 라이프를 추구한다 해도

한 인간이 주구장창 물건을 사들이면 아무 소용없다.


엑스스몰 웨딩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사전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정리한 밑 작업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에게 중고거래 기쁨을 선물한다.  

   

발리에 간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친한 선배 언니와 한 번은 그와 갔었다.     

선배 언니와 갔을 땐 비누, 향초, 맥주 커버, 화보집 등등 기분전환 요정들을 샀었다.

그와 갔을 땐 돌아온 케리어 안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부담 덩어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지난번에 선배 언니와 좋은 추억을 쌓았기에 이번에도

우붓의 아기자기한 샵이나 짐바란에서의 럭셔리한 저녁식사가 떠올랐는데

글쎄 그가 4륜 구동 오토바이로 트래킹을 하자는 거였다.

그런 액티비티는 내 돈 주고는 안 하는 타입이라 조금 무서웠다.

내가 운전해 보고 싶어 앞에 타고 그가 뒤에서 내 허리를 잡았다.

평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촉이었다.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짜릿한 경험이었다.

발리 안의 정글은 그야말로 어드벤처 투성이었고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이해가 갔다.


그리곤 다음은 계곡 래프팅이었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난 이때다 싶어 비가 와서 래프팅은 안 가겠다고 했더니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래프팅 사장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아까우니 가는 게 어떻겠냐고 날 설득했다.

난 비 맞으면서 타기 싫다고 끝내 거부했다.

실망한 그는 그럼 시간이 아까우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다.

난 커피농장에 가자고 했다.

택시 투어 아저씨는 근처에 루왁커피 농장이 있으니 그쪽으로 가주겠다고 했다.

작은 시골마을을 삼킬법한 커다란 커피농장이었다.

가격을 봤는데 너무 사악해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래도 힘들게 비 뚫고 여기까지 왔으니 맛만 보려고 하나를 샀다.

터무니없는 가격에 바가지를 쓰는 걸 알면서도 그냥 사야만 했다.

돌아오는 길 내내 후회했다.

호텔에 도착해 내리려 하는데 트렁크에 실린 루왁커피 쇼핑백들이 와르르!

“너가 좋아하니까 친구들 선물하라고”

그가 아주 만족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순간 부화가 치밀었다. 나도 억지로 겨우 산거라고!

발리까지 와서 마케팅 호구가 되었다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난 저렇게 많은 친구도 없고 내 친구들은 바가지 쓴 커피보다는

귀여운 잼이나 비누를 더 좋아한단 말이야!     


알고 보니 그는 즉흥적 선물하기에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의 기분을 상하지 않은 선에서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그런 고민을 내내 했지만, 그의 서프라이즈 선물 취미는 더욱 활발하게 행행 했다.

애플 매장에 갔다가 갑자기 또 애플 워치를 기습 선물했다.

난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냐면 나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몇 번 차다가 과감히 다른 주인에게로 넘겼다.

아직 이 사실을 말할 용기는 없다.

이게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동생은 비밀로 하라고 했다.     

어차피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고민 끝 결론은 그에게 중고거래 경험을 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백날 말해봐야 소용없고 본인이 직접 겪어야 안다.

자신의 몸을 통해 경험한 감각을 선물하고 싶다.     


차고에 방치된 오토바이를 팔라고 부추겼다.

사서 딱 세 번 탔다고 했다.

그런데 그걸 팔 수 없는 이유가 오토바이 면허를 힘들게 따서라고 했다.

복장 규정이 엄격한데 부츠를 신고 가지 않아서 떨어진 그게 너무 억울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토바이를 손에 넣게 돼서 그 감정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이 부분이다,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내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기어코 중고거래의 기쁨을 알려주고 싶다.

그것만이 그의 서프라이즈 선물 취미를 막을 수 있다.       

   

둘째, 결혼반지 대신 주식을 산다.   

  

우리에겐 소유보다 경험이 중요했다.

물질보다 가치를 소유하는 게 더 즐거운 우리였다.

뮤지컬을 볼 때 최고의 자리를 선택했고 여행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난 액세서리로 꾸민 상태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좋다.

