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명함에 기대어

나만의 명함을 만들 것이다.

by 배부른기린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고 이직의 경험은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회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교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점들이 많다.

연봉이 높은 편이다. 성과급이 별도로 있다. 초과 근무비도 별도다. 탄력 근무제이고, 삼시 세끼를 제공받는다. 회사 제품이 할인이 되고, 회사 관련 호텔과 수영장 등도 할인이 된다. 건강검진도 해준다.


위에 나열한 장점들은 눈에 보이는 장점들이다. 이런 장점들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점들도 많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명함의 힘이다.


명함의 힘이라는 것이 상당하다. 금융권에 제출하는 명함은 나에게 상당한 신용대출을 해준다. 나를 언제 봤다고, 내가 사기꾼이면 어찌하려고 나에게 돈을 떡하니 빌려준다. 낯선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도 비슷하다. 내가 굳이 무엇을 한다고 얘기할 필요가 없다.


명함은 나다.


사람들은 명함으로 나를 재단한다. 그들은 명함으로 나의 연봉을 예측하고 나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한다. 나라는 존재 자체보다 명함으로 나를 평가한다. 종이 쪼가리 하나가 그렇다. 그들에게 나라는 사람은 존재할까?


법관들이 퇴직할 때 옷을 벗는다고 한다. 우러름의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법관이 입고 있는 옷이고, 옷을 벗게 되는 순간부터 우러름을 받지 못하니 겸손한 자세로 살라는 뜻이다.


언젠간 옷을 벗을 것을 생각하면 나도 무엇인가를 만들어놔야 한다. 아직은 회사 명함만 있다. 나라는 사람의 명함은 없다. 온라인에 부캐를 만들어 브런치도 하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회사 명함에 기대지 않는 나만의 명함을 가져야 한다. 어떤 명함을 만들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는 만들어야 할 것이다.


회사가 언제까지 지켜주지 않음을 알기에, 언젠가는 나도 회사의 옷을 벗을 것이기에 새로운 명함을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당당한 명함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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