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란바람 Apr 17. 2018

04. 남의 일이 아니고 내 일이었네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위한 마음


준영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매일 고민을 거듭하던 작년 가을,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무릎을 꿇은 엄마들의 사진을 보고는 한 동안 먹먹해진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웠다.


http://v.media.daum.net/v/20170908155103120


사진 속 엄마들은 대부분 이미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라 학교 설립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될 수 없음에도 무릎을 꿇었다. 자신들이 겪었던 고단한 길을 걸어갈 후배 엄마들과 아이들을 위한 그분들의 간절함이 전해져서 한 편으로는 고마웠고, 다른 한 편으로는 현실의 벽이 얼마나 단단하고 차가운 지 느껴졌기에 한없이 슬펐다.


준영이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걷던 시절, 우리가 살던 집 바로 맞은편에는 아주 조용한 학교가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종종 보게 되는 그 학교의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낯설었다. 등/하교 시간마다 떠들썩한 아이들의 분주함이나,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유쾌한 소란스러움이 없었다.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학교는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고, 마치 혼난 아이처럼 긴장하고 웅크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아랫집 친구로부터 아픈 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라는 것을 전해 들었을 때에도 남의 일인듯 아 그렇구나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돌잡이로 청진기를 잡은 아이에게 의사가 되려면 학비가 많이 드니까 엄마가 회사를 오래 다녀야겠다고 농담을 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어려운 사연을 보게 되거나, 특별한 기념일이면 작은 기부를 하고는 스스로를 기특해하는 나는 그냥 그런 흔한 사람이었다. 특수교육이나 장애에 관한 개념적인 이해는 있었지만, 어떤 아이들이 그곳에서 내일을 향한 꿈을 키우는지 큰 관심을 가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미래에 대한 달콤한 상상은 너무 짧게 끝나버렸고, 나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곧바로  열혈 맹모가 되어 아이의 치료를 위해 5년 동안 세 번의 이사를 하고 난 끝에, 나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아이는 바로 그 특수학교에 입학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삶을 관망하듯 , ‘애들이 학교는 다녀야지 왜 저렇게 사람들이 이기적이냐’ 고 구시렁거리며 지나쳤을 사진 속 주인공이 내가 될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듯한 착잡함도 잠시, 학교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즐겁게 지내는 아이를 보니 이 곳이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인의 눈에 적막해 보였던 학교는 울타리안으로 들어오자, 여느 학교처럼 웃음소리와 밝은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즐거운 학교생활


한 번쯤 기억해주면 좋겠다. 사진 속 눈물을 떨구는 저 엄마가 학창 시절, 나란히 앉아 도시락을 까먹던 친구일 수 도 있고, 지금 옆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동료의 아픔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저 어딘가 멀리 떨어진 외딴 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안에서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는 친구, 동료, 이웃의 절실함이라는 것을 이해해준다면 나와 내 아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조금 더 낼 수 있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그 눈빛이 다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