화려한 보석을 보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치는 처음 보는 꽃에 더 큰 즐거움을 느낀다.     

타인들이 하는 말

“그래도 결혼반지는 해야지”에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타인의 결혼이 아니라 내 결혼이다.     


그와 여러 번의 고비를 함께 넘어왔다.

그의 가족 중에 악질 병마와 싸우는 환자가 있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예상 밖의 경제위기가 그의 삶을 흔들었을 때

그가 헤어지자고 통보했으나

막상 놓아주지 않은 것은 바로 나였다.

그런 문제로 헤어지는 거 좀 후지지 않나?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 사람을 잃는 일보다는 덜 힘들지 않을까?     

곁에 있는 사람이 무너진다고 같이 무너져 버리는 수동형 인간은 싫다.

옆 사람이 흔들릴 때 손 내밀어 일으켜 줄 수 있는 주체적 인간이고 싶다.

함께 헤쳐 나가는 감각, 그 감각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그 감각이 진짜 내 것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헤어지게도 하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오히려 우리를 하나로 똘똘 묶어주는 일이 더 많다.        

그걸 알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왔을 거다.

  

연애감정을 뛰어넘어 어떤 동지애가 생겨났을 때

그때 우리는 분명 어른이 되었고

우리가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결혼은 아무래도 사랑보다는 우정이 더 필요한 일 같다.

우정을 지키기 위한 보험이 필요하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겐 수많은 변수가 들이닥친다.

그럴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건 돈으로 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았다.

아빠가 힘들 때 엄마가 숨겨놓은 통장이 우리 모두를 지켜줬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서만 산다면, 나는 아주 작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보다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또 발휘하고 싶어 하는 것이리라     

<요시모토 바나나, 왕국 2>     


나는 조금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용기를 내고 있다.         

      

셋째, 예단 대신 마음 깊숙이 새겨둘 문장이 있다.

    

엄마가 제부를 처음 만나고 와서는

“멱살 한번 안 잡혀 본 얼굴이네.”

한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을 ‘멱살 잡혀 본 합’으로 정했던 엄마.

그게 그가 장악할 세계의 스케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역경을 헤쳐 나가는 감각을 스캔하고 왔겠지.

엄마와 아빠에겐 유독 그런 감각을 키워야 할 일들이 많았다.

큰일을 겪었고 헤쳐 나가야만 했다.

그런데 그들은 단 한 번도 그런 것에 꺾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줄곧 엄마와 그와의 만남을 상상해 본다.

나를 앞에 두고 서로 유머를 던질 때 누가 이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에게 조금 미안한 것은

우리 엄마의 귀여움을 받을 기회가 이젠 없다는 거다.     


엄마는 제부를 만날 때

“친구 만나서 차 마셔.”

라고 종종 용돈을 주곤 했는데 그 말이 온전히 좋았다.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했다.

‘맛있는 거 먹어’ ‘커피 마셔’도 아닌 ‘차를 마시라는 것’이.     

엄마가 그를 만났다면 어떤 질문을 했을까?

아마도 그 질문은 엄청 디테일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비해 예비 시어머니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엄마는 어떤 병으로 돌아가셨나 그 흔한 말도 다 아끼셨다.     

“너네 둘만 잘 살면 돼

다른 건 다 필요 없어”     

예단이며 그 뒤에 줄줄이 따라오는 그런 거 난 진짜 안 할 생각이었고

역시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다.

필요 없는 건 다 걷어내고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세계관,

그 역시도 같았다.     


때때로 그보다 그를 낳은 엄마와 더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신기했다.

우리 엄마는 평생 써보지 않을 비즈니스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자식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내가 가야 네가 가지”

이런 라임조차 난 좋다.

이런 뉘앙스의 뒷모습으로 헤어질 때 인사를 하고

먼저 시선을 거두어 저 멀리로 사라지셨다.     


딸 같은 며느리? 아니죠

며느리는 손님이다.

마찬가지로 시어머니도 손님이다.

이 문장을 함께 증명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게 생겼다.

우리 서로의 인생에서 귀한 손님이 되어 보아요.     

이 마음을 단단하게 간직하는 것으로

내 결혼 준비는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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