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임차인과 이별 준비
오늘 전세 재계약 건이 있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임차인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분이다. 무려 10년을 거주하셨고 나와는 벌써 네 번째 재계약이다.
재계약할 때마다 만나면 매번 부동산 투자에 대해 물어보신다. 집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조심스레 권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매수하지 않으신 듯하다. 그 사이 전셋값은 많이 올랐다.
오늘 계약한 전세금은 4.4억 원, 현재 시세는 5.5억 원이다. 1억 원 가까이 싸게 살고 계신 셈이다.
이번이 마지막 재계약이 될 수 있음을 말씀드렸다. 나는 이 집을 매도할 계획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1. 새로 매수하시는 분이 본인이 실거주하실 수도 있고,
2. 전세금을 시세대로 올릴 수도 있으니 자금 준비를 하셔라.
3. 혹은 이사를 생각하신다면 내년쯤 준비하셔라.
순진한 임차인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알겠다고 하신다. 막상 이사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실감이 나는가 보다.
계약을 마무리하는 때에 조심스럽게 고장 난 곳을 말씀하신다. 수리하시고 영수증 보내달라 답했다. 그렇게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계약을 마무리했다.
성격 더러운 집주인을 만나면 억울해서라도 집을 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임차인과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같이 보낸 10년 동안 임차인과 나름의 신뢰가 쌓였다. 요청하신 수리는 대부분 해드렸고, 전세금도 시세보다 1억 가까이 낮다. 그래서일까, 임차인 분은 지금의 삶에 익숙해지신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순둥이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악독한 사람들, 이기적인 사람들이 훨씬 많다.
회사 생활을 한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사업을 해보고, 알바를 고용해 보고, 세금 폭탄을 맞아보고, 부동산과 주식을 굴려봐야 진짜 어른이 된다.
그 사이 상처받고, 다치고, 넘어져 봐야 철이 든다. 그런 경험이 쌓여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다.
순진하고 착하신 임차인분이 앞으로 세상 밖으로 나가 더 많은 경험을 하시길 바란다. 나에게 가장 오랜 기간 인연을 함께해 온 임차인이다. 더 이상 함께할 수는 없지만, 잘 지내시길 바랄 뿐이다.